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작가의 신간 '도가니'. ⓒ창작과비평

공지영의 <도가니>가 주안점으로 두고 있는 것이 장애인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소설에서는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장애인 아동들의 ‘삶’에 대한 문제는 그리 심도가 깊지 못하다. 주로 지적 장애와 청각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나오는데 소설에서 그/그녀들은 어디까지나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 될 뿐이다. 소설은 자꾸만 “아! 내가 이런 아이들의 아픔을 몰라주고!” 라며 감탄사를 외치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계속 주인공을 위해 동원된다는 느낌이 강하다. 예로 몇몇 아이가 교사 강인호 선생님이 이제까지 자신을 대하였던 다른 선생님과는 달랐다면서 무한 존경과 사랑을 보내고, 자신의 인생을 소설 필체와 거의 유사한 장문의 편지를 보내는 등의 행동에서 현실 개연성을 찾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도가니>가 독자들에게 “언젠가는 좋아질꺼야” 라는 핑크빛 환상을 심어주지는 못한 듯하다. 왜냐하면 방관자 ‘정인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방관자 독자들을 너무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설이 정말로 적극적인 해피엔딩이었으면 어떠했을까? 방관자였던 주인공이 투쟁에 직접 개입해서 투쟁을 승리까지는 아니더라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그가 ‘연민’을 느끼던 장애아동들과 서로 화목한 상태의 마무리. 그러면 지금 작품 <도가니>가 선사하고 있는 찝찝함이 어느 정도 상쇄될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야 말로 ‘핑크빛 환상’을 선사해주는 것 아닌가. 독자들은 해피엔딩을 지켜보면서, “결국 불의는 종식될 것이고 나는 지금 여기에 앉아서 어느 정도 심정적 동조만 해주면 될꺼야” 라는 생각을 가질 것 같고, 또 한명의 영웅 정인호 교사에게 어느 정도의 존경심만 보여주면 된다. 헌데 단 한 명의 영웅,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세계를 뒤엎어버리는 완결된 ‘책의 세계’는 그래도 삶은 지속되고 있다 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책의 세계는 그 순간 환희로 종식되고, 독자들은 한 편의 아름다운 세계를 보았어 라면서 눈물 찔끔 흘리면서 안심하게 된다.

그런데 소설의 주인공은 독자들을 결국 배신한다. 독자 자신과 가장 닮은 듯한 주인공이 “에이 까짓것 한번 해보지”라고 나서지를 않고, 희망과 절망이 교차할 투쟁현장을 회피하고 찝찝한 현실의 굴 속으로 기어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그게 너무도 찝찝한 것은 주인공 정인호를 손가락질 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고, 너무도 있을 수 있는 현실성 때문이다. 독자들은 <도가니>를 통해 핑크빛 환상을 획득하기는 커녕, 광주인화학교 사건이 도대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그 경과가 궁금해져버렸고, 주인공 정인호와 닮아버린 자신을 자책하게 되었다. 내가 어쩔 수 없다고 다시 돌아보지 않았던 과거의 문제들 또한 주인공 인호의 것과 마찬가지 핑계는 아니었던가 하게 되고, 미래에 닥칠 어떤 문제들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보기도 한다.

소설 <도가니>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은 <상록수>의 채영신 같은 인물이 나타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작자의 접근법과 태도에 있다. 작자는 이번 소설에서도 주 타겟팅을 운동 이력이 있는 비장애인 386세대 정도로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그녀들에게 끊임없이 이것 보세요 너무도 불쌍한 이야기가 아닌가요, 이것 보세요 너무도 파렴치한 교장이 아니던가요. 라는 감정적 호소를 하고 있다. 이건 작가 자신이 느꼈던 감정과 욕심에 휘말린 과도한 도취였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번 소설에서도 작가 공지영이 일관되게 문제시 하는 화두,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일어서십시오”라는 미약한 구호를 386세대에게 해대고 있어서, 한편 장애인과 장애인 문제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을 불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 글은 서울 종로구에 사는 에이블뉴스 독자 김덕중씨가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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