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호스트바 광고 전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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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살의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그는 ‘언제쯤 직접 여성과 섹스를 해볼까?’라는 꿈 속에 살고 있었다. 자위를 하는데도 자유롭지 못한 신체구조를 가진 그는 비장애 남성 친구에게 죽기 전에 한 번은 여성과 섹스를 해보고 죽고 싶다는 마음을 토로하였다. 이런 소원을 늘 듣고 있던 친구는 그의 소원을 이해는 하지만 직접 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에는 자신도 상당히 보수적인 성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이 친구는 중증장애남성의 욕망에 아무런 댓가없이 관계하고 싶다는 여성을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밤 늦게까지 이 비장애 남성에게 총각딱지 떼고 싶다는 간절한 호소를 한 장애인 친구. 결국 친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다. 친구는 그 동안 비장애인 사회에서 갖고 있던 성 가치관을 다시 짚어보며, 그의 성 활동 보조인으로 도움을 주었다. 이 활동을 한 비장애 남성의 생생한 글을 통해서 중증장애인 섹스서비스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고민을 다시 해보고자 한다.)

장애인 섹스 활동보조를 하고 인간을 느끼다

- 장애인은 돌이 아니다 -

2월 17일 오후 12시경. 지하철 역을 빠져나온 나는 서둘러 마을버스 정거장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대낮이지만 어깨에 부딪히는 인파. 머리에 하얀 밀가루를 뒤집어 쓴 채 옹기종기 몰려다니는 여학생들이 눈에 띈다. 이렇듯, 한국만의 유별한 졸업식 장난이 물결치는 거리를 헤치며 도착한 마을버스 정거장. 거친 호흡을 진정시키며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찰나 버스가 도착했다. 마치 봄처럼 화창한 햇볕이 머리 꼭대기에 꽂혀 따뜻하게 부서지는 것을 느끼며 올라탄 버스.

약속했던 시간보다 30분 정도 더 늦게 A 씨의 집에 도착했다. A 씨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3일 전 그는 인터넷 메신저로 매우 중요한 일이라면서 대화하기 원했다. 손가락 하나로 힘들게 자판을 누르는 그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나는 점차 갈등에 빠져들었다. '섹스 자원봉사를 해달라'

총각 딱지 떼겠다는 A 씨

A 씨는 지난 38년간 공식적인 숫총각이었다. 한때 그는 내게 '친구의 도움을 받아 집창촌을 이용했던 장애인'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말끝에 부러움을 흘리면서. 신체적 구조 때문에 혼자 힘으로는 자위조차 힘든 A 씨가 섹스에 대해 강철보다 강한 열망을 가진 것은 당연. 섹스는 자기 삶에 대한 증명이 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실제 시 쓰기를 즐기는 A 씨의 시들은 행간마다 성적 에너지가 분출한다. 장애인의 성적 욕망을 처음 대면한 사람이라면 그의 시가 던지는 의미는 난감할 수도 있을 듯.

이 와중 A 씨는 인터넷을 통해 섹스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여성을 만나게 되었다. 금전 매매가 아닌, 문자 그대로 섹스를 통해 자원봉사를 하는 그것. 메신저를 통해 대화가 오가고 약속 장소까지 잡은 A 씨. 그러나 목욕에서 데이트, 모텔을 잡아 방 안까지 들어가려면 힘이 있는 남성의 활동 보조가 필요했다. 즉, 활동보조가 없으면 섹스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고민은 계속되었다. '섹스란 은밀한 관계를 의미하는 건데 과연 제 3자인 내가 보조해야 하는가? 한다면 어디까지 할 것인가?' 등등. 그러던 중 2월 16일 A 씨로부터 메일이 왔다. "너무나 기대된다"면서 파르르 떨리는 그의 글들. 메일을 읽던 중 불현듯 옛 기억 한 토막이 떠올랐다. 활화산처럼 분출하는 성적 에너지를 견디다 못해 조디 포스터의 사진이 닳을 정도로 키스를 했던 새파란 10대가 흘러가고 21살이 된 어느 날이었다.

