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4계절로 누리지 못하는 장애인의 5계절인 섹스 - 바라님작품.

언어장애가 심한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인 박모씨, 그는 자신의 힘으로 화장실조차 가기 힘들 정도로 신체 장애가 심하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은 급경사인 계단을 걸어 올라가 철문을 지나야 한다. 주로 생활하는 좁은 방 안은 그의 몸 하나 겨우 누일 수 있다. 그래서 병원에 진료를 하거나, 특별한 일이 있어 바깥 세상으로 나들이 하는 것 이외에는 외출은 거의 꿈꾸지도 못하고, 재가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 할 수 있는 방법은 컴퓨터의 자판을 이용하여 대화하는 것이다.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왼손 중지를 오른손으로 붙들고 한 자 한 자 더듬거려 두드린다. 지난해 장애인 성 향유를 위한 성 아카데미를 진행하면서 그를 알게 되었고, 우리는 유일한 의사소통 도구인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서 중증 장애남성이 겪는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몸에 기운이 없으면ㅅ도 섹스느ㄴ 왜 그렇게 하고 싶은지……. 저 철없죠.? ㅠ.”

그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전해져왔다. 여러 번의 수술로 점점 몸이 약해지고, 병원 출입을 자주 하는 힘든 상황임에도 성적 본능에 대한 간절한 욕망을 솔직하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그를 보아야 할 것인가? 그의 거친 글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진솔한 삶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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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살에서야 처음 섹스를 하다

난 39세의 1급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말도 못하고 겨우 왼손 중지(中指)로 타이핑만 가능한 상태이다.

어느 날, 메신저로 남자로 알고 있었던 그가 말을 걸어왔다.

“저를 등록해 놓고 왜 말을 걸지 않아요?”

“쑥스러워서요.…”

그때부터 “그”와 기막히게 운 좋으며 당황스럽고 씁쓸한 인연이 시작됐다.

“혹시, 활동보조인 하실 생각 있어요? 주당 20시간씩 하면 되는데…”

“그건 어렵고 일주일에 서너 시간 정도는 함께 보낼 수 있어요. 어떤 섹스 서비스를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성기 삽입 섹스도 가능해요. 누구나 성욕은 있으니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난 남자와 섹스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나의 마음을 이야기 했다.

예전에는 섹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그냥 섹스 그 자체라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율배반적이지만, 단순히 직업여성과 정신적으로 교류 가능하고 섹스도 가능한 여성을 원해요.“

그가 ”성매매는 안 해요.“라고 말했다.

”그럼 저를 목욕탕에 데려 가서 목욕을 해 주세요.“

”여자와 목욕탕에 가요? 집에 욕실 있으면 목욕시켜 드릴게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따뜻한 방에서 매서운 추운 겨울 밖으로 찬물을 확 끼얹은 채로 던져진 듯 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여성이세요? 여태까지 님이 남자인 줄 알았어요. 죄송해요.”

이제 남성이 아닌, 내가 간절히 원하던 섹스 서비스하는 여성과 인연이 닿은 것이다.

‘이게 웬 횡재! 올해 토정비결이 굉장히 좋더니… ㅎㅎㅎ~’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경험하는 이런 과정에 마음 설레며 대화를 계속해 나아갔다.

“아무 조건 없이 섹스를 즐기자”라고 했다.

의심이 생겨서 거듭 그녀에게 확인을 했다.

그녀는 “금전적인 댓가는 전혀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그날 당장이라도 “님의 방에서 섹스하자“고 우리 집에 오겠다고 한 것이다.

난 타인과 섹스를 해 본 경험이 없는 “천연기념물”이다.

내 성욕을 전혀 이해 못하시는 부모님도 집에 계시고 해서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내일 만나 모텔에서 하자.”했다.

다음 날 그녀가 우리 집에 와서 날 데리고 모텔에 가기로 잠정적인 약속을 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언덕 위에 있어서, 날 밖으로 데려 나가려면 힘 센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나의 몸의 조건과 이동의 제약으로 그녀와의 만남은 잠시 보류해야만 했다.

내 몸이 약 2개월 전부터 급격히 힘이 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을 붙이면 바짝 마른 나무에 거세게 불길이 확 타 오르듯, 그녀만 생각하면 시도 때도 없이 성기가 요동을 쳤다.

성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친분이 있는 분께 두서없이 간곡히 사정을 했다. 다행히 그 분은 나를 도와주신다고 했다.

그녀와 다시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누어서 약속을 잡았다.

그녀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낼 꺼란 기쁨에 나름대로 용돈도 준비하였다.

나는 39세에야 처음 해보는 섹스에 빠진다는 생각에 숨 막히게 흥분되고 있었다.

드디어 그녀와 만나던 날, 친분이 있는 분의 아무런 댓가 없는 도움을 받아 대중목욕탕에도 갔다. 39살에 남의 손에 의해 씻겨지는 창피함도 없이 목욕하는 내내 난 그녀를 상상했다. 내 몸이 구석 구석 씻겨지는 것처럼 나의 섹스리스(섹스가 없는 삶)의 허전함도 모두 다 사라지길 바랬다.

그녀는 만나는 순간 떨리는 마음을 어찌할지 몰랐고, 늦은 점심을 함께 먹었다. 그리고 그녀가 “몇 시간밖에 함께 있을 수 없다”고 하기에 바로 모텔에 들어갔다.

