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 친구들을 만나 장애인관련 얘기를 하다보면 '이제 장애인도 살만하지 않아'하는 소리를 들을 때가 제법 있다. 열을 올리며 장애인의 현실이 어쩌구저쩌구 하면 장애인의 한계를 얘기한다. 즉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완전히 동등해 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 그 정도 차이는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구 하는 것이다. 물론 충분하지 않다는 토를 달기는 한다.

장애인의 날이 제정된지 23년을 맞고 있다. 그간 장애인의 인권은 향상되었으며 장애인운동도 양과 질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어왔다. 장애인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과 제도들이 만들어졌으며 장애인들은 조직화되고 국가권력을 상대로 로비와 협상을 할 수 있는 심지어 선거를 담보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가지기도 하였다. 또한 많은 전문언론들이 있고 시대의 흐름에 맞춘 인터넷신문들도 있다. 분명 우리는 전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쇠사슬을 몸과 휠체어에 묶고 지하철 철로에서 시위해야 하는 현실이 있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비롯하여 아직 장애인의 인권을 보장받기 위한 많은 제도와 법률을 만들어야 하는 현실이 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들과 다른 현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몇 년전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보건복지부에서는 장애인복지의 기본적인 제도는 다 만들었다는 생각이 팽배했었다. 그리고 일부 장애인단체나 관련인사 중에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야말로 장애인의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장애가 있는 미국인 법'(ADA)제정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장애인인권보장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미국의 법과 제도는 실로 우리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우리가 부러워하는 그 미국에서도 장애인은 경제적으로 가장 하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장애인인권운동가 렉스 후리덴은 "ADA는 연속되는 전진과정의 한 마디에 지나지 않는다. 장애인이 살아남기 위한 요구(need), 현존하는 허다한 서비스를 생각할 때 ADA의 광채도 빛 바랜 것으로 보이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아직 미국의 장애인들이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아직 거리에서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ADA의 수준에 이르는 길이 아직 멀었다고 인정한다면 지금 우리는 첫발을 내디딘 상황에 불과하다. 겨우 숨겨져 있던 장애인의 현실을 밖으로 꺼내 놓은 정도인 것이다.

얼마 전부터 우리는 귀족장애인(단체)이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장애운동으로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자원을 선점하여 조직을 키운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단체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 비난은 대부분 그야말로 비난일 뿐이다. 발전하기 위한 비판이 아니다. 하지만 혹여 스스로 안주하고 있지 않은가를 다시 살펴보는 겸손함을 일깨워주기에는 충분한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우리가 가야할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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