노래를 부르며 길을 걷던 중 내 노랫소리가 듣기 좋다는 이유만으로 종로에서 서대문까지 졸졸 따라 온 동갑의 어떤 아가씨. 그날 이후 몇 번째인가 만남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키스를 하게 되었는데. 짧은 이 경험을 굳이 설명하자면, 온 몸이 전기 쇼크를 받은 것처럼 부르르 떨리고 또 황홀함에 겨워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A 씨가 보낸 메일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교차한 이 기억들은 내게 결정을 내리게 했다. '성적인 관계는 인간 본질의 한 부분이 아니던가. A 씨가 관계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은 비인간적이다.'

우리는 친구

A 씨는 화장실에서 낑낑거리고 있었다. A 씨 어머니 말로는 심한 변비가 있다던데. 시계를 보니 1시에 가까워져 간다. 모 여성은 1시까지 오기로 했는데. 도리어 내 마음이 불안해졌다.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어서 나와야 한다'는 내 말이 끝난 지 10여 분쯤 A 씨가 쓰러지듯 화장실 문을 열었다. 요즘 와서 더 힘이 없어져서 걱정이 된다는 어머니의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전에는 혼자서도 걷곤 했는데 내가 부축을 해도 A 씨는 밑동이 잘리기 직전의 나무처럼 너무나도 힘들게 한 발 한 발씩 움직이는 게 아닌가. 급히 옷을 입히고 휠체어에 앉힌 다음 우리는 곧장 목욕탕으로 향했다.

지하 1층에 위치한 목욕탕. 하지만 휠체어를 함께 들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A를 업은 나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 욕탕에 그를 눕혔다. 조심스럽게 옷을 벗기고, 이태리 타올로 씻기고. A 씨의 몸이 껍질을 벗듯이 하얗게 바뀔 때마다 나의 이마에선 땀이 송글거렸다. 순간, 장애만 없었더라면 A 씨는 아주 멋진 몸매를 가진 준수한 남성으로 보여 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팔과 다리는 비틀려 있지만 그의 몸이 사랑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드디어 목욕이 끝나고, 또다시 A를 업고 목욕탕 계단을 밟은 나. 목욕탕 밖이 목욕탕 안 보다 더 따뜻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마침내 모 여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 근처에 도착했다는 말에 나는 신발 밑창에 불이 나게 약속 장소까지 휠체어를 밀었다. '오늘에서야 총각딱지를 떼게 되어 기쁘다는 A 씨의 말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면서.' 모 여성과 A 씨 그리고 나는 택시를 타고 신촌으로 움직였다. 택시기사가 묻는다. "세 분은 어떤 관계세요?" 아마도 자원봉사 단체에서 파견된 걸로 알았나 보다. 모 여성이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친구요." 의외의 답변을 들었다는 양 기사가 얼굴을 내게 돌려 다시 물었다. "친구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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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박지주씨는 중 2때 척수염으로 인해 학교를 중퇴하고 재가장애인으로 5년간 집에서 지냈다. 22살 운전을 배워 세상과 어울리면서 24살에 중학교 검정고시에 도전했고, 늦은 28살에야 숭실대학교에 들어갔다. 그 후 비장애 중심의 사회와 싸우며 장애인 학습권 침해에 대한 소송으로 세상에 정면도전함으로써 많은 장애인에게 당당한 권리를 알게 했다. 그녀는 그렇다. 산다는 게 행복한 여자. 때때로 밀려드는 어려운 고통들도 삶의 재료라고 여기며, 노래로 풀어버리는 여자다. 가장 은밀하면서도 사적영역으로 치부되어, 자유롭게 섹스이야기를 못하는 사회에 사는 중증장애여성. 장애인의 성을 이야기 하면서, 인간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질 수 있는 편견과 차별을 되짚어보고, 억압된 성을 풀어헤쳐, 행복한 성을 누리기 위한 과감한 섹스이야기를 진하게 하려고 뎀비는 뜨거운 여자. “자! 장애인들이여! 우리 맘과 몸에 맞는 거 한 섹스 여러 판하고 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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