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운동회에 참여시키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서연 초등학교 교무실에서도 논란거리였습니다. 교무회의를 하면서 이기자 선생님이, 체육대회 참가 선수로 은혜도 내보낼까 생각 중이라고하자 다른 선생님들이 당장 고개를 내저은 것입니다.

“이은혜를 정말로 체육 대회에 참가시키겠다는 건 아니죠, 이기자 선생님?”

“그, 글쎄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언짢은 듯 되묻는 교감 선생님 말에 그만 우물쭈물 말을 흐리던 이기자 선생님이 갑자기 발끈하며 되묻습니다.

“왜요? 은혜를 참가 시키면 안 되나요?”

“안 된다기보다 은혜가 참가할 만한 종목이 없잖습니까?”

교감 선생님 말에 다른 선생님들도 맞장구를 칩니다.

“맞아요. 3학년 매스게임 ‘개미들의 행진’은 너무 과격하잖아요. 거의 줄다리기 수준인데 은혜가 그걸 어떻게 하겠어요.”

“그렇다고 달리기 시합에 내보내겠어요, 차전놀이를 시키겠어요. 어느 것이든 은혜가 끼면 질게 뻔한데.”

슬그머니 부아가 난 이기자 선

생님은 그런 걱정들을 한마디로 잘라버립니다.

“승패가 뭐가 중요해요? 어차피 교내 체육 대회는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는 거잖아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교무실 안이 금세 웅성거립니다.

“어머! 이기자 선생님이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인 줄 전혀 몰랐네.”

“피구건 뭐건 꼭 이기고야 마는 성격 아니셨나?”

특히 여자 선생님들이, 그 동안 진 걸 생각하면 아직도 분하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빈정거립니다. 이기자 선생님은 그 동안 자기가 그처럼 승부에 집착했었나, 하는 생각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 여영구 선생님이 벌떡 일어섰습니다.

“전 이기자 선생님 의견에 찬성입니다. 우선 1학년 정선생님 반에도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수동이가 매스게임에 참가하잖습니까. 그리고….”

또 다른 말을 하려는데 정선생님이 나서며 말을 막습니다.

“우리 수동인 은혜랑 다르죠. 무엇보다 수동인 몸에 아무런 병이 없잖아요.”

그 말에 그만 이기자 선생님 목소리가 높아지고 맙니다.

“병이라고요? 은혜도 병을 앓는 게 아니에요! 사고로 한쪽 다리가 좀 짧아졌을 뿐이지! 그리고 교감 선생님. 은혜가 운동회에 참가하는 건 그 아이의 권리라고 생각해요. 은혜도 이 학교 학생이잖아요.”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다른 선생님들을 돌아보며 마치 선전포고라도 하듯 말했습니다.

“우리 반이 꼴찌를 할까봐 걱정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하지만 일등을 하던 꼴찌를 하던 그건 제 소관이라고요!”

그러고는 ‘진정해요, 이선생.’하는 교감 선생님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교무실을 나와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속엔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과연 은혜가 참가할 종목이 있을지, 또 은혜 어머니는 뭐라고 하실지 아직 의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어쩌나! 은혜를 꼭 참가시킬 것처럼 말해 버렸으니….’

한숨을 푹푹 쉬며 퇴근을 하는데, 운동장 한쪽에 자기 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니 “조금만 더 은혜야!”, “잘한다!”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선생님이 가까이가자 아이들이 ‘선생님’하고 신이 나서 달려옵니다.

“은혜가 할 수 있는 종목을 찾았어요!”

은혜를 돌아보니 깽깽 발처럼 한 다리로 서 있고 의족을 신는 왼쪽다리 바짓가랑이는 아예 무릎 아래로 묶여 있습니다.

“은혜 너 의족은 어쩌고 그러고 있니?”

“벗었어요. 의족을 신으면 뛰는 게 더 느리거든요.”

은혜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합니다.

“뛰다니? 달리기 종목에라도 참가하겠다는 거니?”

“네.”

너무나 쉽게 나오는 대답에 선생님은 잠시 멍한 얼굴이 됩니다.

“차사고 나기 전에 전 늘 달리기 선수였어요. 지금도 이어달리기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자 옆에서 정원이랑 빛나가 “은혜는요, 집에서는 의족을 벗고 있어요.”,

“그래도 숨바꼭질할 땐 우리보다 더 빨리 숨어요.”하며 거들고 나섭니다. 갑자기 선생님 머릿속에도 번쩍! 불이 켜지는 것 같습니다.

‘3학년 이어달리기라면 운동장 반 바퀴! 우리 반엔 발 빠른 녀석들이 많으니 좀 느려도 되는 3번 주자로 은혜를 내보낸다면…?’

이기자 선생님은 방금까지 망설였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은혜가 할 수 있는 종목을 적극적으로 찾아보지도 않고 걱정부터 한 것입니다.

“그래. 해보자. 대신 너희들이 똘똘 뭉쳐서 우리 반이 꼭 이기게 해야 해!”

“와! 선생님이 허락하셨다!”

좋아서 팔짝팔짝 뛰는 아이들을 보니 이기자 선생님도 기운이 막 솟는 것 같습니다.

<작은 세상>의 작가 최현숙은 첫돌 지나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대학원을 졸업하며 시를 접었다가 2002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2005년 구상솟대문학상 본상(시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동화작가·콘티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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