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도 여러 번 나를 데리고 죽으려고 하셨대요. 나 하나 때문에 다른 가족들한테 피해가 간다고 생각하신 거죠. 그래서 2살 된 나를 업고 다리위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 어린 것이 마구 울면서 ‘엄마, 나 안 죽을래!’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그때 ‘살자. 죽을힘으로 끝까지 키워 보자.’하고 결심하셨대요.”

그러면서 정원이 엄마는 아줌마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힘을 주어 말했다.

“난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해요. 하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 속 깊은 곳에 새겨졌는지, 힘든 일이 닥치면 늘 ‘난 죽었어야 해.’하는 생각이 들곤 했답니다. 그러니 아이를 두고 그런 생각 하는 거 아니에요.”

정원이 엄마 말에 아줌마는 “어머…. 벌써 그런 말을 해버렸는데.” 하며 몹시 걱정되는 얼굴로 희준이 쪽을 돌아보았다.

두 아이는 닭튀김 상자를 앞에 놓고 모래판에 주저앉아 열심히 먹고 있었다. 희준이가 ‘먹어….’하며 정원이 입에 닭고기를 넣어주었다. 동생이 없어서인지 정원이도 기분이 좋아 “고맙…”하다가 희준이가 “…엄마”하면 또 “누나라니까!”하며 펄쩍 뛰었다.

“희준이가 저러는 건 처음이에요. 다른 사람들하고는 눈도 잘 안 맞추는 앤데.”

아줌마 말대로 희준이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기분이 좋아서인지 말도 잘 했다.

“닥꼬기는 따듯해.”

희준이 말에 정원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서 맛있지.” 하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희준이가 또 “콜라는 차가워.”하자 “당연한 말을 왜 자꾸 하니? 너 애기냐?” 하며 놀렸다. 그러다가 희준이가 “희준인 6살이야. 육이 십이, 육삼 십팔, 육사 이십 사….”하자 정원이는 화들짝 놀라더니 엄마 쪽으로 후다닥 달려왔다.

“아줌마, 쟤 천재예요? 6살이라는데 구구단을, 그것도 6단을 다 외워요.”

“아니야. 희준인 자폐아란다.”

아줌마는 마치 한숨을 쉬는 것처럼 말했다.

“자폐아요? 저도 1학년 때 자폐증인 친구랑 같은 반 해봤는데, 그 애는 수학을 잘 못하던데요?”

“사람마다 증세가 다르단다. 정신지체나 학습장애 같은 다른 발달 장애와 같이 나타나는 수도 있지만 그림이나 음악, 계산 같은, 특정한 분야에서 특별한 능력을 보이기도 한단다. 그렇지만 공통된 문제는 말을 더디 배운다는 거야.”

“왜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정원이가 되묻자 이번엔 엄마가 나서서 설명해 주었다.

“자폐증은 일종의 뇌질환이라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단다. 감각에 대한 반응이 일정하지 않으니 언어 발달이 아주 힘들지. 남들과 의사소통도 잘 안되고.”

아줌마는 아이가 자폐증이란 걸 처음 알게 된 때를 떠올리며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아이가 왜 그러는지, 우린 전혀 몰랐어요. 3살이 지나도록 ‘엄마’ 소리뿐이 안했지만, 어른들이 '원래 사내아이들이 말이 늦다'고 하시기에 큰 걱정은 안했거든요. 그이가 언제야 아빠 소리 할 거냐며 자꾸 아이한테 서운해 하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병원에 갔더니….”

아줌마는 희준이가 ‘조기 유아 자폐증’이라는 말을 듣고 처음엔 의사 선생님에게 화를 냈다고 했다.

“우리 애가 왜 그런 병에 걸린 거냐며 원인이 뭐냐고 따졌죠.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은 화도 안 내시고, 원인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치료를 받아 눈에 띄게 나아진 예가 많다면서 특수교육을 권하셨죠. 그때부터 열심히 특수교육 하는 곳을 쫓아다녀 지금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때 갑자기 ‘빵빵!’하는 클랙슨(klaxon) 소리가 크게 울렸다. 아줌마는 화들짝 놀라며 “앗, 희준이가 제일 싫어하는 클랙슨 소리!”하며 일어났다. 순간, “우와악!”하며 희준이가 마구 뛰기 시작했다. 아줌마가 달려가 껴안으며 “괜찮아. 희준아, 엄마야. 엄마 여기 있어!”하며 꼭 껴안아주자 그제야 좀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아항! 그래서 치과에서 그렇게 소릴 질렀나 보다. 시끄러운 드릴소리 때문에.”

