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임금이 백성들이 사는 동정을 살피려 저자거리에 나갔다가 어떤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서서 밥을 빌러 다니는 모습을 보고 물어보았다.

"당신은 보아하니 집에서 자식의 봉양을 받아야 할 나이인데 어찌하여 밥을 걸식하러 다니는 거요?"

노인은 기운 없는 음성으로 대답하였다.

"저는 아들이 일곱인데 다들 장가를 들어서 가진 재산을 똑같이 배분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겐 재산이 한푼도 남질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은 저를 부양할 생각을 아니하니 이렇게 밥을 빌러 다닐 수 밖예요?"

노인의 사정을 들은 임금은 그에게 노래 한 곡을 들려줄 테니 꼭 외워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 저자거리에서 노래를 부를 것을 당부하였다.

노인은 그러겠노라고 약속을 하였다.

그러자 임금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들을 낳고서 너무 기뻐서 오직 그를 위해 재산을 모으고

모두 장가를 들여 고루 나누어 주었더니 이제는 나를 버리는 구나

말로만 부모를 위한다 할 뿐 죽을 때 되니 나를 버리는 구나

말구유에 곡식이 가득한데도 양보하려는 마음이 없어

늙은 말을 쫓아내는 어린 말과 다를 게 무엇인가?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어서

나를 사랑하는 이 지팡이만 못하구나

다닐 적에 나를 도와주고 어둔 밤에는 나의 벗이 되네

개천을 지날 때는 깊이를 알려주고

넘어지면 지팡이를 붙잡고 일어서니

못된 자식들보다 말없는 지팡이가 낫네

이 지팡이만이 나를 아껴주고 생각하네

임금의 말대로 노인은 노래를 완전히 외웠다. 그리고 며칠 뒤에 마을 사람들이 모인 저자거리에 자신의 일곱 아들이 모두 와있는 것을 보고 그 자리로 가서 말하였다.

"내가 노래를 한 곡 부르리다. 한번 들어봐요"

임금이 가르쳐준 노래를 불렀다. 그 자리에 있던 일곱 아들은 부끄러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부른 노래를 통하여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아버지를 예전의 권위 있는 가장의 자리에 앉혀드리고 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다.

이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식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식이 여럿 있으면 서로 모시기를 거부하고 아들만 하나 둔 부모는 자식 눈치보느라 전전긍긍하고, 딸 가진 부모는 달의 살림바라지를 하느라 허리가 휘는 세대가 내어머니와 연세가 비슷한 어르신들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자식에 대한 희생이 부모의 도리라면 자식 역시 부모에 대한 도리를 지켜야 한다.

그러나 자식은 그 도리를 잊곤 한다. 자신은 부모에 대한 도리를 다하고 있는지 생각해봄직하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자식이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키우면서 다른 자식보다 노심초사하였을 부모님과 효에 관하여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다.

세상이 바로 돌아간다는 것은 각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서서 당연히 할 일을 하고 누려야할 당연한 것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르신들은 가정으로, 버려진 아이는 푸근한 보금자리가 될 만한 자리로, 장애인들은 사회속의 한 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이 사회의 질서와 순리임에 틀림없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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