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도우미가 한걸음 앞서서 팔을 내밀어야 한단다.”

정원이가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고 아저씨를 인도로 이끌며 “바로 앞 인도에 10센티미터 높이의 턱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정원이 팔에 왼 손을 살짝 댄 아저씨는 그 말을 듣고 미리 지팡이로 턱을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인도로 올라섰다. 당연히 아까처럼 넘어지는 일도 없었다.

“차를 탈 때는 시각장애인의 왼손은 차체에, 오른손은 차 문에 닿게 해주면 안전하게 차를 탈 수 있지.”

성훈이가 택시 기사가 되어 “조심하십시오, 손님.”하며 아저씨를 안전하게 차 안으로 안내하는 척 하자 아저씨도 “고맙소, 기사 양반.”하며 차에 타는 척 했다.

가다보니 빵집 앞에 파라솔과 테이블이 있었다. 인영이가 잠시 쉬었다 가자고 해서 그 참에 식탁에서의 예절도 배우기로 했다. 파라솔 그늘이 멋진 레스토랑이 되었다.

“의자에 앉을 때도 시각장애인의 한 손은 의자에, 다른 한 손은 식탁에 닿게 해서 바르게 앉도록 돕고, 식사할 때는 젓가락을 쥔 손을 잡고 반찬이 있는 그릇의 위치를 시계 방향으로 알려 준단다.”

아저씨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인영이가 “10시 방향에 김치가 있어요.”라고 소리치자 아저씨는 “오우, 김치!”하더니 금방 실망하는 척 하며 “이런! 이건 김치가 아니고 팥빙수네.”해서 한바탕 웃었다.

아이들이 중앙공원으로 들어 설 즈음엔, 시각장애인과 함께 다니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하지만 아직은 자신이 없는 듯 정원이가 물었다.

“그런데 아저씨. 저희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럼! 잘 하다마다. 특히 이 친구는 키도 크고 덩치가 있어 아주 든든하구나.”

아저씨가 성훈이를 칭찬하자 성훈이는 한숨을 푹 내쉬며 “그 덩치 때문에 고민이에요. 전 비만이거든요. 그것 때문에 죽고 싶을 때가 많아요.”했다.

“죽다니? 넌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타입이냐?”

아저씨 말에 성훈이가 발끈 해서 “사소하다니요? 아저씨는 날씬하시니까 제 고통을 잘 몰라요.”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부드럽게 “그래. 난 내가 날씬한지, 또 네가 어느 정도 비만인지 안 보았으니 잘 모르지.”하자 성훈이가 화들짝 놀라 “어,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닌데.”했다.

“그렇지만 난 아직까지 죽고 싶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단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나도 남들만큼 내가 맡은 일을 잘 해 낼 수 있을까, 이런 것만 생각할 뿐이지.”

아저씨 말을 듣고 성훈이나 인영이나 다 휘유~하고 한숨을 내 쉬었다.

“맞아요. 우린 반성 좀 해야 해요.”

“아저씨. 저도 열심히 노력하면 날씬해 질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도 있겠다, 매일매일 열심히 뛰는데 살이 안 빠지고 견디겠니? 너희들이 매일 조깅하러 나온다면 아저씨도 매일 나와서 너희와 같이 뛰어주마. 실은 안내견을 주문해 놓았거든. 그 녀석이 오면 나도 지금보다 훨씬 안전하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게다.”

안내견이라는 말에 호기심 많은 정원이가 눈을 빛내며 꼬치꼬치 물었다.

“안내견이라면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도록 훈련받은 개 맞죠?”

“잘 아는구나. 다음 주 일요일부터 데리고 나올 텐데, 너희들도 그때 올래?”

“넷! 안내견을 한번도 가까이서 본 적이 없는데, 정말 기대돼요.”

그때 어디선가, “오정원!”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였다.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아빠 허리를 꼭 잡고 지나가며 정원이한테 소리쳤다.

“너, 집 안보고 여기서 놀고 있으면 어떡해?”

정원이가 펄쩍 뛰며 “놀다니요? 그건 제가 할 말이라고요!” 했지만 정원이 말을 무시한 채 아버지도 “그만 놀고 어서 들어오너라.”해서 정원이를 더 팔팔 뛰게 만들었다. 그런데 아저씨까지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저런. 부모님께 허락도 받지 않고 나왔구나? 그러면 안 되지.”

정원이가 “으악~, 아저씨마저!”하며 부르르 떨자 인영이, 성훈이는 서둘러 멀찍이 떨어지며 소리쳤다.

“아저씨 조심하세요! 알로가 화나면 용가리로 변한다고요!”

<작은 세상>의 작가 최현숙은 첫돌 지나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대학원을 졸업하며 시를 접었다가 2002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2005년 구상솟대문학상 본상(시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동화작가·콘티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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