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수업하는 중에 비가 쏟아졌습니다. 비 내리는 창밖을 보는 지영이는 걱정이 많습니다. 비가 오면 흙물이 쏟아져 내리고, 길이 미끄러워 어머니가 지영이를 업고 가시는 게 더 힘드십니다. 어머니는 두 손으로 지영이를 받치고, 가방과 목발까지 들고 있기에 우산을 쓸 수 없습니다. 지영이가 두 팔을 활짝 뻗어 어머니 어깨를 가려드리려 애쓰지만 결국 어머니랑 지영이 둘 다 흠뻑 젖고 맙니다.

그러데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은 비가 오면 자주 오줌이 마려운 것입니다. 걱정만 해도 벌써 오줌이 마려워 집니다. 이런저런 걱정을 하다 보니 벌써 쉬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뒷자리에 앉은 지영이 친구 두 명이 쪼르르 앞으로 나옵니다.

“지영아, 변소 가자!”

지영이네 학교 화장실은 교실 옆, 화단을 지나 저만큼 먼 곳에 따로 있습니다. 옛날에 지은 학교라 그렇습니다. 친구들과 지영이는 우산을 받쳐 쓰고 화장실로 갑니다.

재잘재잘 하하호호 즐겁게 가고 있는데, 화장실 앞에 3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들이 서 있습니다. 싱글싱글 웃으며 지영이를 쳐다보는 눈에 벌써 장난기가 보입니다. 지영이 가슴이 갑자기 쿵쿵 뜁니다. 예상했던 대로 아이들은 “쟤, 병신이잖아?”하며 슬슬 다가옵니다.

그 아이들이 가까이 올까봐 미리 겁먹은 지영이 친구들이 서둘러 큰 소리로 아이들을 쫓으려 합니다.

“뭘 보니? 무슨 구경났니?”

“볼 일 봤으면 저리 가. 남 구경하지 말고.”

남자 아이들은 1학년이 대드니 우습게 보였는지 때리려는 것처럼 손을 치켜들며 화를 냅니다.

“구경 좀 하면 어때?”

“니가 저 병신 엄마라도 되냐?”

그러자 한 친구가 지영이 앞을 막아서며 빽 소리 지릅니다.

“그래, 엄마다, 왜?”

남자 아이들은 “이게 정말!”하며 바닥에서 돌을 주워 마구 던집니다.

날아오는 돌멩이에 친구들도 맞고 지영이도 맞습니다. 돌멩이를 피하느라 몸을 돌리다가 지영이는 그만 빗물에 미끈 넘어지며 화장실 댓돌에 머리를 부딪칩니다.

* * * * *

이른 장마비가 죽죽 쏟아집니다. 지영이네 집 바깥채 문간방에는 지영이가 누워 빗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머리엔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 있습니다.

하교 시간에 맞춰 지영이를 데리러 오셨던 어머니는 양호실에 누워 있는 아이를 보자 놀라서 얼른 들춰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셨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머리에 외상 뿐 아니라 혹시 내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 며칠 학교 보내지 말고 안정시키면서 다른 증상이 나타나는지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다친 머리가 욱신욱신 아파옵니다. 하지만 머리보다 더 아픈 건 지영이 마음입니다.

‘다시는 학교 가지 않을 테야. 아이들이 무서워. 아니, 그 애들이 정말 미워!’

짓궂은 아이들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쿵쿵거리고 금방이라도 토할 것만 같습니다. 그렇지만 착하고 좋은 친구들 역시 다시는 못 볼 거라는 생각에 울컥 눈물이 솟습니다.

그 때 누군가 대문을 덜컹덜컹 흔들며 어머니를 부릅니다.

“수아 엄마 있우?”

“어머, 숙이 엄마. 천렵 간다더니 벌써 왔어요?”

(천렵; 냇물에서 고기를 잡는 일)

“글쎄 거기서 이걸 잡았지 뭐우. 이이가 당장 지영이 가져다 주자고해서 부랴부랴 오는 길이라우.”

“이거 자라 아니에요?”

어머니 목소리에 이어 숙이네 아저씨 음성도 들려옵니다.

“맞습니다. 이 놈을 산채로 목을 따서 생피를 내어 먹이면 다리가 금방 낫는다지 뭡니까?

숙이네 아주머니도 곁에서 거드십니다.

“속는 셈치고 한번 먹여 보세요. 좋다는 건 다해 봐야죠.”

“속는 셈이라니? 틀림없이 효험이 있을 겁니다. 자라나 거북이는 영물 아닙니까?”

숙이네 아주머니가 가자 지영이는 살며시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봅니다.

지영이 방 처마 아래 커다란 물대야가 놓였습니다. 언니도 숙이네 아주머니 말을 들었는지 건넌방에서 나옵니다. 다섯 살짜리 동생 수아도 언니 뒤를 졸졸 따라옵니다.

지영이는 댓돌에 나가 앉아 대야 안을 들여다봅니다. 거무스레하고 동그란 자라가 바닥에 엎드려 있습니다.

“죽었나 봐. 꼼짝도 안하는데?”

수아가 눈썹을 찡그리며 걱정스레 언니들을 쳐다봅니다.

“사람한테 잡혔는데 너 같으면 헤엄칠 기분이 나겠니?”

언니는 자라가 불쌍하다는 건지 뭔지 모를 표정으로 괜히 수아를 나무랍니다. 그리고는 마루에 걸터앉아 파를 다듬으시는 어머니께 여쭤봅니다.

“엄마. 정말 자라 피를 지영이 먹일 거예요?”

“그래야지. 빗속에 여기까지 가져오신 아저씨, 아줌마 성의를 봐서라도….”

어머니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지영이가 빽 소리 지릅니다.

“싫어! 난 절대로 먹지 않을 거야!”

다들 지영이를 쳐다봅니다. 그러다 지영이 머리에 감긴 붕대를 보니 새삼 화가 나는지 언니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큰 소리로 말합니다.

“엄마, 칼 가져올게 당장 지영이한테 자라 피를 먹이세요.”

어머니는 잠시 망설이시더니 아무래도 자라목에 칼을 댈 용기가 나지 않으시는지 서둘러

“아니, 저…, 내일 아버지가 출장에서 돌아오시면 해 달래지, 뭐.”

하십니다. 지영이는 팔팔 뛰며 싫다고 합니다.

“언니나 먹어! 난 죽어도 싫어!”

언니는 속상하다는 듯이

“바보야, 자라 피를 마시기만하면 네가 금방 뛰어 다닐 수 있다고 하잖아!”

합니다. 그 말에 수아도 자라를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며 중얼거립니다.

“어쩌면 이 자라가 용왕님이 보내주신 산삼인지도 몰라. 옛날 얘기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야.”

수아 말에 언니도 괜히 신이 납니다.

“맞아. 그러니까 지영이를 꼭 먹여야 해!”

“언니, 빨리 먹어. 그리고 다리 나아서 언니한테 돌 던진 녀석들, 가서 혼내주자. 그리고 언니랑 우리 다 같이 소풍도 가고 동물원에도 가고….”

그러는 수아 눈에 눈물이 줄줄 흐릅니다. 언니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퉁명스레 묻습니다.

“그런데 수아, 너 왜 우니?”

수아는 참았던 눈물을 한방에 쏟아내며 큰 소리로 엉엉 웁니다.

“자라가 너무 불쌍해!”

<작은 세상>의 작가 최현숙은 첫돌 지나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대학원을 졸업하며 시를 접었다가 2002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2005년 구상솟대문학상 본상(시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동화작가·콘티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