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한 마리만…. 응? 분홍색 병아리로요.”

생강 몇 조각을 사 들고 가게에서 막 나오는 엄마와 마주친 정원이가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졸랐다. 학교 후문 옆, 병아리 장수 아저씨가 팔고 있는 하늘색, 분홍색, 알록달록한 병아리들이 너무나 예뻤던 것이다. 하지만 엄마 대답은 한결 같았다.

“안된다니까. 저렇게 물감에 집어넣었던 병아리들은 얼마 못 살아. 엄만 우리 집에서 생명이 죽어 나가는 게 정말 싫어.”

엄마는 또 정원이 1학년 때 일을 기억하는 듯 했다. 1학년 여름 방학 때 정원이랑 아버지가 탄천에서 피라미를 잡아다 기른 적이 있었다. 어항이 좁다는 듯 팔팔하게 돌아다니며 잘 자라던 녀석들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한 마리씩 죽어 나갔는데, 그 때 정원이보다 엄마가 더 속을 끓였던 것이다.

엄마 마음은 알지만 그래도 길 건너에서 들리는 ‘삐약 삐약’ 소리가 자꾸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것 같아 정원이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원이는 조금이라도 더 병아리 소리가 듣고 싶어 길가 돌멩이나 떨어진 나뭇잎들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느릿느릿 걸었다. 그러다 115동 주차장으로 막 들어서는데 갑자기 위에서 뭔가 ‘파다닥’하고 떨어져 내렸다. 엄마랑 정원이가 놀랄 새도 없이 그것은 땅에 떨어지며 “팍”하는 소리를 냈다.

“이게 뭐야? 메추라기 새끼잖아?”

정원이가 위를 올려다보니 바로 옆 114동 6층 베란다에 경철이가 서 있다가 “알로, 안녕!”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곧 정원이 귀에 쩌렁쩌렁한 엄마 음성이 들려왔다.

“박경철, 너 당장 내려 와!”

경철이가 내려오자 엄마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비닐 봉투에서 생강 쌌던 종이를 꺼내 경철이한테 내밀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내려 온 경철이는 바닥에 죽어 있는 메추라기 새끼를 보더니 단박에 풀이 죽어 엄마가 준 종이위에 조심조심 메추라기 새끼를 올려놓았다.

“어린 메추라기는 날지 못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 왜 그런 짓을 해?”

엄마가 묻자 경철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냥 재미로 날려 봤어요. 다른 아이들이 그러기에….”했다. 엄마는 한심해서, 뭐라고 야단쳐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잠시 경철이를 보더니 “너희 둘 다 잠깐 여기 앉아라.”하며 화단 옆 벤치에 앉았다.

“너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초여름이었을 게다.”

* * * * *

지영이는 목발을 짚고 학교에 갑니다. 첫돌 지나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다리에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학교는 제법 먼 곳에 있습니다. 지영이가 사는 산동네에서 비탈진 길을 한참 내려가 울퉁불퉁 험한 길을 지나야 훤한 찻길과 인도가 보입니다. 거기까지는 어머니가 업고 가시다가 편편한 포장길이 나오면 어머니는 들고 오신 목발을 내어 주십니다. 지영이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천천히 걷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그제야 이마에 땀을 닦으시며 숨을 돌리십니다.

“비가 올 것 같구나.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교실 앞에서 기다려라. 응?”

초등학교 정문이 바로 앞에 보여, 이제 다 왔다고 어머니가 생각 하시는 순간, 지영이가 얼른 발길을 후문 쪽으로 돌립니다.

“왜? 거긴 한참 더 돌아가야 하잖니?”

말씀하시던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보니 정문 가까이에 남자 아이들이 몇 명 모여 있습니다. 지영이는 돌아가려고 서둘다가 비틀거립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벌써 지영이를 보고 놀리기 시작합니다.

“병신, 병신, 절뚝발이 벼엉신~~”

“못된 녀석들!”

어머니는 화를 내시지만 지영이는 그나마 아이들이 돌을 던지지 않는 것만 다행이라 생각하며 할 수 있는 한 빠르게 그 자리를 떠납니다.

그래도 학교는 재미있습니다. 선생님은 지영이를 맨 앞에 앉히고 무슨 불편한 점이 있는지 자주 물어 보십니다. 지영이는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습니다. 공부도 잘해서 어느 과목이건 늘 100점을 받곤 합니다. 그 중에서도 쓰기 시간을 제일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부르시는 대로 종합장에 글자를 씁니다. 아이들이 다 쓰기를 기다려 선생님은 자기가 쓴 것을 들고 나오라고 하십니다. 각자 자기 종합장을 들고 나가면 선생님은 빨간 색연필로 점수를 써 주십니다.

지영이는 이때가 제일 싫습니다. 선생님이 꼭 짝꿍인 화진이더러 지영이 종합장을 대신 가지고 나오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화진이는 늘 지영이가 받은 100점 맨 끝의 0에 침을 묻혀 지우고는 돌아서서 아이들한테 보여주며 큰 소리로 떠들곤 합니다.

“최지영, 10점이다, 10점!”

그래도 담임선생님은 모르는 척 가만히 계십니다. 아이들은 화진이가 교감 선생님 딸이기 때문에 야단치지 못하는 거라고 수군거립니다.

<작은 세상>의 작가 최현숙은 첫돌 지나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대학원을 졸업하며 시를 접었다가 2002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2005년 구상솟대문학상 본상(시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동화작가·콘티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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