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슈퍼볼 게임의 최고 스타 하인즈 워드가 날마다 톱뉴스를 차지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미국 땅에서 홀로 피부색이 다른 자신의 아들을 키운 한국인 어머니의 일화는 늘 상종가이다. 지난 긴 세월동안 워드 모자(母子)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한국 정부는 훈장을 수여하겠다고 나섰다. 마치 ‘말아톤’의 배형진을 키워낸 어머니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오히려 님비(Nimby)로 일관했던 한국사회가 들뜬 것처럼, 수영의 김진호군을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에게 절망과 회한의 눈길을 주었던 한국사회가 흥분하고 있는 것과 같은 예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도 여전히 장애인에게 따뜻하지 않은 그리고 인권적인 차원에서조차 접근하지 못하는 이 사회가 그들을 영웅시 하려는 태도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일각에서 차가운 차별을 받았던 혼혈인들의 문제가 사회문제(Social problem)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 뿐 아니라 미국 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종종 인순이, 윤수일, 박일준 들의 혼혈아 가수들의 입을 통해서 지나간 세월의 눈물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사회문제화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인즈 워드의 일화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사회문제가 되어 가고 있는 생각이 든다.

이 땅에서 혼혈아(?)가 살아가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종종 혼혈아들 특히 이국적(異國的)인 외모를 가진 혼혈아들은 미국과 같은 나라로 이민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피부색이 다른 부모로 인하려 고초를 겪기도 한다. 하인즈 워드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것처럼.

피부색(skin color)의 차이로 인하여 겪는 고통은 신체적 혹은 정신적 손상(physical or mental impairment)으로 인하여 겪는 고통과 결코 다르지 않다. 신체적 혹은 정신적 손상을 마치 인격적 결함(personal defect)으로 간주하거나 무능(disability)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그리하여 이를 장애(障碍)라 명명하는 것과 같다. 결국 이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불리(handicapped)를 겪는 것이다.

이 땅의 장애인이 장애를 손상을 입는다는 것이 본인의 즐거운 선택이 아닌 것처럼, 부모가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 이로 인하여 자신의 피부도 독특한 색깔을 갖게 되었다는 것 역시 본인의 선택이 아니다. 숙명적이고, 운명적인 것이다. 마치 모든 인간이 여자 혹은 남자라는 성(gender)을 갖게 된 것이나 각기 나름대로 다르게 생긴 외모(appearance)를 갖게 된 것, 그리고 지능(I.Q.)을 갖게 된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부모의 색다른 선택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고통을 자녀가 경험하듯이, 그러한 고통을 겪는 일이 영유아기 때부터 발생하고 있다면 지나친 주장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특히 세계화되고, 한국 땅에서 외국에 많이 나가기에 보다 많은 국제결혼이 이루어지거나 또는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 근로자들과 결혼한 한국인들이 많아지면서 이러한 문제는 과거보다 더 급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05년 초 경기도에서 보육사업의 핵심적인 사업을 제시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장애아동 보육과 아울러 다음과 같은 사업을 제시하였다.

"외국인 근로자의 자녀를 위한 보육시설이 필요하다!"

사실 경기도에는 파주, 동두천, 안산, 평택, 송탄 등 외국인들이 일하는 공단이나 군부대가 있는 곳이 대단히 많다. 이뿐이랴. 화교(華僑)들이 살고 있는 영역도 대단히 넓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자녀, 이들과 결혼한 한국인의 자녀 즉 혼혈인들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들의 문제로 인하여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교회 관계자들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근로자 뿐 아니라 그들의 자녀의 교육권, 생존권, 복지권 등은 대단히 시급한 문제이다.

그래서 이들을 영유아기 때부터 인권의 차원에서 올바르게 양육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기독교 관점에서 보면 굳이 외국에 나가서 선교할 필요가 없다. 이들을 선교하는 것이 외국인 선교이고, 이들과 이들의 자녀를 하나님의 사랑을 돌보는 것은 세계 선교이다. 외교적 관점에서 보면 이들을 잘 보살피는 것이 세계를 향한 한국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고양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또 하나의 외교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사역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신체적 혹은 정신적 손상으로 인하여 사회적 불리를 겪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과제가 있는 것처럼, 피부색의 차이로 사회적 불리를 겪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과제 또한 중요하다. 어떤 이유로도 차별이 없는 사회, 오히려 특별히 대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불리(不利)가 아니라 유리(有利)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외국인 근로자 혹은 그들과 결혼한 한국인들 사이에 태어난 자녀를 위한 보육시설(保育施設)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보육종사자(전문가)도 배출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설을 공적인 차원에서 설립하고, 이러한 곳에서 일하는 종사자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체계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바로 20년 혹은 30년 뒤에 한국 사회가 세계의 으뜸가는 특히 윤리적인 면, 가치관의 면에서 올바른 나라로 세워지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한국 땅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 중에 장애를 갖게 된 사람에 대한 인권적 대우가 있어야 한다.

제자 중 하나가 방글라데시(Bangladesh)에 선교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 죽을 뻔했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 일하다가 장애를 입고 강제 추방당한 방글라데시인이 한국인에 대한 분노로 인하여 죽이려고 덤벼들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이들을 돕도록 초청한 방글라데시 목사님의 설명으로 구명할 수 있었다. 그렇다. 한국 땅에서 돈을 벌려고 왔지만, 그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한 것 역시 한국 사회이다. 그들이 일하다가 장애를 입었을 때, 노동력의 상실이라는 관점에서 그들을 불필요한 존재로 바라보고 추방하는 것은 중세시대에 가장 비인간적인 사회의 풍습과 다르지 않다.

이 땅에서 장애를 입은 외국인 근로자의 장애에 대하여도 우리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피부색은 달라도, "장애인(障碍人)"이라는 관점에서 오히려 더욱 장애(長愛) 할 수 있어야 한다. 길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피부색이든, 신체적 혹은 정신적 손상이든 간에 그것이 장애(障碍)가 되지 않고 더욱 대접받는 이유가 되는 한국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계윤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졸업과 사회사업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한국밀알선교단과 세계밀알연합회에서 장애인선교현장경험을 가졌고 장애아전담보육시설 혜림어린이집 원장과 전국장애아보육시설협의회장으로 장애아보육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예수와 장애인, 장애인선교의 이론과 실제, 이삭에서 헨델까지, 재활복지실천의 이론과 실제, 재활복지실천프로그램의 실제, 장애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펴내어 재활복지실천으로 통한 선교에 이론적 작업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이 칼럼난을 통하여 재활복지선교와 장애아 보육 그리고 장애인가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자와 함께 세상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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