너무 흥분하고 긴장한 나머지 모텔로 들어갔을 때는 몸의 상태가 매우 나빠져 있었다. 내 몸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긴장하면 발기가 될까?’하는 걱정이 내심 되었다. 다행히 나의 성기는 힘차게 우뚝 솟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 여자는 섹스 경험이 많을 테니 알아서 잘 하겠지.'했다.

그러나 발기된 성기에 콘돔을 씌우더니 바로 성기 삽입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제가 상위는 익숙지 않아서요.”하며 삽입을 하고 무척 아파했다.

몇 번을 풀무처럼 행위를 하더니, 도저히 아파서 안 되겠는지 “오럴을 해 드릴께요…”하였다.

오럴을 하면서 힘들었는지 손으로 자위도 해 주는 것이다. 성기 삽입 섹스는 콘돔을 쐬어서인지 몰라도 풀무질을 해도 별로 좋은 줄 몰랐다.

오히려 손으로 해 주는 자위가 훨씬 좋았다.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체위와 포지션으로 행위를 하고 싶어서 섹스를 주도하려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다가 그만 침대 밑으로 ‘꽝’하고 떨어져 버렸다. 다시 침대에 오르려고 일어나기 위해 (나는 팔을 자유롭게 쓸 수 없다.) 먼저 엎어져 엉덩이를 들으려니 오른발이 긴장되며 쭉 뻗어져 꼼짝을 않는 것이다.

생활로 다가가지 못하는 장애인의 섹스 - 꿈의 꽃으로만 존재한다. (바라님작품)

당황하고 실망한 마음에 그녀가 해 주는 대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떨어진 몸처럼 축 가라앉아 버렸다. 그녀도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것에 서툴렀고 ,매우 당황해 하는 빛이 역력했다.

모텔 바닥에서 성기 삽입으로 섹스를 하며, 그녀가 말했다.

“절 보면 바로 싸 버릴 것 같다면서, 왜 이리 오래도록 싸지 않아요?”

그녀가 바닥에서 무릎이 아픈지 이렇게 말하며 다음 말을 이어갔다.

“자위할 때도 이렇게 오래 걸리세요?”

“네”

나는 집에서 자위 할 때에도 내 손놀림이 느려서 2시간정도 걸려서 한다.

계속되는 구강섹스와 자위로 마침내 온 몸이 찌릿찌릿해지면서 묘한 기분에 휩싸이며 사정을 했다.

이렇게 39세야 처음 해본 섹스는 거의 자위 수준에 머물며 아쉬움을 남기고 끝났다.

난 그녀와 깊은 키스를 하며 서로 혀 놀이를 하고 싶었고 그녀의 탐스럽고 풍만한 유방을 만지며 빨고 싶었다. 그녀의 보이지 않는 클리토리스를 찾아 애무하며 오럴을 해 주고도 싶었다.

그래서 그녀가 성적으로 흥분하여 성기 삽입 섹스를 했다면 그녀도 아프고 괴롭지 않았을 것이다.

경험이 없는 우리들의 섹스는 성적 정보가 없는 사람들의 하는 단순한 관계 이상을 넘지 못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좀 더 준비된 관계였으면 그녀도 나와의 섹스를 진정으로 즐기고 아름다웠으며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안타까움을 뒤로 하면서도, 여전히 나는 섹스를 꿈꾼다. 의사가 무조건 쉬며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린 나의 몸은 아주 나약해져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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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런 댓가없이 비장애 여성과 섹스를 하게 된 박모씨의 이야기는 아쉬움이 듬뿍 젖어있었다. 그날 이루어진 섹스는 둘 다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진행되어, 단순히 성기 위주의 접촉으로 짧게 이루어졌다. 성적 환타지나, 로맨틱한 분위기도 없이 관계하여 성 만족도가 매우 낮았다. 현실적으로 성 활동보조인의 역할과 장애인과의 섹스를 할 경우에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요구되는 사례이다. 아쉬운 마음을 토로하는 박모씨는 그럼에도 자신의 30대 말에야 처음 해본 섹스에 대한 감흥을 기억하며, 또 다른 기쁨의 성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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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박지주씨는 중 2때 척수염으로 인해 학교를 중퇴하고 재가장애인으로 5년간 집에서 지냈다. 22살 운전을 배워 세상과 어울리면서 24살에 중학교 검정고시에 도전했고, 늦은 28살에야 숭실대학교에 들어갔다. 그 후 비장애 중심의 사회와 싸우며 장애인 학습권 침해에 대한 소송으로 세상에 정면도전함으로써 많은 장애인에게 당당한 권리를 알게 했다. 그녀는 그렇다. 산다는 게 행복한 여자. 때때로 밀려드는 어려운 고통들도 삶의 재료라고 여기며, 노래로 풀어버리는 여자다. 가장 은밀하면서도 사적영역으로 치부되어, 자유롭게 섹스이야기를 못하는 사회에 사는 중증장애여성. 장애인의 성을 이야기 하면서, 인간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질 수 있는 편견과 차별을 되짚어보고, 억압된 성을 풀어헤쳐, 행복한 성을 누리기 위한 과감한 섹스이야기를 진하게 하려고 뎀비는 뜨거운 여자. “자! 장애인들이여! 우리 맘과 몸에 맞는 거 한 섹스 여러 판하고 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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