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화장실 문화.

열정적인 사랑의 장면이 연출된 영화들은 보면 얼핏 비슷한 모습들이 보여진다. 입술이 엉킨 채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리면서 포옹을 한 두 비장애인 배우는 둘만의 시공간으로 포개져 숨가쁘게 들어선다. 그리고 서로의 옷을 격정적으로 벗기면서 농도깊은 사랑을 나누는 장면들이 영화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러한 장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흔하게 연출되는 장면들로서, 때로는 배우 가까이에 있는 기물들이 파손되는 소란함을 무시하며 카메라는 배우들의 열기를 가득 담아낸다.

간혹 장소가 바뀌어 이성 혹은 두 동성이 본능적인 성적 욕망의 열기를 주체하지 못해, 아주 좁은 화장실 안에서 거사를 치르는 장면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화장실, 그곳은 인간의 본능적 신진대사를 해결하는 아주 가까우면서도 멀리하고 싶어하는 일상의 공간이다.

이 일상 속의 화장실과 섹스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보다 배설이다. 배설의 질이 다르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같다고 말 할 수 있다. 필자 또한 섹스를 단순히 본능적 욕구의 해소로만 보지는 않는다. 다만, 화장실과 섹스라는 묘하게 겹쳐진 공통분모를 연상하며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실 88올림픽 이후 월드컵을 거치면서 쾌적한 화장실 만들기 문화 운동이 활성화된 결과 화장실은 바야흐로 신진대사를 해결하는 용도만이 아니라, 삶의 질을 좌우하는 곁가지 척도로 부활하고 있다.

특히, 공공 화장실은 다양한 이용자층의 입장이 고려되어, 예술적인 실내 디자인과 색채로 꾸며지고 혹은 향기마저 흘러 나와 과거 ‘뒷간’이라는 혐오스러운 영역에서 탈피해 편안하고 안락하게 쉴 수 있는 새로운 휴게실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이처럼 은폐와 더러움의 대명사였다가 ‘문화’의 껍질을 쓰고 새롭게 태어나는 화장실처럼 장애인의 섹스 역시 무릇 참신하게 다가가고 싶은 욕망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애인 화장실 모습.

물론, 이 같은 변화조차 비장애인 중심이란 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중증 장애인은 여전히 변화의 변두리에서 싸늘한 바람을 맞고 있는 중이지만, 장애인 당사자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에 힘입어 장애인 화장실에도 양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음은 다행이다. 그리하여 화장실은 배설의 공간이기 전에 정치적인 공간으로서, 성적인 문화도 포괄할 수 있는 상징적인 시공간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보라.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에 들릴 때면, 장애인 전용 화장실은 넓은 공간을 자랑하며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고, 요즘 같은 늦겨울 추위에 엉덩이가 놀라지 말라고 24시간 작동하는 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비데가 작동하는 변기는 매우 따뜻하며, 주위를 돌아보면 실내는 분위기를 살려주는 조화로 장식되어 있다. 새삼 화장실 시설이 잘 안되어 있는 곳을 이용하며 ‘힘들었던 기억이 언제였는가’하며 벌써 ‘이제, 시절 많이 좋아졌네’가 절로 입안을 맴돈다.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이야기하다보면, 섹스에 관한 노골적인 표현이나 경험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법률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인간의 상상력을 제도와 관습의 낡은 조건으로 제한할 수 없다.

한편, 각종 영상물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비장애인 중심의 성애 장면들 속에서 장애인들은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까? 격정적인 영화라면 남성이 여성을 벽으로 밀어 제치는 와중 성적 열망이 넘치는 눈빛을 주고 받음으로서 그들의 잔치는 향유된다.(남성 중심의 성애를 우월하게 보는 게 아니라, 통속적으로 표현이 그렇다는 것이다.)

문제는 고정관념처럼 틀이 박힌 이 같은 성적 체위나 신체적 조건이 장애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란 점. 그러나 성적 욕망이나 판타지로 이어지는 욕망의 샘은 장애인에게도 연결되어 있다.

장애인 화장실.

일본 영화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에서 츠네오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결혼 상대자로서 중증 장애여성인 조제를 소개하러 함께 차를 몰고 가다가 발을 돌리는 모습은 화장실 앞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조제가 볼일을 보고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그녀의 무안함 따윈 가볍게 무시한 채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 정도라면 상당히 리얼리즘이 살아있고, 보편적 문화에서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의 접촉이리라. 그런 장면에서 섹스가 가능할까?

장애인들의 격정적인 섹스는 장애 정도와 유형에 따라 혹은 시공간의 환경에 따라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개인적 섹스에 대한 태도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쯤에서 난 너무도 시설이 잘되어 있는 화장실에서 섹스를 해보는 환타지를 꿈꾼다. 배설에만 국한된 폐쇄적인 공간을 뛰어넘어,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건축에 저항하며, 좀더 장애인을 배려한 그 문화영역에서 감히 섹스를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한다. 결국은 모든 억압을 뒤로 하고, 가장 원초적 생활공간에서 아주 자유롭게 성적 욕망을 해결하여 모든 장애와 가식을 벗어던지는 본질적 인간으로 되돌아가는 오르가즘을 느끼고 싶다.

칼럼니스트 박지주씨는 중 2때 척수염으로 인해 학교를 중퇴하고 재가장애인으로 5년간 집에서 지냈다. 22살 운전을 배워 세상과 어울리면서 24살에 중학교 검정고시에 도전했고, 늦은 28살에야 숭실대학교에 들어갔다. 그 후 비장애 중심의 사회와 싸우며 장애인 학습권 침해에 대한 소송으로 세상에 정면도전함으로써 많은 장애인에게 당당한 권리를 알게 했다. 그녀는 그렇다. 산다는 게 행복한 여자. 때때로 밀려드는 어려운 고통들도 삶의 재료라고 여기며, 노래로 풀어버리는 여자다. 가장 은밀하면서도 사적영역으로 치부되어, 자유롭게 섹스이야기를 못하는 사회에 사는 중증장애여성. 장애인의 성을 이야기 하면서, 인간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질 수 있는 편견과 차별을 되짚어보고, 억압된 성을 풀어헤쳐, 행복한 성을 누리기 위한 과감한 섹스이야기를 진하게 하려고 뎀비는 뜨거운 여자. “자! 장애인들이여! 우리 맘과 몸에 맞는 거 한 섹스 여러 판하고 죽읍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