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어디 계세요.”
더운 여름 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탄 오정원이 온 동네로 엄마 아빠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동네를 한바퀴 다 돌았을 즈음 지나가던 정인영과 김성훈을 만났다.
“정원아! 집에 무슨 일 있니? 왜 엄마, 아빠를 애타게 찾아 헤매니?”
“너희 부모님 가출하셨니?”
잔뜩 볼이 부은 정원이가 헬멧을 벗으며 투덜거렸다.
“잠시 다녀오신다더니 두 시간이 지나도 안 오시잖아. 아빠 찾는 전화는 자꾸 오는데, 글쎄 엄만 쌀 배달까지 시켜놓고 사라지신거야. 여러 번 전화해도 핸드폰도 안 받고.”
“어른들은 다 그래. 우리한테는 어딜 가든 꼭 알리고 가라고 하면서 어른들은 아무 말도 없이 돌아다니다니.”
인영이, 성훈이도 그 동안 어른들한테 불만이 많았는지 정원이 말에 맞장구를 쳤고 아이들은 잠시 마음이 맞아 어른들 흉을 보았다.
“맞아. 우리가 약속 좀 어기고 늦게 들어가면 난리나지.”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성훈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근데 아까 어떤 곱슬머리 아저씨가 공주병에 걸린 듯한 아줌마를 자전거에 태우고 가는 걸 본 것 같은데…,”
순간 정원이 주먹이 성훈이 배에 퍽! 박혔다.
“왕비병이야! 어디로 가셨는지 빨리 말해!”
성훈이가 배를 껴안고 비틀거리며 말했다.
“으~, 중앙공원 쪽이라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그럼, 거북선 가라앉기 전에 난 이만!”
정원이가 몸을 휙 돌려 바람같이 달려가자 “정원아, 같이 가. 우리도 조깅하러 중앙공원 가는 길이야.”하고 인영이가 소리쳤다. 정원이가 다시 돌아오면서, “조깅? 성훈인 비만 판정 받았다지만 인영인 왜?”하고 물었다. 성훈이가 흐흐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
“준비만이래.”
* * * * *
아이들 셋은 중앙공원을 향해 달렸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씽씽 달리는 정원이 뒤를 쫓아가느라 인영이와 성훈이는 숨이 턱에 찼다.
“부럽다. 나도 날씬했을 땐 롤러 블레이드 타고 신나게 달렸는데.”
성훈이가 헐떡거리며 말하자 인영이는 “그때도 정상은 아니었다, 뭐.”하며 성훈이를 약 올렸다. 두 아이는 횡단보도 앞까지 가서야 서 있는 정원이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한참 서 있어도 파란 불이 켜지지 않았다.
“뭐야? 신호등이 고장 났잖아?”
신호등에 불이 아예 들어오지 않는 걸 그제야 안 아이들은 “저 위의 신호등을 보고 차들이 설 때 재빨리 건너자.”하며 달릴 준비를 했다. 그때 검은 선글라스를 쓴 30대 아저씨가 다가와 정원이 옆에 섰다. 워낙 멋을 부리는 사람인지 흰 구두에, 짚고 있는 지팡이마저 하얀색이었다.
“빨간 불 들어왔다. 자, 빨리 빨리!”
성훈이가 소리치며 먼저 횡단보도로 뛰어 들었고 인영이 정원이도 곧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횡단보도를 반쯤 건넜을 때, 정원이 머릿속에 갑자기 불이 팍! 켜진 듯 어떤 생각이 스쳐갔다.
“맞아!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아저씨가 흰 지팡이를!”
정원이가 크게 중얼거리며 얼른 몸을 돌려 되돌아가자 성훈이가 “왜? 흰 지팡이가 뭐, 어때서?”하며 돌아보았다.
돌아보니 막 다시 움직이는 차들 사이로, 아저씨가 지팡이로 바닥을 더듬으며 길을 건너고 있었다. 정원이가 아저씨를 향해 달려가자 인영이 성훈이도 다시 돌아가면서 빵빵 경적을 울려대는 차들을 손으로 막았다.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아저씨, 절 잡으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정원이가 아저씨 손을 잡아 이끌었다. 성훈이는 급한 마음에 아저씨를 돕는답시고 얼른 손에 든 지팡이를 잡아들더니 “어서요! 빨리 오세요.”하며 쌩하니 다시 횡단보도를 건넜다. 지팡이를 빼앗긴 아저씨는 하는 수 없이 정원이 손만을 의지하고 따라 오다가 보도에서 인도로 올라가는 턱에 발이 걸려 그만 “어이쿠!”하면서 넘어질 뻔 했다.
“앗! 다치셨어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정원이가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자 아저씨는 웃으며 “괜찮다. 착한 아이들이로구나. 내 지팡이만 돌려준다면….”했다.
성훈이는 그제야 자기가 아직도 아저씨 지팡이를 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돌려 드리며 “참, 이건 들어다 드리는 게 아닌데.”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시각장애인을 처음 만난 모양이구나. 그런데 너희들 어디로 가는 길이니?”
“중앙공원이요.”
“그래? 나도 거길 찾아가는 중인데. 이 동네로 이사 온지 얼마 안 됐거든.”
“그럼 저희랑 같이 가요.”
그러면서 정원이는 걱정이 되는 듯 말했다.
“그런데 아까 성훈이가 아저씨 지팡이를 빼앗은 것처럼, 또 제가 아저씨 팔을 막 잡아 끈 것처럼 또 실수할까봐 걱정돼요. 솔직히 어떻게 도와 드려야 하는지, 방법을 잘 모르거든요.”
아저씨는 그런 아이들이 대견한 듯, “아주 쉽단다. 알고 싶다면 내가 가르쳐 주지. 이건 내가 당장 도움을 받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너희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훌륭한 젊은이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란다.”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세 아이는 아저씨한테서 시각장애인 돕는 방법을 재미있게 배우면서 중앙공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