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겨울날 새벽기도 하러 가시다가 빙판길에서 넘어져
손목이 완전히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고도 자식들에게
두 달 동안 한 마디도 없으셨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7년 동안 겨울 내내 석유 보일러를
가동하지 않고 난방비를 아끼신다며
냉골에서 주무셨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자식들이 고향집을 찾을 때면 그 때서야 따뜻하게 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유년시절 내가 남의 집 유리창을 깨거나 싸우다 들어오면
언제나 "죄송합니다.제가 변상해 드리지요."
하며 못난 자식이 벌려 놓은 사건들을 하나 하나 해결해
주셨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한 살 때 연탄아궁이에 내가 빠졌을 때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며 평생을 천형으로 여긴채
죄인처럼 살아가시는 우리 어머니는
남들 앞에서 늘 기가 죽으셔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금요 철야 예배를 드리시고 집에 오실 때면
늘 내 머리 맡에 귤 2개와 요구르트 1개를 놔두셨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어머니께 드린다고 해도
아니 평생을 다 바치더라도
어머니가 내게 주신 사랑의 크기에 결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머리가 아플 때마다 내 머리에 손을 얹고 늘 기도해 주셨던
어머니.신기하게도 깨끗하게 다 나았던 그 시절엔
어머니는 그 어떤 의사보다 더 훌륭해 보였습니다.
얼굴수술 때문에 병원에서 3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었을 때
어머니는 항상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셨고
어머니의 모든 것을 내 놓으셨습니다.
서른이 넘어 버린 지금의 나는 아직도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어머니가 날 위해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날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유년 시절 난 엄마랑 시장가는게 소원이었습니다.
얼굴 때문에 항상 대문 밖을 나가기가 두려웠던 나였습니다.
동생과 엄마는 시장을 항상 다니며 맛난 음식을 사오기도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난 엄마가 나보다 내 동생을 더 사랑한 줄로만
알았습니다.
나중에 어머니는 고백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버려서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까봐 그게 두려웠다고 내가
보는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어머니는 강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나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떳떳하지도 결코 당당하지도 못한 삶을 살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는 나는 어머니께
이런 내용으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엄마 힘들지.우리 이겨냅시다.그리고 내가 결혼해서
엄마 품에 나 닮은 아기 안겨드릴께요."
엄마가 웃으셨습니다.
결혼을 반드시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당하게,떳떳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내와 나 닮은 아기를 키우며 한 가정의
책임감 강한 가장이 되고 싶은 마음보다는
어머니가 날 키우면서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부모의 심정이
되어서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과연 부모의 마음이 어떤건지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