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에는 명절이 기다려졌던 것 같다. 그러나 좀 크고부터는 명절이 돌아오는 게 싫어졌다.
명절을 앞두고 명절 증후군까지는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엄청난 심적 부담이 느껴졌었다. 명절을 앞두고 엄마를 도와 음식 만드는 보조를 하면서 힘은 힘대로 들고 그러고 나면 우리 작은 집에서는 작은 아버지께서 아들 둘을 앞세우고 오셔서 명절 티는 남자들이 다 내고 간다. 우리가 큰집이나 아들이 없는 관계로(있었으나 어릴 적 사고로 잃었음) 아들 둘을 앞세운 작은 아버지는 참으로 위세 등등하셨다.
아들들이 있다는 그 엄청난 자부심과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란 정말 보고 있자면 심사가 뒤틀리기 이를 데 없었다. 그래서 명절이 더욱 싫었다.
명절 준비는 엄마와 언니 나, 이렇게 여자 셋이서 뼈 빠지게 준비하고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를 비롯한 남자 넷은 TV보고 즐기다가 준비 다 됐다고 하면 절하고 조상께 예 올리고.
작은 집 남동생들은 나한테 제대로 누나라고 부르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 애들에게 나는 그저 낮은 존재일 뿐이었다. 그래서 작은 집 식구들이 오면 인사만 하고 거의 어울리지 않았다. 이러한 명절애환은 장애여성이라면 조금씩은 다 겪었을 안 좋은 추억이다.
가부장적인 우리나라에서 명절은 남자들에게만 좋은 날인 것 같다. 여자들에게는 고생의 날이요, 남자들에겐 즐기는 날. 그 중에서도 장애여성들에게 명절이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다 고단한 날이다.
그야말로 명절이 아니라 괴로울 고를 써서 <고절>이다. 명절이 되면 장애여성이 비장애여성보다 정신적으로 고통의 강도가 더 큰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장애여성이든 비장애여성이든 여자들은 명절만 되면 도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명절이 말 그대로 명절이 되기 위해서는 장애여성들과 비장애여성들을 고절에서 해방 시켜야 한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