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에 신음하며 심신이 지쳐있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로서 질병 뿐 아니라 심약해진 환자의 마음까지 고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가져봅니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 뿐, 그나마 겨우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엄마와 같이 잔뜩 겁을 집어먹고 진료실을 들어오는 아이들을 위해 손수 안아주며 달래는 정도, 거동이 불편한 장애아동을 진료할 때면 아이를 진료실 침대에 뉘일 때 곁에서 그저 거들어주는 것으로 할 바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더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워 환자에게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다는 점이 제겐 항상 마음의 짐이 되었습니다. 공부를 좀 더 하기 위해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 미국으로 1년 정도 장기 연수를 떠난 적이 있습니다.

미국 입국을 위해 비자도 받아야 하고 그동안 쓰던 세간살이도 누구에게 맡겨야 하고 미국에서 살 집도 마련해야 하고 아이들 학교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눈코 뜰새 없이 바빴으나 무엇보다 그동안 진료하던 환자들을 동료의사에게 맡기며 진료의 공백이 생기지 않게 부탁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였습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직접 제가 진료하던 환자들의 상담을 받으면 되겠구나 싶었지만 시일이 너무 촉박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뇌성마비 장애아동들을 위한 사이트에서 의료 상담 코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의사는 상담자로 참여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소아 정형외과의사로서 장애아동들을 위해 어떤 조그만 역할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조심스레 담당자 분께 메일을 드려본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머무를 예정이라 직접 진료를 담당할 수는 없으나 인터넷상으로 상담은 가능할 것 같아 상담의로서 참여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하고 답변을 기다렸으나 잠깐 신상확인을 위한 전화만 한번 받았을 뿐 더 이상의 연락이 저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귀국 후 제가 근무하는 병원에 최신 시설을 갖춘 이동 진료버스와 어느 정도의 무료 진료 예산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장애 아동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예산과 시설을 갖춘 병원이 있고 일을 하고자 하는 의료진이 있으면 안될 것도 없다는 생각에 평소 알고 지내던 분의 소개를 받아 장애 아동 보호 기관의 원장선생님을 직접 뵙고 저의 진료 계획을 설명드린 적이 있었으나 구체적인 계획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혼자서는 일이 어려운지라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뇌성마비 학회를 창립하기로 하고 잠깐 추진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의 뜻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말씀만 들어보면 누구나 알만한 분을 어렵사리 뵙게 되었습니다.

당시 어느정도 이야기가 이루어졌다고 판단하였으나 그 후로 그쪽 분들과 한 두번의 전화 접촉만 이루어 졌을 뿐 일의 진행은 벽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하는 일마다 진행이 되지 않아 나의 의지와 추진력을 탓하던 중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떤 일관성이 느껴졌습니다.

‘마음의 벽’

평소 비장애인들의 장애인들을 향한 마음의 벽이 장애 없는 사회의 가장 큰 벽이라고 생각하였으나 바꿔 생각해보니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을 향해 마음의 벽을 쌓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비장애인들만 마음의 벽을 허물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도 허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선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철옹성이 서로간에 가로 막힐 것 같아서 입니다.

장애 아동들을 위해 제가 이제 또 다시 하나의 일을 시작 하려 합니다. 벽에 가로 막혀 또 다시 중간에 흐지부지 될까 벌써 걱정부터 앞섭니다.

부산에서 태어난 박수성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에서 소아정형, 사지기형교정 및 뇌성마비 담당교수로 재직중이다. 장애 아동에 대한 배려가 선진국에 훨씬 못 미치는 현실에서 다리에 생긴 기형이나 뇌성마비로 인해 보행이 힘든 이들을 치료하여 장애의 정도를 최소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이 칼럼을 통하여 장애와 연관된 여러 질환들에 대한 유익한 의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인 또는 그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한다. ◆ 홈페이지 : www.hibo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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