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 있는 계단과 승강기, 그리고 리프트. 그 중 승강기나 리프트 같은 경우에는 완비 되어 있지 않는 역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양자택일을 하곤 한다. 한 쪽에선 계단과 승강기 사이에서 다른 한 쪽에선 승강기와 리프트의 갈림길을 두고 갈등을 한다. 후자의 경우가 장애인들의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승강기가 있는 역이 정말 고맙다. 내게는 ‘효자역’인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언제부터인가 리프트를 타지 않았는데 그렇다 보니 이동을 도와주는 승강기는 필수가 됐다.

내가 처음부터 리프트를 타지 않았던 건 아니다. 어릴 때 교회 형님을 따라 서울 전역을 횡단하느라 리프트를 자주 이용했었고, 그 후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선 타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리프트 사고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고, 주위 지인들이 리프트에서 떨어져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 등, 내가 점점 리프트를 기피하게 될 만한 일들이 일어났다. 심지어 사망사고까지 일어나는 상황에서 내가 리프트를 애용(?)할 이유는 없었다.

내겐 ‘리프트 거부할 권리’가 충분했기 때문에 아쉬운 대로 승강기가 설치 된 역만 가게 되었다. 그래도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타야 했고 그럴 때마다 내 목숨을 담보로 해서 눈을 질끈 감고 리프트에 올랐다.

방학역에 리프트가 설치 된 모습.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에이블뉴스 DB

리프트의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보다 더 큰 문제는 리프트를 타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받아야만 하는 야유나 따가운 시선이다.

특히 장애인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의 따가운 눈초리는 나를 힘들게 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했다. 모든 상황을 대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위험한 길 대신 안전한 길을 택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용감함을 뽐내려 하는 것은 대담함이 아닌 무모함이다.

방학역에 리프트가 설치 된 모습.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에이블뉴스 DB

몇 주 전에 나는 지하철로 용산에 갈 일이 있어 길을 나섰는데 용산 행으로 환승하기 위해 내린 노량진역이 나를 실로 당황케 했다. 오래된 역전인지라 승강기는 없고, 덩그러니 리프트만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내가 가야 할 길 앞에 놓인 계단들은 첩첩산중 끝을 몰랐고, 난감한 한숨만 지어야 했다. 노량진역 역시 방학역 못지않다.

결국 난 동행인을 포함해 역무원 몇 분의 도움으로 마치 임금이 가마 타듯 많은 수의 계단을 내려왔다. 이렇듯 극단적 행동을 하면서까지 리프트를 거부하는 것. 리프트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다면 거부할 리 있을까? 뉴스에서 보도하는 소식들과 같은 일들이 실제로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과 지인들이 겪었던 지난 일들이 반드시 다시 일어나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결정에 대한 무조건적 비난이나 원색적 조롱대신 입장을 이해하고, 더 좋은 시설 확충을 위한 바람을 갖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난 겁쟁이가 아니다. 다만 신중할 뿐이다. 부디 자신과 같이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혀를 차는 등의 행위는 삼가주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경기도 성남에 사는 독자 안지수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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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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