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나비"가 일본과 남해안을 폭풍우 속으로 밀어놓고 있는 소식이 뉴스속보로 계속 나오고 있던 퇴근 무렵, 사무실을 나서니 하늘에 떠 있는 각양각색의 구름 모양과 구름의 배경으로 지는 노을이 얼만 가슴을 설레게 하던지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나와 사진에 담고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층층이 다른 모양의 그림을 펼쳐놓은 듯 멋진 구름이 지는 저녁 해와 하늘, 자신들만의 세계를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내고 있다.

사람들은 직립보행을 하면서도 하늘보다는 땅을 보고 사는 일이 많은 내가 가끔씩 고개를 들어 오늘처럼 노을과 구름이 오묘한 풍경을 자아내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내 곁에 누가 있는지도 살피는 일도 괜찮은 일이다.

사람들은 오늘처럼 가을바람이 선듯선듯하게 하게 불고 노을이 붉은 날은 조금은 들뜨고 쓸쓸한 기분에 젖어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따듯한 커피라도 한 잔 나누고 싶어한다.무더위가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문턱에서 가을 날씨와 잘 어울리는 레드와인과 같은 사람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이 감사해진다. 나 또한 그런 친구이기를 바라기에 우리는 서로 쓸쓸한 가슴에 따듯한 우정을 기대며 그리워하는 서로가 친구다.

한 친구가 시를 읊듯 했던 말이 기억난다. 가을은 햇볕과 그늘이 공존해서 좋고, 열매와 낙엽 즉 채움과 비움이 함께 해서 좋으며 풍요와 가난이 나눔을 배우게 해서 좋으며 감사와 안타까움이 더불어 있어 좋다고 했다.

친구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그 모습이 다양하다.

첫 번째 친구는 남자보다 더 큰 배포와 여자다운 세심함을 둘 다 갖추고 여장부로 영등포 구청근처에서 전자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데 주중의 하루를 택하여 자신의 사무실로 좋은 친구들을 불러 다도모임을 갖기도 하고, 명상과 등산 등을 즐기면서 걸한 삶과 맑은 삶을 동시에 사는 친구이다.

두 번째 친구는 집 배경을 등에 지고 중간관리자에 올라있지만 자격지심이 커서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볼 듯이 해서 때때로 얄미워지고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친구다.

초등학교친구인 세 번째 친구는 소아과 의사로 어린 환자들이 귀찮아 할 정도로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떠나는 친구다. 마주치면 "어이 동창"하고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로 부를 때 그에게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천진난만하던 표정이 나타나곤 한다.

또 한 친구는 마흔에 찾은 늦깎이 사랑을 신의 축복으로 여기며 세살 난 아들을 두 사람의 분신인양 키우고, 아직까지도 닭살 돋는 사랑을 간직하면서 산다.

쪽빛하늘 끝에 산그림자가 길고 바람이 옷깃 속으로 스며든다 해도 사람의 가슴에 찾아드는 기다림처럼 길고 텅 빈 마음처럼 허전하고 서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다림과 허전함을 구든지 가슴 한 쪽에 안고 살아간다. 기다리는 마음은 애달프지만 돌아올 사람과 희망이 있으니 아름답고, 허전함은 연민과 채움을 기대할 수 있어 애틋하다.

이제 가을햇살에 바람도 따듯해지는 정을 나눌 사람들이 작년보다 더 느는 9월이 될 것이다. 사는 모습이 같은 친구는 한 명도 없지만 이웃을 살피는 마음은 서로 닮아서 얼마있지 않아 자기 방식대로 선한 사랑의 실천들을 하고서 모자라는 부문의 것들을 서로에게 SOS의 손짓을 할 것이다.

올 가을에는 차례로 떠오르는 정 깊은 친구들에게 나의 새시집 한 권 선물로 주고 싶다는 서원을 마음에 새긴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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