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가운 봄 햇살 빽빽이 내려앉은 텅 빈 운동장. 이제 막 작은 꽃봉오리를 달기 시작한 울타리 장미마저, 어서 점심시간이 끝나고 저마다 그림자를 하나씩 단 아이들이 몰려나오기만을 기다리는지, 이파리조차 흔들리지 않는 한낮이었다.

하지만 아이들 목소리만은 교실 열린 창마다 왁자지껄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떠드는 소리는 3학년 4반으로 갈수록 점점 더 시끄러워졌다. 급식당번인 김홍석과 정인영이 큰 소리로 떠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끈따끈한 백설공주 제 1탄이 나왔습니다. 백-백설기가 말했다. 설-설렁탕이 말했다. 공-공기밥이 말했다. 주-주방장이 기절했다.”

은혜 급식판에 점심을 받아 들고 온 정원이가 은혜 옆에 앉으며 “썰렁하지? 우리 반이 3학년에서 제일 떠드는 반으로 찍힌 데는 아마 저 두 녀석 공이 가장 클 거야.”하자 은혜는"그래도 재밌잖아.”하며 킥킥 웃었다.

그때 바로 옆 조인 우정현이 짝인 유민희한테 “홍석이가 설렁탕 얘기하니까 설렁탕 먹고 싶다. 민희야, 나 설렁탕 만들 줄 안다. 아주 쉬워."하며 자랑을 했다. 그런데 민희 반응이 평소와 달랐다. 누구에게나 상냥하던 민희 답지 않게 “쳇”하면서 휙 돌아앉아 버리는 것이다.

당황한 정현이가 “거짓말 아니야. 지난 일요일에 나랑 엄마랑…,”하며 설명하려하자 민희는 아예 일어나 “그래, 너 잘났어."하더니 다른 자리로 가버리고 말았다.

전학 온지 얼마 안 되어 아직 반 아이들을 잘 모르는 은혜 눈에도 뭔가 이상한 듯, 정원이를 쳐다보았지만 정원이 역시 민희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몰라, 밥을 먹으며 흘금흘금 정현이랑 민희를 살펴 볼 뿐이었다.

* * * * *

그날 마지막 수업시간엔 학급회의가 있었다. 각 부 부장들이 한 달 동안 활동한 것을 보고한 후에 끝으로 자기의 의견을 발표했다. 독서부장인 오정원의 발표가 끝나자 마지막으로 미화부장인 우정현이 일어났다.

"교실 뒷벽에 만들어 놓은 '우리들의 솜씨' 판에 낙서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미화부가 정성들여 만든 그림이 엉망이 될 뿐 아니라…."

그때 갑자기 민희가 "우웩이다, 정말.”하며 신경질을 냈다. 그러자 곧 여기저기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의견 발표를 듣느라 교실 안이 조용했기에 그 내용은 또렷이 귀에 들어왔다.

"정말 재수 없어."

"그냥 말하지, 왜 저러니?"

아이들이 소곤대는 소리는 선생님 귀에도 들렸다. 교단 옆 창가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반 분위기가 이상해진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드는 순간, 김홍석이 일어 나 두 손을 비비꼬며 "어머, 이 꽃 너무너무 예쁘다~~."하고 정현이 흉내를 냈다.

아이들마저 "정현이랑 똑같다."느니 "손을 좀 더 비비꼬아야지."하며 킥킥대자 정현이는 벌떡 일어나 가방을 집어 들고 뒷문으로 휙 나가 버렸다.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이 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작은 세상>의 작가 최현숙은 첫돌 지나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대학원을 졸업하며 시를 접었다가 2002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2005년 구상솟대문학상 본상(시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동화작가·콘티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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