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일을 대함에 있어서 나름 자기의 기준 혹은 잣대를 가지고 있다. 잣대가 대상에 따라 기울기가 달라지면 그 잣대를 버려야 하고, 저울이 대상에 따라 눈금이 달라지면 그 저울도 쓸모가 없다. 세상에는 기울기의 편차가 매우 심한 잣대와 저울이 많이 나돌아 다닌다. 이는 공정한 정보의 탐색 없이 자기가 보는 잣대가 중심이라는 편향된 방식으로 지나친 응집력과 획일성을 추구하는 탓에서 오는 경우이다.

흔히 동양 철학을 말할 때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하며 떳떳하고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를 중용(中庸)이라 일컬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중용을 표현하기를 어디에서 그치는지를 알아 거기서 머무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라고 했다.

우리는 어떤 일과 내용을 대함에 있어서 나름 자기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기준은 기본이 되는 표준으로 사물이나 이론 따위의 정도나 성격을 알기 위한 근거이며 어떤 현상이나 문제를 판단하는 데 의거하는 것으로 잣대라고 한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는 비교적 옳고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만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이러한 이중 잣대는 같은 내용임에도 다른 기준을 적용하여 주관적인 편견과 편애를 따르는 불공평한 형태로의 왜곡이다.

다름과 차이, 즉 다양성을 받아들이면서 수요자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의 감정에 투사하는 것이 더 쉬움으로 해서 공급자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고뇌는 많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장애는 불편하다. 장애로 인한 신체의 고통과 어려움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편견 없는 시선, 아름다운 마음,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선진 시민의식은 백만 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으며 지역사회의 따뜻한 시선과 관심,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중용은 극단성을 자제하고 사회적 정의와 보편적 가치가 포함된 균형을 맞추는 일이며 이성으로 욕망을 통제하고, 지혜와 식견에 의하여 과대와 과소가 아닌 올바른 중간을 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맹렬이 성찰하는 자기검열을 통해서 자기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남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기애(自己愛)와 소유욕(所有慾)이 있다. 이로 인해 자기 잘못은 감추고 남의 잘못은 드러내는 행동을 보인다. 떡을 나눌 때 내 것이 더 크기를 바라고, 똑같이 주어도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은 이런 본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본능의 관리가 바로 공정성 관리로서 중용의 출발인 것이다.

중(中)은 가운데를 취한다는 의미이다. 떡과 같은 모양의 미음(ㅁ)자를 정확히 한 가운데를 가르는 모양이 중이다. 이것은 바로 차별 없는 공정성의 의미이다. 이런 공정한 생각과 행동을 가질 때 비로소 떳떳함을 의미하는 용(庸)을 느낄 수 있다. 공정한 행동으로 스스로 떳떳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사람 즉 군자(君子)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놓아도 그 효력을 발생시키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있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정확히 상대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고 대안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과 의식이 언제나 함께 가야 할 것이기에 마음의 눈을 뜨고 미래의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장애인에 대한 마음의 인식이 차별 없이 중용의 가치를 가지고 변화되어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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