정원이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엄마는 “그 소리는 나도 정말 끔찍하더라.”하며 몸서리를 쳤다.

희준이가 좀 진정이 되자 아줌마는 희준이 때문에 닭튀김이 모래 범벅이 되어 미안하다면서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정원이랑 희준이는 아이스크림을 한 개씩 들고 그네에 앉아 흔들거리며 먹었다. 정원이는 희준이가 언어교육 받을 때 배운 말을 자꾸 반복한다는 말을 듣고 자기도 희준이랑 얘기할 때면 같은 말을 몇 번씩 반복했다.

“아이스크림은 시원해. 아이, 시원해!”

그러면 희준이도 따라서 “아이 시원해.”하는 게 재미있었다. 그러던 희준이가 그네에서 내리더니 말없이 걸어 와서는 갑자기 정원이를 꼭 껴안았다. 희준이가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옷에 닿자 정원이는 ‘얌마, 아이스크림 묻잖아.’하며 피하다가 희준이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는 자기도 얼른 꼭 껴안아 주었다. 껴안고 등을 토닥거리며 정원이가 속삭였다.

“그래, 알아. 나도 네가 좋아.”

* * * * *

그 날 저녁, 엄마가 설거지를 다 끝내도록 정원이는 거실 소파에 누워 “아이스크림은 시원해, 아이 시원해!”하는 소리만 반복했다. 엄마가 가보니 정원이는 다 먹은 하드아이스크림 막대를 빨며 책을 읽고 있었다.

“책 그만 보고 숙제하라니까!”

엄마가 빽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일어난 정원이는 “이거 안방 책장에서 찾았어요. 여기 자폐아의 행동 특성들이 나와 있어서 보는 거예요.”했다.

엄마는 책을 받아 들더니 그제야 생각이 난다는 듯 “아, 이거 예전에 특수학교 선생님한테서 얻은 거야. 읽은 지 꽤 되어서 그런지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는구나.”했다.

“엄마, 여기 보세요. 자폐아의 행동 특성. ‘눈 맞춤이 안 된다. 반복적인 행동을 한다. 사람에게 반응이 없다.’ 그런데 희준인 나랑 눈도 잘 맞추고 반응도 잘하던데?”

“이건 기본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자폐증세가 다 똑같은 건 아니야. 희준인 많아 나았다고 하잖아. 그런데 여기 봐라. ‘심한 편식을 한다’, ‘말이 아닌 소리를 낸다’? 이건 우리 알로랑 똑 같은 증세구나.”

“엄만!”

그러면서 엄마 가슴에 머리를 들이대던 정원이가 갑자기 “우욱! 이빨이야~.”하며 뺨을 감싸 안고 소파에 주저앉았다. 깜짝 놀란 엄마는 “이빨이라니?” 하더니 싫다는 정원이 입을 강제로 벌렸다.

“아~ 해! 어서 아~ 해보라니까. 어휴! 많이 썩었네. 내일 당장 치과에 가야겠다.”

어제 엄마가 갔던 치과였다. 정원이가 엄마 손에 강제로 끌려가며 “엄마, 제발!”하고 안 들어가려고 떼를 쓰자 엄마는 “더 썩으면 이를 뽑아야 한단 말이야. 이빨 빠진 알로사우르스가 되고 싶진 않겠지?” 하더니 금방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충치 치료는 별로 아프지 않다면서?” 했다. 정원이는 발끈해서 “내가 뭐 아플까봐 그러는 줄 아세요? 순전히 드릴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러는 거라구요.” 했다. 그러자 정원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겁고도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소리 안 나는 연장으로 해 드릴까요?”

돌아보니 흰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린 의사가 서 있었다. 그 의사의 두 손엔 커다란 망치며 무시무시한 톱, 펜치 등이 들려 있었다. 순간, 정원이와 엄마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끄아악~~~!!!”

비명 소리에 놀라 잠이 깬 아버지와 엄마가 정원이 방의 문을 열었을 때 정원이는 눈도 뜨지 않은 채 마구 손을 내저으며 “시러, 시러! 나 치과에 가지 않을래.”하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작은 세상>의 작가 최현숙은 첫돌 지나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대학원을 졸업하며 시를 접었다가 2002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2005년 구상솟대문학상 본상(시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동화작가·콘티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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