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성 담론?

아니, 장애인을 보고 성욕이 당겨야지...원.

자원봉사도 웃기지만, 자유로운 교재라니.....

장애인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부터 익혀라.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이 무엇을 향유한단 말인가?

밥값이나 하면서 권리를 주장하라.

너무 기가 막혀서 한마디 쓴다.

-기가 막힌 장애인 -

(위의 글은 지난번 ‘장애인의 성 섹스 자원봉사가 대안이 될 수 없다’ 에 리플로 달린 닉네임이 ‘기가 막힌 장애인(이후 글쓴이라고 한다.)’ 이라고 밝히신 독자가 쓴 글이다.

이 글을 발췌하여 칼럼을 이어가는 이유는 이 리플 안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난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의식이 오히려 장애인의 진정한 사회적 권리가 무엇인지를 되짚어 보게 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글의 진행은 글쓴이에게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전개한다.)

글쓴이는 글의 두 번째 문장에서 ‘아니, 장애인을 보고 성욕이 당겨야지, 원’ 이라고 하셨습니다. 영화 [오아시스]에서 경찰이 장군에게 공주를 보고 성욕이 당기냐고 묻던 대사가 생각나네요.

장애인들의 성적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면 조금은 동의를 합니다. 그것은 신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성적 매력이 크게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정보의 70% 이상을 시각을 통해 획득하는 이 세상에서 성적 매력은 비교적 자연스러운 몸에서 맘껏 드러날 수 있으니까요.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몸이 뒤틀리고, 침이 흐르고, 다리를 절고, 목이 짧은 등의 신체적 조건은 확실히 좀 더 자유로운 몸의 언어를 표현내지 못할 수 있지요. 그 점에서 맞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성욕이 당긴다는 것은 장애로 인해서 축소 될 수가 있으나, 단순히 신체적 몸짓만이 성욕을 당기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급부로 장애가 없는 비장애인들은 모두가 성욕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 눈에 안경이지요.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장애인에게 성욕을 당겨달라고 요구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 역시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성적 욕망이 있고, 이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이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부정해서 안 된다는 것이 내 주장의 요점입니다.

다음 글에서 글쓴이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원봉사도 웃기지만, 자유로운 교재라니.......

장애인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부터 익혀라.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이 무엇을 향유한단 말인가?

글쓴이의 글을 보면, 장애인에게 상당한 감정이 있는 듯 합니다. 문자 그대로 ‘몸도 혼자 가누지 못하면서 무슨 자유로운 교재나, 남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이 무엇을 향유한단 말인가?’하셨는데 여기서 몇 가지 짚어보겠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남의 도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강도가 다를 뿐 입니다. 다시 말해서, 몸이 불편해서 이동하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장애인만이 자기 스스로 살아가기 어려운 건 아니랍니다.

왜 그런지 함께 살펴볼까요?

우리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 누구가가 생산해 낸 상품들을 소비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상품을 소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화폐를 얻거나, 응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산에서 나물을 캐서 먹으며 산다면 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즉, 짐승의 가죽을 입고, 동굴 속에서 혼자 살아간다면 조금은 말이 됩니다. 그러나 상품 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이라면 최소한의 삶도 구성원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화폐를 얻기 위해서는 노동력을 제공할 수밖에 없고, 그 노동력을 사는 누구가가 또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이란 최소 단위의 조직을 통해 경제적, 정서적 지원을 받으며 확대되는 사회는 거미줄처럼 얽힌 구조에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주고 받는 안정적인 체제를 구축합니다. 따라서 개인마다 구체적인 내용이 다를 뿐이지,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돕고 돕는 관계 안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장애인들은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서 그 도움의 정도와 내용이 다른 것일 뿐입니다. 직접적으로 두 발 혹은 두 팔로 움직이지 못한다고 해서 삶을 향유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아닙니다. 결론을 내린다면, 글쓴이는 장애인의 성 문제에 아주 단순히 접근을 했습니다. 이 접근 방식에서 각 개인을 파편화시키는 비사회적인 발상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글쓴이는 ‘장애인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익혀라’고 충고했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 이 말은 장애인 당사자라기보다는 장애인을 집 안이나 특정 시설에 가두고 주체성과 자기 결정권을 침범하여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차단하는 사람 혹은 세력에게 던져져야 하는 말인 듯합니다.

물론, 장애인이 스스로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을 익혀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몸을 가누지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스스로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가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힘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겠지요.

결국 자신의 힘으로 산다는 건 비장애인들에게도 필요한 게 아닐까 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장애/비장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이 되어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원칙적인 내용들이지요.

마지막으로 글쓴이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밥값이나 하면서 권리를 주장하라.

지당한 말씀입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너무나도 당연히 밥값을 해야죠. 이 말씀의 본질은 사회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유독 장애인들에게 밥값을 할 기회를 차단하는 사회적 차별과 억압을 말하지 않은 게 안타깝습니다.

장애인 당사자들은 애타게 자신의 밥값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당사자의 의도와는 달리,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교육 현장에서 철저하게 배제당하고, 노동시장에는 진입조차 하지 못하는 가슴 답답한 상황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차라리 이런 생각을 합니다. ‘밥값 할 권리를 달라!’

밥값은 삶의 질이란 측면에서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도 무척 힘들어하는 난제입니다. 현재 실업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오죽하면, 청년 실업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부가 장려금까지 지급하면서 청년 실업률을 낮추려고 하겠습니까? 숫제 말로, 팔과 다리가 멀쩡하고 젊은 힘이 넘치는 사람들이 밥값을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살펴본 것처럼, 실업의 문제는 사회구조적인 성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값을 하고 나서 성을 향유해라 한다면 글쓴이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무엇을 다시 고민해봐야 할지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성적 욕망은 인간이게 만드는 근본적인 열망이고 이는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추하거나 더러운 형태가 아니며, 고상한 어떤 말씀에 밀리는 가벼운 내용도 아니라는 걸 또 다시 강조해서 나쁠 건 없을 것 같네요.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무엇이 우선이고 나중이라고 단정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글쓴이의 글을 보면서 편견과 억압, 차별을 보다 생생하게 느끼게 되었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장애인들의 성적 권리가 왜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성적 권리와 향유는 장애/비장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되게 하는 근본적인 것입니다.

칼럼니스트 박지주씨는 중 2때 척수염으로 인해 학교를 중퇴하고 재가장애인으로 5년간 집에서 지냈다. 22살 운전을 배워 세상과 어울리면서 24살에 중학교 검정고시에 도전했고, 늦은 28살에야 숭실대학교에 들어갔다. 그 후 비장애 중심의 사회와 싸우며 장애인 학습권 침해에 대한 소송으로 세상에 정면도전함으로써 많은 장애인에게 당당한 권리를 알게 했다. 그녀는 그렇다. 산다는 게 행복한 여자. 때때로 밀려드는 어려운 고통들도 삶의 재료라고 여기며, 노래로 풀어버리는 여자다. 가장 은밀하면서도 사적영역으로 치부되어, 자유롭게 섹스이야기를 못하는 사회에 사는 중증장애여성. 장애인의 성을 이야기 하면서, 인간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질 수 있는 편견과 차별을 되짚어보고, 억압된 성을 풀어헤쳐, 행복한 성을 누리기 위한 과감한 섹스이야기를 진하게 하려고 뎀비는 뜨거운 여자. “자! 장애인들이여! 우리 맘과 몸에 맞는 거 한 섹스 여러 판하고 죽읍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