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주간보호센터 헬로 이민훈 원장. ⓒ에이블뉴스

내가 20대 초반 대학교 학부생활을 할 때, 학과학생 전체가 전라남도 소록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약100명의 학과학생들은 설렘을 안고 버스에 앉아 남해의 절경과 아름다움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고흥항은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고 짠 바다냄새가 코를 찔렀다.

소록도에 입도하기 위해서는 약15분 정도 고흥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는데 배 안보다는 바다를 보기 위해 갑판에 몰려 자신들만의 추억을 쌓아 갔다. 그리고 도착한 소록도. 그때만 해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남해의 어느 섬들처럼 평범해 보였는데 그곳에서 우리가 도착해야 할 교회까지 도보로 또 다시 30분을 걸어야만 했다.

한 신부님을 만났고 그분의 소개와 안내를 받으며 소록도에 정착하고 있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제야 소록도가 한센병 즉, 나병 환자들이 집단으로 살고 있는 곳이란 걸 알게 되었고 처음 만난 나병환자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병의 특성상 사람의 피부, 말초, 신경계, 상기도의 점막을 침범하여 조직을 변형시켜 시력을 잃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없는 모습이다.

신부님의 소개로 우리는 서로 인사를 했는데 한 환우가 나에게 손을 내밀더니 악수를 하자고 하였다. 심장이 폭발할 듯이 떨려왔고 망설이기만 했는데 내 뒤에서 상황을 파악한 학과 교수님이 내 앞으로 나타나시며 환우분의 손을 잡으셨다. 그리고는 아주 밝은 목소리로 안부를 물으며 나에게 고개로 자리를 피해도 된다는 신호를 주셨다. 겁먹은 나는 곧장 뒷걸음질을 쳤다.

그 이후 학과학생들이 준비한 작은 공연을 진행하고 다시 대전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섬을 떠나기 전 신부님이 말씀하신 말을 떠올렸다.

“이 섬에 현재 살고 계신 분들은 전염성이 없는 분들이세요. 너무 걱정하시지 않아도 된답니다.”

현재, 그때의 기억을 절대 잊을 수 없다.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시도했던 일들이 어쩌면 당시 겁에 질린 내 모습이 부끄러웠기 때문에 더 많은 노력을 했었던 것 같다. 환우의 모습만을 보고 겁에 질려한 내 모습에 앞으로 만날 장애인들에 대해서 더 잘해야 한다는 다짐이 생긴 건지도 모른다.

지금 장애인복지시설을 운영하면서 많은 장애인들을 만나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을 피한 적이 없다. 먼저 다가가 손을 뻗고 얼굴의 볼을 비비며 인사를 나눈다. 장애의 유형은 많지만 장애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실수가 인식개선을 함에 있어 상당한 경험적 재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건 아마도 처음이라 그랬을 것이다.

어렸던 나에게 소록도의 추억은 현재 장애인을 대할 때 적극성을 만들어 주었고, 이런 적극성은 붙임성과 인식개선이라는 값진 능력을 만들어주었다. 장애인을 나와 같은 모습의 사람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경험을 더 많은 비장애인들에게 공유하며 장애인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나눠주는 게 나의 사명감이라 생각한다.

처음 장애인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지만 이제는 어떠한 장애인이라도 내가 먼저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차별이 아닌 이해와 존중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글은 장애인주간보호센터 헬로 이민훈 원장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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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훈 칼럼리스트
사회복지법인 누리봄 산하시설 장애인주간보호센터 헬로 시설장으로 일하며 장애인들과 함께 경험하는 소소한 삶의 느낌과 감동, 사회복지현장의 희노애락을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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