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들려오는 소식들은 아직도 긴 겨울의 터널 속을 달리고 있는 기분이다.

봄기운 가득히 밀려와 춥디추웠던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할 우리의 3월은 산과 들과는 달리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방송인 이은주의 자살, 노점상을 하던 청각장애인의 자살, 한강다리에서 투신한 뇌병변장애인의 소식 등 우울한 소식들로 가득하였다가 4월을 향해 가고 있다.

그렇지만 계절이 가고 오는 것처럼 일상생활에 묻혀 살아야 하는 우리 주변의 보통사람들은 장애인들에 대한 시민의식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 속에서 보편적 가치로 장애인의 생활과 인식들이 새로운 당위성을 가지고 권익증진을 의해 인권운동도 하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도 복지서비스를 늘려가면서 인식들의 전환과 사회복지의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점점 더 나은 쪽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이 사회의 전반인 흐름 뒤에는 더 빠른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그 흐름에 여전히 역행하는 다른 모습들이 존재하기도 하다.

일요일 지하철 1호선 안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이다.

오후 두 시가 넘은 지하철 안은 빈자리가 듬성듬성 보일 정도로 한산하였다.

자리에 앉아 자세를 바로 하니 맞은 편에 세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그들의 대화하는 모습이 젊음이란 게 저래서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쾌해 보였다.

열차가 휘경역에 도착할 즈음에 "이 늙은이 좀 도와주시오" 하는 소리가 멀리 있는 출입구 쪽에서 들려왔다. 1호선 지하철에는 승객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애인과 어르신도 많고, 잡상인과 특정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심심지 않게 볼 수 있기에 구걸하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 여기고 있었다.

"좀 도와주시오"

하는 어르신의 모습은 열차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옮겨가고 있었다. 천 원짜리 지폐 한 장과 동전 서너 개를 받아든 어르신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것은 물론 지상에서 어떻게 내려왔을까 할 정도로

힘든 모습이었다,

구걸을 하던 어르신이 출입구로 어렵게 가서, 다른 이의 부축을 받아 내리자 마자,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세 젊은이 중의 한 명이 재촉하듯이 말을 했다

"야 창 밖으로 내다 봐바. 그 할아버지 일어서서 걸어가지 않나?"

"아니, 일어서서 걷지 않고 그대로 앉아서 두 손으로 기어가는데"

창 밖을 내다보던 젊은이가 대답을 하였다.

"요샌 짝퉁도 많대.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

"뉴스에서 보니까 짝퉁장애인도 참 많다더라"

이슈거리라도 만난 듯이 커다란 소리로 깔깔거리기까지 하면서 나누는 세 사람의 대화는 참으로 민망하였다. 구걸하던 어르신이 구부정하게 서서 도움을 청한다해도, 그리고 설사 차에서 내린 어르신이 일어서 걸어간다 하더라도 집안에 어른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세사람 이야기는 참으로 불쾌하기까지 하였다.

듣다 못한 옆의 어르신 한 분이

" 이 사람들 듣다 듣다 못 듣겠구먼. 자네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안계시나? 자네들 같으면 저런 모습을 일부러 해가지 구걸하고 싶겠는가? 그리고 장애인들을 얼마나 안다고 그러나?, 함부로 말하지 말게, 짝퉁보다 못한 사람들이 여기 있었구먼"

하면서 호통을 치셨다.

"장애인들에게 돌아가는 알량한 사회복지혜택을 받겠다고 가짜 장애인이 되고자 하는 양심 없는 비장애인보다 자네 같은 사람들이 더 부끄러워해야 해"

지하철 안의 작은 소란은 어르신의 호통으로 일단락 되었다.

그렇다 요사이는 장애인이 생활하는데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 관심은 없지만 몇 푼의 돈을 절약하고 쥐꼬리보다도 못한 나라의 혜택을 받겠다고 장애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은 자동차 구입, 구입, 인터넷 사용료, 전화사용료 , LPG지원 등의 혜택을 받았겠지만 적발되어 사회적 망신, 금전적 손해, 그 이상의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지하철에서 있었던 장애어르신의 소동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마음과 몸이 모두 짝퉁인 사람들로 인해 사람들의 인식이 엇나가고 정말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장애인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이십 여일 후면 장애인의 날이다. 각 단체마다 장애인의 날 기념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4월 한달만이라도 비뚤어진 양심을 소유한 이들의 마음이 바로 펴지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좋은 환경으로 밀고 당겨준다면 좀더 살맛 나는 이 사회가 되고 장애를 논하지 않아도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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