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참 많은 이름들이 있다. 사물에 붙여진 각각의 이름은 각각의 속성을 가려 붙여진 것이기에 사람들은 이름만을 듣고도 그것이 무슨 형체를 하고 있으며 그 쓰임이나 필요가치를 대강 짐작하게 된다.

이것은 이런 이유로 이런 이름이고 저것은 저런 모양을 하고 있어 그 이름이 어울린다는 식으로 사물을 편리하게 구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지만 너무 많은 이름은 때때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곤 한다.

더욱이 요즘과 같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첨단의 사회에서는 새롭고, 이해하는데도 한참거리는 이름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다보니 세상물정에 어두워 급변하는 사회를 채 따라가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그것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그 의미를 몰라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이름을 붙이기도 좋아하지만 오래 전부터 우리들 곁에 있어온 순박한 이름에 애착을 갖고 간직한다.

. 우리가 밥상에 자주 올리는 감자에 꽃이 핀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감자는 가지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용식물로 흰색 꽃과 자주색 꽃이 핀다.

생명이 있는 것이면 마찬가지겠지만 꽃은 피어서 종족보존의 역할을 한다. 꽃이 피고 진 자리에는 열매를 맺고 그 열매 안에는 씨앗이 있어서 다음에 다시 싹을 틔워 한 그루 나무가 되가나 한 포기 식물이 된다.

하지만 감자 꽃은 그렇지 않다. 감자꽃은 꽃이 진 다음에도 열매를 맺지 않는다.

씨앗을 맺지 못하니 씨앗 대신 씨감자를 묻어두었다가 심는다.

얼마전 여행을 다녀오던 길에 나는 차창밖 언덕 비탈밭에 무더기로 피어있던 감자꽃을 만난 적이 있다. 감자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애수를 느끼게 할 만큼 곱고 예뻤다.

내 옆자리에는 육십을 바라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는데

"나는 감자꽃을 보면 불임인 우리 며늘아기를 닮은 것 같아서 마음이 짜안해진다우"

라고 말씀을 하며 가는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아들 내외는 결혼 한 지 7-8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어서 용하다는 한의사를 찾아가 모든 처방을 받아 한마음으로 따르고, 좋다는 약도 다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불임이 며느리의 자발적 의지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운명이기에 누구를 탓할 수 없어 고심한 끝에 여자아이를 입양하여 일곱 살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둘째 손자를 두려고 병원에 가서 시험관 아기가 가능한 지 검사 중에 있는데 시험관 아기가 여의치 않으면 둘째도 입양을 하려 한다고 하였다. 입양하여 기르는 것도 직접 나은 아이 못지 않다고 덧붙였다.

꽃색깔이 흰색인 감자꽃에서는 흰색 감자가 나오고, 꽃색깔이 자주색인 감자꽃에서는 자주색 감자가 나오는 것처럼 손녀가 자라면서 성실한 아들내외를 닮아가기를 기도한다고 하였다.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늘 누구나 생각은 할 수 있으나 실천으로 옮기엔 어려운 이야기라서 가슴 깊은 곳에서 솟는 그 무엇이 가슴을 싸하니 쓸어 내렸다.

아직 입양에 대해 긍정적이지 못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아들 내외를 위해 입양을 한 그 쉽지 않은 결정은 내 자식만을 따지는 우리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던져주었다.

차창 밖 비탈밭에 피어있는 감자꽃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줄곧 그 아주머니를 생각하였다.

감자꽃은 피었다가 진 후, 열매를 맺지는 않았지만 땅속에서 실한 감자들이 쑥쑥 잘 자랄 것이다. 그 감자가 사람들의 일용양식도 되어주고 씨감자로 겨울에 저장되었다가 내년에 걸음걸이가 늦은 봄이 다시 찾아오면 씨감자는 자라서 꽃을 피워 손짓을 하지 않을까?

그리고 훌쩍 떠난 여행길에서 가슴 싸하게 했던 아주머니를 만나, 임신하여 배가 부른 며느리 소식이나 입양한 둘째 손자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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