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진료실 앞에 가셔서 기다리세요.”

흰 가운을 입은 간호사언니가 가리키는 쪽으로 2진료실을 찾아가는 동안 정원이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많이 아플까? 무지무지 아프면 어쩌지?”

“충치 치료는 별로 아프지 않대요.”

정원이가 엄마를 안심시키고 있는데, 갑자기 다섯 살 쯤 난 남자아이가 불쑥 나타나더니 정원이 바지자락을 붙잡으며 “엄마, 엄마.”했다.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진 정원이가 “내가 왜 네 엄마냐?”하며 아이의 손을 떨치려 했지만 그럴수록 아이는 더 꼭 붙잡으며 연거푸 “엄마!”만 불렀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제 2진료실에서 나와 “희준아!” 부르며 아이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네 엄마 저기 계시잖아.”

정원이가 아이 손을 잡고 아주머니에게 데려다 주자 아이는 순순히 엄마 손을 잡고 진료실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딸 혼삿길 막힐 뻔 했네.”

엄마가 혀를 날름 내밀며 놀렸다. 정원이가 진땀나는 듯 “칫”하며 엄마 곁에 앉는 순간, “끄아악!!”하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들어 간 그 꼬마일거야. 굉장히, 무지막지하게 아픈가 봐요.”

정원이가 일부러 놀란 표정으로 와들와들 떠는 척하자 엄마는 “별로 안 아프다며?”하면서 얼굴을 지푸렸다. 진짜 겁먹은 것 같았다.

“하지만 저 괴성을 들어 보세요. 별로 안 아픈데 저렇게까지 소릴 지르겠어요?”

꼬마는 한참 더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정원이와 엄마가 겨우 가슴을 쓸어 내리 즈음 간호사 언니가 이마에 땀을 닦으며 나오더니 “최지영 님, 들어오세요.”했다. 이번엔 정원이가 엄마에게 혀를 쏙 내밀어 보였다.

* * * * *

“‘마마이스’다! 엄마, 우리 햄버거 먹고 가요.”

병원 문을 나서자 바로 앞에 패스트푸드 점이 보였다.

“싫어. 방금 충치를 뽑았는데 어떻게 먹어.”

“그럼 나 혼자 먹을게요. 와, 고소한 닭튀김 냄새!”

엄마 허락도 받기 전에 정원이는 얼른 패스트푸드 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그때 또 “끼야아악!”하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아까 치과에서 본 그 꼬마가 다른 손님 식탁에 놓인 음식을 먹겠다고 떼를 쓰고 있었다.

“희준아! 네 건 엄마가 사 준다니까!”

아까 본 그 아줌마가 발버둥치는 꼬마를 겨우 잡아서 번쩍 들었다. 손님들은 “세상에! 애 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쯧!”하며 혀를 찼다. “저거, 저거.”하며 발버둥치는 꼬마를 안고 황급히 가게 문을 나서는 아줌마를 정원이랑 엄마는 한참 바라보았다.

닭튀김을 사들고 기분 좋게 가게 문을 나선 정원이는 병원 옆에 있는 소공원에서 놀고 있는 꼬마를 다시 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모래 놀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모래판 위에서 모래투성이가 되어 혼자 놀고 있었다. 아줌마는 모래판 앞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연신 손수건을 눈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정원아, 저기 가서 꼬마랑 같이 닭튀김 먹을래? 엄마가 아줌마랑 수다 좀 떨고 싶어서 그래.”

“싫어. 엄마가 취미생활 하는 동안 나더러 저 말썽쟁이나 돌보라고?”

“말썽쟁이 데리고 노는 방법도 알아야지. 너 같은 외동이는 다른 집 아이라도 자꾸 돌봐줘야 한다고. 안 그러면 이기적인 어른이 된단 말이야. 엄마는 어렸을 때….”

“알았어요, 알았어. 또 엄마가 이모들 다 키웠다는 말 하려는 거죠?”

“하루 종일 공부 가르치고 데리고 놀았지. 밥도 먹이고. 거의 키운 것이나 마찬가지지, 뭐.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우는 소리가 나면 외할머니한테 다 함께 모둠으로 매를 맞았다고.”

“치! 큰이모도 그 소리 하시더라. 동생들 때문에 걸핏하면 빗자루로 얻어맞았다고.”

정원이가 툴툴대며 모래판으로 가자 엄마는 벤치에 앉아있는 아줌마 곁으로 가 옆에 앉았다.

“같이 앉아도 될까요? 닭튀김을 사들고 오다가 아이가 혼자 있는 걸 봤어요. 우리 아이도 혼자 먹으면 심심할 것 같아서….”

당황한 아줌마는 서둘러 눈가를 닦으며 “아, 예.”했다. 그리고 아이 곁으로 걸어가는 정원이를 걱정스레 보았다.

정원이는 꼬마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서 닭튀김 봉지를 내밀며 “너 손 씻고 먹을래, 손 안 씻고 포기할래?” 했다. 그러자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엄마”하며 다가왔다.

“얘가, 또?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네. 이리 따라 와. 손 씻어야 줄 거야.”

정원이는 아이 손을 잡고 수돗가로 가며 투덜거렸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아줌마는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저희 아이는 버릇이 없는 게 아니라….”

“혹시 자폐증인가요?”

정원이 엄마가 묻자 아줌마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네, 아주머니. 하지만 전 자폐증이 뭔지, 왜 하필 우리 아이가 저렇게 됐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정원이 엄마는 뭐라 위로할지 몰라 그저 아줌마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요. 장애아를 가진 부모는 다 그런 마음일거예요. 나도 아이를 키워보고야 우리 어머니가 날 기르실 때 얼마나 속상하고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는 내가 장애를 가졌다고 특별히 대하지 않고 다른 형제들과 똑 같이 키우셨어요. 물론 저 모르게 마음고생이 많으셨겠지요. 하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씩씩하게 키운 덕에 제가 이처럼 씩씩하고 예쁘고 성질 더럽…, 아니, 아무튼 이렇게 산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줌마는 몹시 지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전 자신이 없어요. 희준이 때문에 너무 힘이 들어 어떤 때는 차라리 함께 죽고 죽은 생각이….”

“저런! 아이가 노는 저 모습을 좀 봐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그러면서 정원이 엄마 역시 잊고 싶었던 옛날 이야기를 꺼냈다.

<작은 세상>의 작가 최현숙은 첫돌 지나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대학원을 졸업하며 시를 접었다가 2002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2005년 구상솟대문학상 본상(시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동화작가·콘티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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