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일요일에는 아버지를 모시고 집 근처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오랜만에 겨울다운 날씨라고 하시면서 한가해하시는 아버지와 칼국수를 점심으로 먹고, 문득 어릴 적 아버지와 한낮에 쬐던 겨울 햇살이 그리워져서 모시고 나섰다.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낯익은 동네 어르신, 젊은 부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 등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공원에는 입구에서부터 공원을 한바퀴 돌 수 있는 산책길이 있는데 사람들의 편안한 이용을 위해 보도블록을 깔끔하게 깔아 길을 새롭게 포장공사를 해놓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 포장한 길을 놔두고 그 옆으로 나있는 잔디밭 위의 구불구불한 흙길을 자연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고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라는 팻말을 일정 간격을 두고 세워두었지만 열 사람 중의 일곱, 여덟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흙길 위로 걸어가고 있었다.

깔끔하게 마련된 길을 있는데도 그 길을 무시하고 굳이 잔디 위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 눈에 거슬리고 불편하였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 차리셨는지 아버지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사람이 다니는 길, 그게 진짜 길인 게야."

우리 사회가 사는 모습도 바로 이렇지 않을까 한다.

한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요즈음 우리 사회는 사회의 여러 남은 과제와 여러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나서고들 있다.

갈등과 무관심, 비방이 난무하고 서로 비방을 하며 반목하는 사회 속에서 장애인들도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로, 공직에 있는 사람은 공직에 있는 사람들대로, 현장에서 서비스를 전달하는 사람들을 사람들대로 팔을 걷어붙이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것들은 자칫 잘못 보면 서로 엇갈리고 불협화음을 끊임없이 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다. "우리의 주장은 이런 것이므로 그에 따라 그 문제와 일은 그런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고 서로에게 강요하고 반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없지 않고 그러다가 도가 지나쳐서 자칫 사람을 위한 목소리가 아니라 큰 목소리를 내기 위한 주장이 되고 말기도 한다.

마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걸어다니는 길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새길 이 정돈되었는데 왜 새 길로 가지 않느냐고 강요하면서 예전부터 있던 흙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허물을 뒤집어씌우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그런 일들은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고 사람을 붙잡기 위한 고집이 되고 말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화합과 융합하려는 마음이 수반되어야 한다.

2004년을 삼일 남겨둔 지금, 사람이 가는 길이 진짜길이다 라고 하신 아버지의 말씀이 피부에 닿는다. 모든 일에는 사람이 먼저임을 잊지 말자.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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