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딸아이 얘기를 하려한다. 우리 아이의 자라는 모습을 보다보면 아이들은 어떠한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그 의식이나 가치관에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임을 시간이 갈수록 느끼게 된다. 나는 아이가 아기 때부터 아이가 즐겨보는 tv 프로 등에 남성중심적인 고정관념을 갖게 하는 내용이 나오면 저것은 맞지 않는 내용이라고 다시 고쳐서 설명을 해주는 습관이 생겼고 지금도 가끔씩 그러곤 한다.

왜냐면 매스컴은 어린 아이들을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부분이 크기에 아이들은 매스컴에서 표현하는 모든 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즐겨보는 애니메이션 및 기타 프로들을 같이 보다보면 남성은 중심이 되고 여성은 주변이 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꼭 저런 것만은 아니야!” 라고 얘기해주지 않으면 아이는 스펀지처럼 그대로 흡수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난 지금까지 딸아이를 키우면서 한 번도 아이에게 예쁘게 크라는 식으로 말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씩씩하고 용감하게 크라고 얘기해 왔다. 정말 딸들이야말로 용감하고 씩씩하게 자랄 필요가 있지 않은가? 아들은 튼튼하게 키우고 딸은 예쁘게 키워야 한다는 뿌리 깊은 의식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나의 이러한 교육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쳐서일까? 이제는 아이가 tv를 보다가도 지나치게 남성 위주의 내용이 나오면 이젠 내가 굳이 고쳐서 설명할 필요도 없이 자기가 먼저 의문을 제기하고 때로는 비판까지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 등이 가려울 때 사용하는 등 긁개 ‘효자손’이 있는데, 그것을 나는 앉아서 전기 스위치를 켜고 끄는 용도로 주로 사용하고 있고, 가끔은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땐 회초리의 용도로 사용하기도 한다.(^^) 어쨌든 내게는 그것이 이름 그대로 ‘효자손’이다.

그런데 언젠가 아이가 뜻밖에도 그 '효자손’이란 이름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왜 아들을 뜻하는 '효자손'이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효자손은 말이 안 된다며 당장 펜을 갖고 와서는 그 나무막대에 쓰여 있는 효자손이라는 글자의 ‘자’를 ‘녀’로 바꿔서 ‘효녀손’으로 개명을 시켜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나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대견하고 흡족한 것을 뜻할 때 '효자'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인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모든 것에 남성중심적인 표현은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아이는 그것을 예리하게 캐치해 낸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엔 엄연히 효자손이 아닌 ‘효녀손’이 정말 효녀스럽게 존재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얼마 전엔 내가 별 생각 없이 아이가 사랑스럽다는 뜻으로 “아이구, 우리 공주!” 라고 했더니 아이가 웃으면서 하는 말이 “아니, 엄마 내가 무슨....... 공주라니 공주가 뭐예요, 나한테?” 그래서 나는 “아, 그렇지! 우리 딸은 공주병이 아니었지? 공주가 아닌 우리 씩씩녀!” 나의 ‘씩씩녀’ 라는 표현에 아이는 약간 장난스러우면서도 흐뭇하게 웃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는 말로만 씩씩한 아이일까? 얼마 전에 우리 아이 친구의 동생 되는 아이가 우리 애한테 엄마가 장애인 이라고 놀린 적이 있다. 그러자 우리 애는 그 아이에게 “그러는 너는 생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며 강도 높게 대처하는 것이었다. 우리 애는 엄마에 대해 놀리는 아이는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나는 아이에게 먼저 심하게 나오는 아이들은 상대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아이가 하는 말이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더 우습게 얕보기 때문에 강하게 상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좋게 넘어가면 숙맥으로 알고 더 괴롭힌다는 것이다. 그러한 딸아이를 보면서 벌써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가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참으로 나약한, 천사화 된 이미지만을 강요받으며 자라왔다. 그것이 사회에 나와서 살면서 얼마나 나를 힘들게 했는지 알기에 난 나의 딸의 그러한 강인한 모습 앞에 제동을 걸고 싶지 않다. 아이는 또한 그런 반면에 진심으로 사과하는 아이에 대해서는 부드럽게 포용할줄 아는 내면성도 지니고 있음을 나는 보았다. 얘기하다 보니 아이 자랑이 된 것 같지만 사실 엄마들이 딸아이들의 이러한 용감성은 많이 드러내고 자랑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얌전 하고 예쁘게 공부 잘하는 것만이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난 내 아이가 아들이었다면 반대로 얌전할 것을 가르쳤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힘이 앞서기 때문에 아들들에 대해서는 얌전해지는 교육을 시키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딸이나 아들에 대해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교육을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이제는 탈피해야 한다. 인성교육과 더불어 가치관의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 딸은 현재로서는 당찬 꼬마 페미니스트임이 분명하다. 바라 건데, 앞으로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진정한 의미의 페미니스트로 자라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부당함에 저항하면서도 여성과 남성의 차별이 없는, 평등과 평화가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페미니즘인 것이다. 이 땅에서 자라나는 모든 새싹 딸들이여 화이팅!!!

저는 어린 시절부터 여성과 남성을 차별하는 분위기와 가정이나 사회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것에 반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여성주의적인 의식이 싹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녀 차별은 비장애여성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애여성들은 비장애여성들이 겪는 차별보다 더한 몇 배의 차별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인 문제는 그 장애인이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 그 양상이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남아선호사상과 전근대적인 남존여비사상은 장애여성들에게 더 할 수 없는 억압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장애여성들은 가정에서부터 소외되고 무시되고 그 존재가치를 상실당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여성도 이 땅에 당당한 여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단순한 여성주의자가 아닙니다. 저는 이 땅에 당당히 살아 숨쉬는 장애여성주의자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장애여성주의적인 언어로서 표현하고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진정한 장애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그 속에 전반적인 장애인의 문제와 여성에 대한 문제도 함께 엮어나가겠습니다. 저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제도와 틀을 거부하며 장애여성의 진정한 인권 실현을 위해 장애여성인권운동단체인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여성공감 홈페이지 http://www.wd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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