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과 교련시간에는 늘 교실에 혼자 있었다. 지루할 때도 없진 않았지만(특히 겨울엔 너무 추웠다) 대체로 그리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엄밀히 말해 주번들과 같이 교실을 지켰지만, 꼭 얘기가 통하는 친구가 아닌 경우에 난 책을 보거나 공상을 하며 빈 시간을 보내곤 했다. 되돌아보면 그런 빈 시간이 지금의 나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넌 좋겠다. 체육 안해서... .” “넌 집에서 숙제 안 해 와도 되지?” 운동장에 나가면서 우리 반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내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나라고 왜 운동장을 마음껏 뛰고 싶지 않으랴. 물론 비장애 친구들 중에는 운동장에 나가고 싶지 않아도 체육시간이면 어김없이 나가서 뛰어야 하는 게 정말 싫은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설사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라도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가 있으며,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쬘 때는 누구라도 운동장 수업이 내키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장애 때문에 운동장에서 뛸 수 없는 내겐 그런 말들이 마치 '너 장애인이라서 좋겠다.' 하는 말처럼 들렸다. '너희들도 나처럼 되고 싶니?'라고 되묻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데 하기 싫은 것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이런 언사는 분명 언어폭력에 해당한다. 언어폭력 외에도 체육과 교련 시간 때면 운동장으로 나가면서 내게 숙제를 대신 해달라고 부탁했던 반 아이들이 있어 괴로웠다. 고1 학기초에 한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었더니 한 사람, 두 사람 숙제 부탁을 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나는 어느새 체육시간마다 친구들 숙제에 파묻혀 헤어나지 못하는 아이가 되고 말았다. 이 무슨 더러운 팔자란 말인가! 아무도 없는(아니 주번들 두명은 늘 있었다) 빈 교실에서 울분을 삼키며 남의 숙제를 대신 해주고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심지어는 돈이나 뭔가 귀중한 물건을 맡기면서 내게 ‘이거 잘 맡아줘야 돼. 잃어버리면 네 책임이다!’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내가 왜 그런 책임까지 져야 하지?

물론 악의는 없었다고 생각된다. 숙제는 집에서 해 오는 것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런 범생이는 그리 흔치 않으니까. 누구나 쉬는 시간을 이용해 숙제를 하곤 하니까. 하지만 어쩌다 다급해서 하는 부탁이 아니고 내게 부탁하는 친구는 늘 정해져 있었으며, 상습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숙제를 대신 해주어도 아이들은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았다. 대가를 바란 적은 없지만 고맙다는 표시로 사탕 하나라도 건네준 아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내가 참다못해 거절을 하면 좀 뜸하다가도 얼마 안 가 또 부탁(이 아니고 강요)을 해 오는 유독 뻔뻔한 몇몇 아이들 때문에 체육과 교련시간은 내게 더 이상 사색의 시간이 아니라 공포의 시간이 되고 말았다.

그때 억울해 하면서도 속으로만 화를 삭일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내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옳았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안으로만 화를 삭이다가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오자 나도 어쩌지 못할 정도의 위력으로 폭발을 해버리고 말았다.

“얘! 너 너무 하는 거 아니니? 한두번도 아니고 내가 왜 맨날 네 숙제를 대신해줘야 하니?”

“하기 싫음 말지 왜 화를 내고 그러니?”

그때도 그랬다. 급기야 참다 못한 내가 심하게 화를 냈지만 친구들은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았다. 어차피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서 할 일도 없을 텐데 그깟 속제 좀 해주었기로니 무얼 그리 유세냐는 반응이었다. 아마도 반 아이들 각자는 다들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내가 원하지도 않은 일을 계속해서 집중적으로 해내기를 강요받았다는 차원에서 집단폭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요즘 아이들이 겪는 집단괴롭힘에 비하면 그다지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운동장에서 체육활동을 하는 다수의 비장애인 친구들과 분리되는 것도 모자라 원치 않는 남의 짐까지 떠안아야 했던 경험은 그리 유쾌한 것이 못되었다.

따지고 보면 장애가 있는 나라고 해서 체육을 못할 이유도 하지 않아도 될 이유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장애가 있기 때문에 신체를 단련하는 교육이 더욱 필요할 텐데, 학교에서 운동장으로 나가 체육활동을 하는 친구들과 나를 분리하는 조치만을 취했던 것이 근원적인 문제였다. 미봉책으로 한 한기에 한번이었던가, 단 하루 정립회관에서 다른 장애학생들과 함께 양궁, 수영, 사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이 전부였으니... 왜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에 나가되 내게 필요한 체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특수교사를 파견하는 제도 같은 건 시도되지 않았을까? 혹시 지금의 장애학생들도 30년 전의 나처럼 친구들이 모두 운동장으로 휭하니 나가버리고 난 빈 교실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효진씨는 현재 한국장애인연맹 기획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지체 3급의 장애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을 '자기결정권'이라는 한마디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바 있어 DPI에 입문한 대책없는 센티멘탈리스트라고 소개했다. 또 그녀는 섹시하지 않다느니 의존적이라느니 무능력하다느니 하는 허위의식을 유포해 장애여성을 화형(?)시켜버리는 폭력적인 세상에 도전하는 백발마녀(일명 흰머리소녀)라고 덧붙였다. 그녀의 특기는 독설이며, 특히 편두통이 심할 때는 굉장한 마녀로도 변신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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