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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서 쫓겨난 교사직

"사는 건 원래 그 정도지 뭐!"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5-10-27 00:21:50
직장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는 뭐니뭐니해도 자기 손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지체장애인 모임인 ‘푸른샘’ 출신의 선배나 동기 중에서 약대나 한의대 출신 말고는 취직자리를 구한다는 것이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였다. 할 수없이 대학원을 진학하거나 사정이 따라주는 경우에는 다시 한의대를 시험 봐서 들어가는 동료들도 여럿 있었다.

난 약대도 아니고 한의대 전공도 아니건만, 그리고 우리 어머니의 강력 추천항목이던 한복이나 편물 기술자도 아니건만 돈을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월급을 받으면 주변사람들에게 맛있는 것도 사 줄 수 있고, 돈이 없어서 쩔쩔 매고 계신 우리 어머니께 봉투를 드리면서 이런 일쯤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짐짓 무표정을 가장할 수도 있으니, 이 세상에는 돈으로 즐거워질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기 인생을 자기 스스로 구축해나갈 수 있는 당당함이 생긴다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임시직일 뿐이었다. 1년이 다하면 다시 빈 몸뚱이가 되어 훌훌 떠나야 할 처지였다. 생각하면 참담했지만, 어떻게 또 해결책이 생기겠지.......막연하게나마 마음을 돌려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임기가 다 되어 갈 때쯤, 나는 문교부(당시 교육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실지 하고 있는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어떻게든지 교사의 길이 열리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순진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었지만 한 개인에 불과한 나로서는 달리 취할 방법이 없었다.

기다리고 있는 나한테는 답이 오지를 않더니 엉뚱하게도 학교측에서 답변이 왔다. 아직 재직 중이던 학교에서 전화가 왔고, 그들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교장 선생님의 호출을 전했다.

방학 중이었는데도 교장과 서무실 직원들이 격앙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에 빠진 놈 건져놓았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해도 유분수지,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힘든 일 있을 때면 무조건 찾아오라고, 늘 따뜻하게 대해주시던 교장선생님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무섭게 변해 있었다. 사정인즉슨 내 진정서를 받은 문교부에서는 법적 자격이 없는 불구자를 왜 교사로 받아들여 문제를 만들었냐고 교장한테 문책을 했고, 그건 오점 없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교장한테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건 학교와 저와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에 대한 이 나라의 인식의 문제라고 절박한 심정으로 설명해보았지만 교장한테는 씨나락도 먹히지 않았다. 오로지 이 문제를 더 이상 문교부로 확대되지 않도록 원천봉쇄를 하는 길만이 그 분이 그토록 원해온 명예퇴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될 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어떻게 돌아 나올 수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다음 날 나는 교장 사모님의 방문을 또 한 차례 받았고, 위압적인 교장의 태도와는 달리 사정하다시피 부탁하는 늙은 부인네의 간절한 모습을 보는 순간 더 이상 내 문제로 이 분들을 얽히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요. 당신들은 당신들의 소중한 것을 끝까지 잘 지키고 사세요. 나는 내 길을 가주지요.'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상관없는 내 길이란 어떤 길이었을까? 뒤에도 몇 번의 배제와 그로 인한 소외감에 빠졌을 때, 내가 가는 길이란 그들의 길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들의 다정하고도 호의적인 얼굴이란 것도 내가 그들의 인생에 걸리적거리지 않을 때에만 나오는 것임을 처절하게 확인하곤 했다.

이렇게 집으로 쫓겨온 나는 방안에만 박혀 있었다. 길가 어디서나 눈에 띄는 남자 고등학생들을 볼 때마다 두고 온 애인을 그리는 것처럼 그 아이들을 그리워했고, 마지막 날 도망치듯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고두고 상처가 되었다. 다음 새 학기를 앞두고 마지막 아침조회를 하는 날, 교장은 떠나는 교사들에 대한 인사를 한 사람씩 시켜나갔다. 그러나 끝내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나는 내가 만난 학생들에게 당당한 한 사람의 선생이고 싶었다. 남자선생들이 봐주듯이 이리저리 관여하는 온상의 꽃처럼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존재가 아닌, 오는 것과 가는 것이 분명한 선생으로 정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도 그런 것이었다. 어떤 역경에서도 굴하지 않는 당당한 자존감을 말이다.

선생님, 지금은 어디 계셔요? 언제 한번 오시나요? 선생님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면 되나요?

학생들의 수많은 편지들이 날아왔지만 나는 답장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당당하게 가르쳤던 내용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을 살고 있었고 그런 내 모습을 노출시키지 않는 것만이 그 당시 내가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것이다.

20대의 첫 직장이란 일생을 통해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 교사직을 그토록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력하게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두고두고 나로 하여금 허무주의의 긴 그림자를 끌고 다니게 만들었다.

"사는 건 원래 그 정도 꺼정이지 않아?"

그래서 이 나이에 다시 장애인 운동판에서 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정도 꺼정이지 뭐! 기대도 낙망도 없이 저 만치 버려두었던 세상을 다시 한번 뜨겁게 끌어안아보고 싶어서 말이다.

칼럼니스트 김미선 (msmo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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