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일으키는데 다릴 잡으면 어떡해?”

“너 빨리 안 내려놔!”

정원이랑 빛나가 소릴 질렀다. 인영이는 깜짝 놀라 얼른 다리를 내려놓았지만 금세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리 여기저기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얘 다리가 좀 이상해. 스펀지처럼 폭신폭신한데 꽉 잡으면 딱딱하고…”

인영이 말에 주호가 얼른 다가가더니 그 아이의 다리를 주물주물 만지며 호들갑을 떨었다.

“정말 이상하다. 오옷, 사이버그인가?”

두 녀석이 떠들어대는 통에 이반 저반에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아이는 그만 다리를 그러안더니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때 3학년 연구실에서 막 나오던 담임선생님이 모여 선 아이들을 보고는 달려왔다. 선생님 뒤로 아까 본 그 아주머니도 ‘은혜야!’ 하고 소리치며 뛰어왔다.

“무슨 일이야? 누가 은혜 울렸는지 빨리 말해!”

3학년 4반 이기자 선생님 목소리가 복도를 쩡쩡 울렸다.

* * * * *

“새로 온 친구를 소개하겠어요. 이름은 이은혜”

담임선생님이 새로 전학 온 아이를 소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주호와 정인영은 교실 밖 창문 밑에 손들고 꿇어앉아서 그 소리를 들어야 했다.

“4조 김홍석, 짝 없지? 은혜, 저 자리에 가 앉아라.”

두 아이는 “어, 우리 조다.”하며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살짝 창문 안을 엿보았다. 그 순간 창문이 드르륵 열리며 담임선생님 얼굴이 나타났다.

“들어 와!”

이기자 선생님은 올해로 벌써 교사생활 6년차지만 아이들을 다독거리는 일엔 아직도 서툴렀다. 속으로는 늘, 지식을 가르치기보다는 사람을 만드는 선생이 되자고 다짐하지만 정작 지독히도 말 안 듣는 녀석들을 상대하다보면 그런 결심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이 날 수업 역시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뒤에서 정인영과 이주호가 계속 속닥거렸기 때문이다.

“홍석이 너 이제 죽었다. 사이버그랑 짝이 됐으니….”

이대로 넘어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이기자 선생님은 수업을 멈추고 교탁을 탁탁 쳤다.

“모두 주목! 다들 잘 들어요. 은혜는 일 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잃었어요. 그래서 의족을 하게 된 거예요. 의족은 고무나 금속 등으로 만든 다리인데, 의족을 사용할 수 있어 다행이긴 하지만 진짜 다리처럼 자유롭게 활동할 수는 없으니 친구들이 은혜를 많이 도와주도록.”

선생님 말씀에 여자 아이들은 아~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인영이나 이주호 같은 사내아이들은 계속 ‘그래서 사이버그가 됐구나’ 하며 호기심에 눈을 빛냈다. 못들은 척 했지만 3학년이나 된 녀석들이 너무 철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교통사고는 누구한테나 닥칠 수 있는 사고지요. 자기는 절대로 교통사고 안 당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 어디 손들어 봐.”

말의 내용 보다는 선생님의 신경질 섞인 목소리에 겁을 먹고 아이들이 한결 조용해지자 선생님은 애써 표정을 풀며 부드럽게 물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런 불행을 당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때 여러분에게 뭐가 가장 필요하겠어요?”

그 물음엔 자신이 있는지, 왁자지껄 아이들의 대답이 쏟아져 나왔다.

“유명한 병원이요.”

“아니야, 유명한 의사야.”

“경찰을 불러야 해요.”

“변호사부터 불러야 할 걸?”

“보험회사요. 보험금을 많이 받아야 한대요.”

선생님은 갈수록 영악해지는 아이들에게 넌더리가 나는 듯 양미간이 또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그때 반에서 제일 키가 작아 ‘미니’라고 불리는 민희가 손을 들고 또박또박 말했다.

“어머니요. 전 아프면 어머니가 곁에 계셔야 빨리 나아요.”

민희 말에 선생님은 구원을 받은 듯 얼굴이 환해졌다.

“맞아요. 첫째는 어머니, 즉 고통을 함께 나누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가족이 필요하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바로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야 할 친구들 이예요. 그런데 너희는….”

선생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돕기는커녕 뭐, 사이버그? 너희가 아플 때 친구들이 놀린다고 생각해 봐. 어떤 마음이 들겠어, 엉?”

교실 안이 조용해지자 선생님은 칠판 앞으로 가며 다시 애써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그런 뜻이 담긴 노래가 생각났는데, 가사를 적을 테니 함께 불러 봅시다.”

그때 또 누군가 “지금 읽기 시간인데요.” 라고 해서 기어코 “음악 시간이랑 바꾸면 되잖아!”하는 짜증 섞인 담임 목소리를 듣고야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작은 세상>의 작가 최현숙은 첫돌 지나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대학원을 졸업하며 시를 접었다가 2002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2005년 구상솟대문학상 본상(시인상)을 받았다. 지금은 동화작가·콘티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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