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외출이라도 집을 나서면 가방에는 잡지든, 단행본 시집이든 얇은 책 한 권을 넣고 다니게 된다. 간혹 기차 안이나 버스에 누가 놓고 갔는지는 모르지만 월간 잡지 한 권이 놓여 있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이 있었다. 무심코 책의 주인이 누굴까 궁금해하면서 펼쳐들었는데 눈 안으로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중병에 걸린 사람과 인삼에 얽힌 이야기였다.

"중병에 걸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이웃에게 많은 돈을 빌려 인삼을 사서 먹고 병이 나았지만 이웃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 빛을 갚을 수 없었던 사람은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라고 쓰여있는 문장을 읽으면서 왠지 우리의 정서와는 다른 어색함이 배어났다. 몇 번을 되풀이하여 읽어보아도 나에게는 일 리 없는 이야기로만 느껴져서 앞장을 넘겨 필자가 누군가를 보았더니 필자는 외국사람이었다. 필자가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로 썼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중병에 걸린 한 사람이 산삼을 먹으면 낫는다는 말을 듣고 이웃에게 많은 돈을 빌려 인삼을 사서 먹었다. 산삼 덕분에 병은 씻은 듯이 낫고, 몸이 건강해진 사람은 부지런히 일을 하여 돈을 모두 갚고 부자가 되어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빌린 돈으로 산삼을 사먹고, 그 빚 때문에 죽지는 않을 듯하다.

걱정만 하다가 목숨을 버리는 소심한 사람이라면 돈을 빌릴 담대함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는 사람들도 많고 그 중에 별별 사람이 다 많으니 그 중에 혹자는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만약에 그런 사람을 보게 된다면 빚을 갚지 못하여 죽은 사람은 불쌍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정말 못난 놈"으로 한마디씩 건넸을 것이다.

잡지에서 읽은 중병에 걸린 사람과 인삼에 관한 이야기는 글을 쓴 이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와 공감할 수 없는 너스레에 불과하다고 그렇지 않다면 문화의 차이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의 매듭을 지었다.

하지만 옛 건물이 헐리고 새 건물이 짓듯이 우리 사회도 구세대와 신세대도 날이 날수록 인식과 문화의 세대 차이가 많이 벌어지고 있으니 무엇이 우리 정서와 다르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정서도 바뀌는 게 당연하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흑백의 논리가 아니라 각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세상이 되었다. 때로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여 주고, 바꾸길 꺼려하는 기존의 사회구조에 도전을 하여 기득권을 가진 층과 충돌도 하고, 때로는 아귀다툼에 불과 하거나 알맹이 없는 빈 쭉정이인 것도 있다. 그러면서 조금씩 변화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정서와 욕구를 가진 우리 사회에서 다양화, 정보화, 세계화라는 말이 사회의 구조의 변화와 지식의 습득만을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사고가 실제로 바뀌고, 행동으로 받아들임 등 모든 것이 실천으로 그것에 따라가야 할 것이다.

빈부의 차, 다수자와 소수자, 출신배경 등 여타의 이유로 우열을 가리는 세태에서 장애인들도 다를 바 없어 가진 것 없는 장애인은 있는 장애인보다 더 발붙일 기회가 없었던 게 사실이었는데 요즈음 크게 달라지고 있는 추세다.

그리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목소리를 내야만 관심을 보여주는 사회구조 속에서 숲의 나무처럼 자신의 자리를 조용히 지키는 장애인들이 많다는 사실은 대스럽지 않게 여긴다.

극과 극을 달리며 내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갖으면서도 그들의 존재는 까맣게 잊을 때도 있고, 말이 없다 해서 자신의 탓을 그들에게 돌리는 경우도 보게 된다.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보통 사람으로 사는 장애인들이 있기에 더불어 산다는 말의 의미가바르게 실천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우리들의 정서가 필요하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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