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가족 하면 누가 떠오르냐고 물으면 누구나 어머니 아버지, 형제자매를 말할 것이다. 요즘 사회에서 할아버지·할머니·삼촌·이모 등 친숙한 이름들을 어느덧 가족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인 듯도 하다.

우리 사회는 핵가족화와 개인주의가 주류를 이루고, 의학이 발달하여 인간의 평균 수명도 길어져 노령인구의 비율이 급속하게 늘어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사회적으로 노인들의 문제가 이슈화되고 장애인복지 못지 않게 노인복지 또한 중요해지고 있다.

사람의 정이 그리운 요즘 가족 모두가 읽어보면 좋을 동화가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간의 사랑, 가족애를 담은 동화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라는 동화로 어린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병인 치매를 소재로 한 미국작가 마리아 슈라이버의 작품이다.

치매에 걸리거나 뇌졸중인 노인들이 가족에 의해 병원이나 복지시설, 빈집 등에 버려지는 수가 점점 늘어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 동화는 가족 간의 진정한 의미와 사랑이 어떤 것인지, 인간의 존엄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케이트는 재미있고 쾌활한 할머니와 넋을 잃고 빠져들 정도로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운이 좋은 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케이트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어느 날부터 할아버지에게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긴다.

할아버지는 같은 말이나 질문을 계속 되풀이하고, 방금 전에 무얼 했는지도 잘 기억하는가 하면 할머니께 소리를 지르며 책을 마구 집어던지고 문을 쾅 닫아 버리기까지 한다.

평소의 모습이 아닌 낯선 모습의 할아버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낯선 할아버지의 모습에 상심하며 슬퍼하는 할머니와 엄마를 본 케이트는 할아버지가 뇌의 병인 치매에 걸려 기억력에 이상이 생긴 병으로 머지않아 할아버지가 케이트를 비롯한 모두를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큰 상실감에 빠진다.

그러나 곧 케이트는 슬픔에서 벗어나 할아버지를 도와 드릴 일을 궁리를 하면서 언제나 그래 왔듯이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지금의 할아버지를 소중히 생각하며, 할아버지의 삶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는 것 외에 뭔가 특별한 방법으로 할아버지의 기억을 붙잡아 두고 싶어한다.

드디어 케이트는 할아버지와 가족들의 사진으로 멋진 앨범을 만들어 보기로 한다.

할아버지와 함께 추억의 옛 사진을 마주하며 케이트는 사진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듣고,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는 만 가족들의 도움과 사랑으로 여전히 기쁨을 느끼고 있으며, 행복한 삶을 주신 신께 감사한다.

케이트는 할아버지와 함께 만든 이 앨범이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잊었을 때 기억을 되살릴 수 있게 도와 줄 것이라 믿으며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할아버지와 자신 사이에 사랑이 넘치는 것을 느끼게 되며 더할 나위 없이 맑고 순수하고 평화로운 그 느낌을 영원토록 기억하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모두가 늙고 병든다. 곁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도 케이트 할아버지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겉모습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하더라도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위대한 힘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사랑, 진정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족 간의 사랑에도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각각 특유한 색깔을 갖고 향기를 내게 된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 형제자매간의 사랑,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 부모자식간의 사랑은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것이다. 자녀에 많은 사랑을 쏟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주인공 케이트가 만든 것은 작은 앨범에 지나지 않지만 그건 할아버지에게 더없이 소중한 인생의 기억이자 가족의 사랑을 만들고 확인한 것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랑을 골고루 경험하게 해 마음이 따뜻하고 풍요로운 어른으로 자라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어려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과 사랑·추억 등을 소중히 간직하고 '치매'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가족들간에 이해를 높여 사랑에 조건이 없는 것이 진정한 가족의 사랑이라는 것을 지니고 살면 좋을 것이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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