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떠오르는 악몽 같은 기억이 있다. 얼마 전 갑자기 폭우가 내리는 날이 있었다. 다행히 가방 속에 접이식 우산이 있어서 비는 피할 수 있었지만 한 손엔 지팡이를 다른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있어야 해서 중심 잡기가 불편해서 불안했었는데 넘어지고 말았다.

시내 번화가에서 워낙 크게 넘어져 행인들의 도움을 받아 쉽게 일어날 수 있었고,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언제나처럼 왜 넘어졌는지를 곱씹어 생각해 보았는데 첫째로 나 자신이 부주의 했고, 핑계 아닌 핑계로 두 번째는 내가 횡단보도 앞 점자블록 위에 서 있었는데 그 점자블록이 낡아서 마모되고 또 폭우로 미끄러웠던 느낌이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서 장애인들의 안전이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설치된 설비들이 유지보수가 소홀해 오히려 장애인들에게 불편 또는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노후한 시각장애인 점자블록의 유지보수 문제 뿐 아니라 와상 및 척수 장애인 등 저소득 중증장애인들의 주택에 설치가 권장되고 시범사업이 실시 중인 LED전등 및 리모컨 이용의 경우, 고장이 일어날 경우 그에 대한 수리 등의 절차가 다소 복잡해 시일이 걸린다는 푸념을 동료 장애인에게 전해들은 바 있다.

전등의 경우 고장이 날 경우,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은 정전 때의 경험을 되살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부 장애유형과 노령층을 대상으로 설치 이용 중인 자동가스차단 장치의 경우 경보장치에 필요한 건전지 교체가 필요한데 물론 비장애인들이나 대부분의 장애인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일부 장애인과 노령층에게는 그 마저도 어려운 일로 느껴질 수 있다.

일부 장애인 경사로의 미끄럼 방지를 위한 ‘슬립키퍼’의 경우 경사로의 이용이 잦은 관계로 파손이 자주 일어나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통행에 방해요소로 작용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경사로 기준을 살펴보면, 그 유효폭이 1.2m 이상(예외 규정으로 90cm 가능)으로 되어 있으나 장애인화장실의 기준 변경과 같이 전동휠체어의 이용이 보편화 된 상황을 감안하면 경사로 폭 기준의 확대 개선 또한 검토할 여지가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아울러 바닥면으로부터 높이 0.75m 이내마다 휴식을 할 수 있도록 수평면으로 된 참을 설치하여야 하고 경사로의 시작과 끝, 굴절 부분 및 참에는 1.5m×1.5m 이상의 활동공간을 확보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여러 사정으로 이러한 규정을 피하고자 경사로의 길이를 단축하는 경향이 있다. 이럴 경우 경사로의 기울기는 12분의 1 이하로 해야 하나 기존건물에 경사로를 설치하거나, 높이가 1미터 이하인 경사로로서 시설의 구조 등의 이유로 기울기를 12분의 1 이하로 설치하기가 어려울 경우 경사로의 기울기를 8분의 1까지 완화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경사도가 심해져 장애인, 노령층 그리고 임산부 및 유모차의 보행 편의를 위해 설치한 경사로가 적법하게 설치 또는 유지 관리되지 못해 전도의 위험이 상존하는 위험한 공간으로 돌변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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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Kg의 미숙아로 태어나면서 출생 시 의료사고로 심한 뇌병변장애를 운명처럼 가지게 되었다. 부산장애인자립생활대학 1기로 공부했으며, 대구대 재활과학대학원에 출강한 바도 있다. 지금은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모바일‧가전을 포함한 장애인 접근성, 보조공학 등 관련 기술을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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