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눈부신 5월의 숲길에는 아카시아꽃과 이팝꽃이 하얗게 피어있습니다.

짙푸른 잎들은 햇살을 닮아 눈부시고 바람결에 하얀 꽃잎들이 융단처럼 길 위에 깔립니다. 그리고 꽃이 진 자리에는 또 다른 꽃이 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봄은 오고 가는 것인가 봅니다.

오르던 발걸음을 멈추고 바람결에 떨어져 내리는 꽃잎을 무심히 바라보는 늦은 오후의 산길은 적막합니다. 만개했던 꽃들이 그 향기와 자태를 잃어 가는 오후는 아련한 기억의 조각들이 내 그리움의 저편에서 떠오르고 모든 것이 인연인 존재의 소중함을 채득해 가는 과정인 것만 같습니다. 그 기억의 조각들은 엄마의 손을 잡고 내려오던 아이들이 까르르 웃음꽃이 되어 아름다운 선문답처럼 다시 흔들립니다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듯이 행복은 누구에게나 그리고 어디에나 있다고 여겨집니다. 아마도 그것은 사람이나 지위, 빈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가려서 온다고 한 참뜻을 알 것만 같습니다.

욕심 없이 사는 일은 고요히 불고 가는 바람 같은 것 아닌가 합니다.

소나무 숲에서 솔바람 소리가 나고 대나무 숲에서 대나무바람소리가 들리듯이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좌선하는 마음의 고요 속으로 어디선가 툭 하고 굴러온 돌멩이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는 것, 내 마음을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물결이 잔잔할 때 달이 잘 보이듯이 마음 역시 모든 생각을 놓고 고요해질 때 비로소 마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산길의 하루도 저물고 있습니다. .

이제 피안의 저편에 올라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을 하는 나에게도, 산 속의 모든 것에도 짙은 어둠이 찾아오려 땅거미가 밀려듭니다. 연둣빛에서 초록빛으로 색을 바꾸는 나무들을 무심으로 바라보고 서서 숲의 저무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길에서 오랜 벗이라도 동행을 한다면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산천초목이 하루가 다르게 초록빛을 짙게 하는 봄의 끝자락에서 오랜만에 절친한 벗과 좋아하는 시 한 줄 읽으며 함께 누리는 오후의 적막은 참 고요하고 행복하였습니다

짐을 푼 친구의 집 뜰에 노을이 두런거리고 산자락을 돌아 어둠이 내리고 있다.

땀을 흘리며 벗을 찾아 올라온 한적한 산길에 뿌린 그 알 수 없던 기쁨으로 저절로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기도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기억조차 까마득했던 벗, 그대를 다시 만나 따사로운 차 한잔을 나누며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던 봄밤은 이 봄에 피었다가 지고 또 피는 꽃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세상을 참되고 바르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며 웃음 짓던 벗, 그대의 우정을 찾아가는 길은 따로 없었습니다. 그 마음이 이끄는 곳에 길은 곧 있었지요.

벗이여, 마음에 하늘을 그리면 햇살이 내리고, 마음에 산빛을 그리면 푸른 숲이 되고

만물은 마음에 그리는 대로 되어간다고 했던 그대의 말이 기억납니다 .

우리 우정도 서로를 기억하며 보듬어주는 마음을 잊지 않았기에 깊어진 것입니다.

푸르름이 짙어 가는 이 계절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어야 이웃도 함께 사랑하게 된다는 대화를 다시 나누며 신록의 숲을 걸어보기로 해요.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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