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갔었다. 그 곳은 동네 개인병원이었는데, 정문 왼쪽으로 경사로가 만들어져 있어서 아이가 아프면 그 병원을 주로 이용한다. 그런데 문제는 경사로가 되어있어도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인 것이다. 갈 때마다 경사로 입구에 차를 대놓기가 일쑤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갈 때마다 병원 사람들이 나와서 우왕좌왕 거린다. 차를 빼긴 빼야하는데, 차주가 누군지를 몰라 설왕설래 하다가 결국 차주가 나타난다. 그러나 정 나타나지 않을 경우엔 남자들이 전동휠체어를 통째로 들어올리기도 한다. 들림 받는다고나 할까? 사실 장애여성들은 이 들림 받음이 영 달갑지 않다. 할 수 없어서 들림 받는 것인데 사람들은 속도 모르고 기분 좋겠다고 말한다.

그날도 예외 없이 차가 경사로 입구에 놓여져 있는 것이었다. 차를 빼야만 올라갈 수 있는데 병원 관계자가 아무도 보이질 않고 단지 입구 앞에서 어떤 남자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남자가 통화가 끝나면 도움을 요청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난 그 남자가 그 병원에 온 환자의 보호자 정도 되는 사람인줄 알았다. 그 사람도 나를 봤지만 무시한 채 한참을 통화를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것 같아 아이에게 병원에 들어가서 사람을 불러오라고 말했는데, 아이가 그날따라 좀체로 말을 듣질 않는 것이었다. 길 한복판에서 아이랑 싸울 수도 없고 해서 병원 문 앞에서 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병원 사람이 나오고 다른 남자도 나오고 해서 역시 억지로 들림(?) 받아서 병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어이없는 것은 병원 문 밖에서 휴대폰으로 한참 통화하고 있던 남자가 그 병원 관계자였던 것이다. 들어가지 못해서 초조해하는 모습을 통화 하면서도 봤으면서 무시를 했던 것이다. 아니 설령 병원 관계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왜 그러냐고 물으련만 글쎄 얼마나 화급을 다투는 일로 통화는 하는지 알 순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올려주고 난 다음에야 자기도 비로소 올라와서 아는 척을 약간 하면서 원무과 쪽에 들어가서 일을 보는 것이 아닌가. 내 참 기가 막혀서......장애인이 병원에 올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고 병원에서 일 할 가치도 없는 사람 아닐까?

한 번은 이런 경우도 있었다. 내가 길을 가는데 차가 후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차 뒤로 어떤 아가씨가 그 차가 자기 쪽으로 오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 차에 탑승하려는 의도였다. 차는 천천히 후진하고 있었기에 내가 먼저 지나가는 게 나을 것 같아 그 아가씨에게 ‘잠깐만요!’라고 얘기했다. 그 아가씨가 충분히 차를 스톱 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아가씨는 개의치 않고 계속 차가 후진하도록 유도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도 그 아가씨가 어떤 뜻이 있어서 그러려니 생각하고 계속 기다렸다. 그러나 그 아가씨는 차만 자기 쪽으로 안전하게 오게 하고는 자기에게 양해를 구했던 나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차만 타고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그 때 마침 아이도 옆에 있었는데 아이가 ‘무슨 저런 이모가 다 있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의 경험을 할 때마다 막말로 기분 드럽다. 대다수는 아니라하더라도 어찌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이러할까? 내가 장애인이 되어보지 않았다 해도 그 정도는 기본 에티켓 아니겠는가?

그런 식으로 무시당하는 경우는 어쩌면 약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여성으로 살아가면서 그보다 더한 경우도 겪어봤으니까. 그러나 이런 일을 경험할 때마다 사람들의 인성교육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고 내 아이부터 제대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를 보고 자라는 딸아 너는 결코 그러지 말아라!”

저는 어린 시절부터 여성과 남성을 차별하는 분위기와 가정이나 사회에서 여성을 비하하는 것에 반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여성주의적인 의식이 싹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녀 차별은 비장애여성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애여성들은 비장애여성들이 겪는 차별보다 더한 몇 배의 차별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인 문제는 그 장애인이 여성이냐 남성이냐에 따라 그 양상이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남아선호사상과 전근대적인 남존여비사상은 장애여성들에게 더 할 수 없는 억압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장애여성들은 가정에서부터 소외되고 무시되고 그 존재가치를 상실당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여성도 이 땅에 당당한 여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단순한 여성주의자가 아닙니다. 저는 이 땅에 당당히 살아 숨쉬는 장애여성주의자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장애여성주의적인 언어로서 표현하고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진정한 장애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그 속에 전반적인 장애인의 문제와 여성에 대한 문제도 함께 엮어나가겠습니다. 저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제도와 틀을 거부하며 장애여성의 진정한 인권 실현을 위해 장애여성인권운동단체인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여성공감 홈페이지 http://www.wd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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