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바뀜은 사람이 일생을 사는 일에 대입할 수 있고, 사계절은 오래도록 인생의 성숙의 단계에 비유되어왔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소년기, 신록 가득한 여름은 청년기, 결실과 버림이 공존하는 가을은 장년기, 겨울은 노년기에 비유하면서 무릇 계절의 바뀜으로 우리는 일상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마음을 다지기도 한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도 한 동자승이 소년기, 청년기, 중년기를 거쳐 장년기에 이르는 파란 많은 인생살이를 신비로운 호수 위 암자의 아름다운 사계(四季)를 배경으로 그려진다.

첫째는 어떤 운명을 지는 봄날.

만물이 소생하는 봄. 숲에서 개구리와 뱀, 물고기에게 돌을 매달아 괴롭히는 짓궂은 장난을 치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터트리는 동자승.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승은 잠든 아이의 등에 돌을 묶어둔다. 잠에서 깬 아이가 울먹이며 힘들다고 하소연하자, 노승은 잘못을 되돌려놓지 못하면 평생의 업이 될 것이라 이른다 노승의 말은 봄날에 취한 한 사람이 평생을 지고 가야 하는 인생의 ‘업’을 예고한 것인 듯 싶다.

둘째는 욕망과 집착을 알게 되는 여름.

아이가 커서 소년이 되었을 때, 산사에 동갑내기 소녀가 요양하러 들어온다. 소년의 마음에 소녀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일어나고, 노승도 그들의 사랑을 감지한다. 소녀가 떠난 후 더욱 깊어 가는 사랑의 집착을 떨치지 못한 소년은 산사를 떠나간다.

셋째는 구원과 죄 사함이 내포되어있는 가을.

절을 떠난 후 십여년 만에 배신한 아내를 죽인 살인범이 되어 산사로 도피해 들어온 남자. 단풍만큼이나 붉게 타오르는 분노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불상 앞에서 자살을 시도하자 그를 모질게 매질하는 노승. 남자는 죄의식에 근간을 둔 인간본성의 ‘악함과 파괴본능과 공격적인 욕망에 지배되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고 노승이 바닥에 써준 반야심경을 파면서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른다. 선함과 악함은 인간 내부에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여 여름 땡볕을 이겨낸 구원과 죄 사함의 길을 내고 있다.

넷째는 무의미한 삶 버려 내면의 평화를 구하는 겨울.

중년의 나이로 폐허가 된 산사로 돌아왔던 남자는 다비식을 마친 노승의 사리를 수습해 얼음불상을 만들고, 겨울 산사에서 심신을 수련하며 내면의 평화를 구하며 정진한다. 우연찮게 절을 찾아온 한 여인으로부터 어린아이를 받아들이게 되나 여인은 결국 죽는다.

여기서내면의 비움을 위해 고행을 자처하는 장년승의 걸음걸음은 업을 풀기 위한 씻김굿과도 같이 처절하다. 그 고행 끝에는 과연 내면의 평화는 장착됐을까 하는 물음표를 찍게 한다.

다섯째는 그리고 다시 봄.

노인이 된 남자는 어느새 자라난 동자승과 함께 산사의 평화로운 봄날을 보내고 있다. 동자승은 그 봄의 아이처럼 개구리와 뱀의 입 속에 돌멩이를 집어넣는 장난을 치며 해맑은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새로운 사계의 시작이다

이 영화에서 문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암자로 들어가기 위한 문(門)과 암자 안에도 벽이 없는 문이 있다. 이 문은 암자와 바깥세상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고, 나와 세상의 경계선이 되기도 하고, 자아와 탈 자아의 벽이기도 한다. 바깥 세상의 사람이 문을 통해 들어옴으로 하여 계절의 바뀌고, 커버린 동승이 문을 통해 바깥 세상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문의 열고 닫음의 순간에 느껴지는 인생의 흐름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펼쳐진다.

단순함 속에서도 사람이 사는 일은 선함과 악함의 외줄을 타는 고행길인 지도 모른다. 짧고 미흡한 앎은 각자의 답을 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팍팍하게 사람 사는 일에 이의 정답 같은 것은 없다.

사람의 인생은 ‘희망’이란 단어로 건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오히려 삶을 억압하는 건 희망이 아닐까 한다. 정작 희망을 안고서도 생활의 굴레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해보다 늦게 피는 봄꽃의 향연을 보면서 영화 한편에 담긴 의미를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 같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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