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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함께 했던 행복

교사와 학생 이상의 유대감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5-10-18 12:5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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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소원하던 대로 고등학교의 국어교사가 되었다.

18학급의 남학생들과 40여명의 남자 교사들 사이에서 유일한 홍일점이었다. 여자 휴게실은커녕 여자 화장실조차 없어서 수업시간에 몰래 남자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괴로운 건 매연공장 같은 교무실의 자욱한 담배연기였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쉬는 시간만 되면 휴식처럼 빼무는 그들의 낭만 속에서 난 언제나 컥컥거려야 했다. 그래도 좋았다.

이번 시간에는 또 어떤 방식으로 학생들을 만날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그 고민이 나는 좋았던 것이다.

실업계 고등학교여서 일찌감치 직업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던 학생들은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길고 복잡하게 하는 걸 무엇보다 싫어했다. 그래서 난 단시간에 짧게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 탈무드나 신문기사들을 읽으면서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궁리하곤 했다.

그리고 고교 시절 이재금 선생님께 배운 것처럼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작문 시간을 가졌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되고 싶은 인간, 나에게 소중한 사람,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등등, 이런 제목을 내면 투박한 사내아이들은 이게 뭐하는 물건인공?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다가 할 수없이 몇 자 긁적거려내곤 했지만 그 중에서는 심각하게 자기 생각을 토로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런 글을 보는 것이 너무 즐거웠고, 그들에게서 인간의 아름다움과 진정성을 발견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난 아무리 짧고 유치한 글에도 꼭 답글을 달아서 소중하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몇 명 학생들을 모아서 지방 글짓기 대회에도 데려가곤 했는데 무슨 정성이 뻗쳤던지 밤을 새워가며 김밥 도시락을 직접 싸서 가져가기도 했다.

한번은 자취하는 애들 중에서 몸이 약한 학생들을 몇 명 집으로 데리고 와 닭백숙을 해준 적도 있었는데 섬 아이들이라 생선은 잘 먹어도 육미는 먹지 않는다고 해서 혼자서 처리하느라 끌탕을 한 적도 있었다.

20대의 뜨거운 정열을 그 누가 말리랴!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라면 이 나이는 불가능한 것이 없을 때이다. 그야말로 순수하게 접근하고 투명하게 받아들이는 때가 바로 이 나이가 아니던가.

그런데 현실은 이런저런 이유로 20대의 힘을 가로막고 제 때 쓰이지 못하게 하는 이유나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 난 항상 주장하는 바이지만 20대에는 이해득실과 성공여부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 가치 있는 일에 미치도록 푹 빠져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는 세상의 나이가 아니라 천상(天上)의 나이이자 형이상학의 나이이다. 이 나이에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자기 속에 도취된 희열을 맛볼 기회도 없이 지지부진하게 이 세상을 떠나갈 것이다.

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겼고 바다를 좋아했다. 수업을 하다가도 창문 너머 바라보면 시시각각 그 몸을 바꾸고 있는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어떤 때는 밝은 연두색이다가 금방 짙은 남색으로 출렁이는 바다. 아침이나 저녁 일몰이면 찬란한 금색으로 빛나다가도 완전한 침묵 속에서 파도 소리만이 들려오곤 하던 밤바다….

좁은 지역이라 새로운 사람들과의 교류도 오히려 더 쉬웠다. 그런데다가 여교사라는 것이 작은 어촌에서 인정받는 직업이었고 이래저래 환대받는 분위기였다. 세상 살아가는 일이 이렇게 행복한 것일 수도 있구나, 라는 새로운 체험과 동시에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는 임시직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저리곤 했지만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했다.

교무실은 1층이었고 교실은 2층, 3층에 있었지만 난 항상 시작종보다 조금 일찍 교무실을 나섰고, 연달아 수업이 있을 때면 교무실로 내려가지 않고 다음 교실로 바로 향했다. 학생들은 내 대신 출석부를 갖다놓고 가져다주는 심부름을 기꺼이 해주었고, 그 중에는 유난히 다정하게 구는 아이들이 있어서 걔네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수업종이 울리기를 기다리곤 했다.

당시 국어 교사는 나까지 두 사람 뿐이었는데 한 분은 잘못 걸리면 그 날이야말로 송장 치루는 날로 알려진 ‘잭나이프’ 선생님이었다.

한번은 체벌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양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학생의 귀싸대기를 갈겨대면서 동시에 무릎으로 복부까지 강타하고 있어서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학생들이 이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고분고분하게 설명해주는 스타일은 머리가 아프니깐 오히려 세게 한 대 때려주는 것이 더 속편하다는 것이 아이들의 주장이었다. 더구나 이렇게 무섭게 굴다가 어떤 때 한번이라도 씨익, 웃어주면 그 웃음이 기가 막힌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들의 말이긴 했지만 이것이 남자들의 세계라는 것에 난 솔직히 충격을 먹었다.

최근 우리나라 대표축구팀 본프레레 감독이 경질되고 뚝심세고 사납게 보이는 아드보카트 감독을 새로 맞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 때의 경험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착잡해졌다. 나도 카리스마라고는 찾아볼 수없이 오히려 겁에 질린 듯 커다란 눈을 휘둥그레 뜨는 본프레레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치군단처럼 단단하고 딱딱하게 생긴 아드보카트 감독을 보자 제2의 히딩크를 보는 것처럼 이상하게 친근감이 들면서 마음이 놓이는 것이었다.

이런 자신을 보면서 내 속에도 역시 힘과 카리스마에 먼저 끌리는 천박한 속성을 확인한 것 같은 우울함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도 가능한 학생들에게 긴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했고, 쉬는 시간에도 그냥 단순하게 놀았다. 처음에 여자선생이라는 것만으로도 낯선데다가 목발까지 짚고 나타난 나에 대해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무시하거나 아예 반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학생들이 많았다. 학교측에서도 장애인 선생님을 놀리면 안 된다고 단단히 못을 박아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순수해서 내가 먼저 마음을 열기만 하면 겉으로는 단단히 닫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속에서 빼곡 문을 열고 나오는 그들의 사랑스런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점차 친해져갔고, 교사와 학생 이상의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껴가고 있었다.

칼럼니스트 김미선 (msmo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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