서울지역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서울시를 향해 '발달장애인 6대 정책요구안'의 수용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부모들은 9일 현재까지 노숙농성과 릴레이 삭발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에이블뉴스

지난 5월초 시작된 발달장애인 종합대책을 요구하는 서울시청사 앞 장애인 부모들의 노숙농성이 한 달을 넘어섰다. 장애인부모연대와 특수학교 학부모들은 올해 초 부터 종합대책을 요구하며 서울시에 정책협의를 촉구했으나 공식적인 답변이 없었다. 장애인 부모들의 삭발이 이어지며 발달장애인을 강제 해산한 서울시의 사과와 요구안에 대한 조속한 대답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의 부모들까지 삭발에 동참하여 서울시의 답변을 촉구하는 등 전국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박원순 시장이 농성장을 한차례 방문하여 강제해산에 대해 사과하고 소요예산이 2조원에 달한다는 보고 오류를 인정하였고, 정책추진팀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을 밝혔지만 서울시는 이 민원에 대해 아직까지 공식적인 입장이 없다.

필자는 스물한살 지적장애를 가진 딸을 키우는 부모로서 5만여 서울시 발달장애인들의 운명을 생각하며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달장애인 정책에 대해 따가운 지적을 하려고 한다.

서울시에는 3만여명의 지적, 자폐성 발달장애인이 살고 있으며 10%가 넘는 3천200명은 거주시설에서 살고 있다. 중복장애를 가진 이들까지 포함해 지원이 필요한 넓은 의미의 발달장애인은 5만 여명으로 추정된다.

사람이 먼저다

먼저, 장애자녀 키우는 어머니들이 자녀와 함께 노숙하며 고통을 감내하는 농성에 대해 서울시는 최소한 이들의 건강과 인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다운 입장을 내놓기를 바란다.

박 시장은 발달장애인 지원정책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주어왔다. 예컨대, 지난 2013년 서울부모회 공동대표로서 박 시장을 면담하여 발달장애인 정책을 제안했을 때, 처음부터 예산부담을 거론하며 소극적인 입장을 피력하여 매우 실망스러웠었다.

수해 전 관악구와 영등포구에서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자살과 죽음이 뒤따랐을 때 남의 일이 아니었기에 박 시장께 긴급편지를 들고 시청사를 찾아갔었다. 그때 박 시장을 만날 수도 없었고 간곡히 전달한 편지에 대한 답신도 없어 장애인 가족의 어려움을 그저 남의 일로 여기나 싶었다.

작년 서울의 장애인 부모들이 자녀와 동반하여 시청로비에서 5일간 농성하며 면담을 요구했을 때도 박 시장은 면담에 응하지 않았고 공식적인 언급도 없었다. 결국 서울시의원과 민관합동 정책추진팀을 구성하여 종합대책을 수립하기로 했지만, 서울시 수장의 정책의지 부족으로 이미 입안된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 외에는 정책의 진전이 없었다. 이제라도 부모 사후를 생각하며 죽음이 두려운 발달장애인 가족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 아닌가!

무시되어 온 발달장애인 지원정책

정책결정 우선순위에서 늘 뒷전이었던 발달장애인 의제를 박 시장은 부디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한다. 복지 포퓰리즘으로 지적되는 무상보육이나 청년수당 정책은 무조건 고수하면서도 최약자 계층임에도 발달장애인 지원정책은 표가 안 되는 소수의 문제라고 무시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국민을 위해 무언가 역할을 하겠다’는 박 시장이 먼저 발달장애인들을 시민의 한사람으로 존중하여 이들의 삶에 대해 깊이 성찰했으면 한다. 죽는 날까지 가족이 책임져야 하고 부모가 죽으면 시설 밖에는 갈 곳이 없는 발달장애인들에게도 국민으로서의 인권이 있어야 하고 그 가족들에게는 희망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박 시장 임기 내 발달장애인 정책은 같은 장애인 정책 안에서도 소외되어 왔다. 2014년 ‘장애인인권 증진계획’이 수립되고 2015년 ‘장애인이동권 증진계획’과 탈시설 정책이 추진되어 왔지만 발달장애인 지원정책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예컨대 장애인이동권증진 민관추진팀을 운영하여 이동편의 인프라를 위해 올해 1,500억원의 예산을 투여하고 있는데, 발달장애인들의 생존 기반인 거주 및 소득지원 정책을 수립하려는 노력은 전무 했다.

장기적으로 부양의무제 폐지 등 장애인을 위한 보편적인 소득보장이 이뤄져야 하지만, 발달장애인지원법 28조에 따라 발달장애인의 소득 보장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장애인부모연대 부모들이 요구한 6대 정책안은 ▲발달장애인 지역사회 주거모델 개발 ▲소득보장을 위한 기여형 자산형성 사업 ▲직업교육 지원 ▲자조단체 및 피플퍼스트 지원 ▲평생교육센터 확충 ▲ 족지원 체계 구축을 담고 있으며 이는 작년에 시행된 발달장애인지원법에 따라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최소한의 희망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이 법을 발달장애인 가족들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냈다면, 국가와 지자체도 최소한 실천하려는 의지를 보여야만 하지 않을까?

장기적인 발달장애인 예산계획 필요

박원순 시장을 비롯해 서울시는 발달장애인 지원에 소요되는 예산 부담을 거론해 왔다. 그러나 당장 한두 해 들어가는 비용만 보지 말고 발달장애인의 인권과 인간다운 삶을 포함한 효과를 생각해야 한다.

이번에 실무진들이 2조원의 예산이 소요된다는 오류 보고를 한 해프닝에서도 들어났듯이 서울시 공무원들이 가진 편견과 정책적 단견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발달장애인 지원예산이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라는 식의 사고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편견에 기초하며, 비용과 효과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정책결정의 기본을 도외시하는 발상이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장기적인 예산 계획에는 반드시 그들을 위한 소득과 주거지원 예산이 포함되어야 하며, 이는 길게 보아 서울시의 발달장애인 지원예산을 효율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시 시설거주 장애인 3,200명에게 소요되는 연간 비용이 1천억원으로 장애인 1인당 약 3천만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서울시의 탈시설 계획에 따라 5년간 600여명의 거주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오면, 180억원의 예산이 확보되며 이들 재원을 발달장애인 지원예산으로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서울시의 장애인복지 예산은 시설입소 억제 및 탈시설 정책으로 최근 줄어들었다.

서울시가 근래 발달장애인의 시설입소를 억제하면서도 지역사회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거주 지원, 소득지원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으므로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이 탈출구 없는 고통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발달장애인지원법에 규정된 지자체의 의무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전향적인 정책 수립과 장기 예산계획이 필요하다.

국제발달장애우협회 전현일 대표에 따르면, 유럽의 탈시설 경험 연구 결과 탈시설 1년 후에는 지역사회 지원체계가 시설거주 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었으나, 5년 후 부터는 그 차이가 좁아져 12년 후에는 같아졌다고 한다. 같은 예산으로 발달장애인의 삶의 질에 큰 향상이 있었으므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셈이다. 지역사회 거주비용이 장기적으로는 시설거주비용 보다 2~3배 정도 적게 소요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므로 장애인부모연대가 서울시에 제시한 발달장애인 소득보장을 위한 예산 100억원, 주거모델 개발사업 10억원 등을 초함한 연간 200억원의 예산 규모는 무모한 예산이 아니라 탈시설 예산 재원으로 마련이 가능하며, 장기적으로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지역사회 지원생활을 위한 예산을 효율화 하는 것이다.

필자가 서울시 정책회의에서도 여러 차례 제안한 바, 서울시는 부디 전향적이고 선진적인 관점을 가지고 장기 예산계획을 수립하기를 바란다. 선진국들처럼 ‘복지서비스 정책은 당사자 욕구에 부응할 때 가장 효율적 것이다’라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글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박인용 이사가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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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중학생 딸을 둔 아버지 활동가입니다. 아이들 돌보고 살림도 챙기는 주부이기도 합니다. 2003년 부모활동가로서 장애인교육권연대,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를 조직하였고, 장애인활동가들과 함께 진보정당 장애인위원회를 건설하는데 참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애어린이 희망찾기>, 위드뉴스 <새로운 부모운동을 위한 전국순회> 라는 연재 글을 썼고, 2007년 한신대에서 <한국사회 장애인 부모운동 연구> 이라는 논문을 썼습니다. 현재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정책국장과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조례운동본부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부모운동과 가족지원,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해방에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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