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가을의 리차드 기어와 위노나 라이더.

개봉관에서 본 영화를 비디오나 DVD로 다시 보면 그 때마다 느낌이 항상 똑같은 영화가 있는가 하면 볼 때마다 매번 영상과 감동이 달라지는 영화가 있다. 볼 때마다 느낌이 새로운 영화가 관객과 교감할 공감의 폭이 넓은 영화이고 오래 기억에 남을 좋은 영화일 것이다.

근래 들어 다시 본 영화 중에서 초안 첸 감독의 뉴욕의 가을이 그런 영화일 것이다.

2000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뉴욕의 가을'은 뉴욕의 아름다운 가을 풍광이 그대로 담겨 있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가을을 보러 외출을 나가지 않아도 영화 한 편으로도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 마냥, 가을의 낭만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감동할 수 있는 영화라고 해야 맞는 말인 듯 하다.

뉴욕의 최대 레스토랑 경영자이자 최고의 바람둥이인 윌은 그의 레스토랑에서 샬롯을 만난다. 샬롯은 윌에게 반해 있고 윌은 나이 차이가 26년이나 나는 22살의 맑고 순수한 샬롯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윌은 여느 여자와 마찬가지로 샬롯과의 미래는 없음을 확실히 밝히고 샬롯은 그에게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알린다. 죽음을 초연히 받아들이는 샬롯에 비해 샬롯과 만날수록 그녀에게 진실한 사랑을 느끼며 그녀의 죽음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윌. 윌은 마지막으로 샬롯을 수술 받게 하지만 수술은 실패하고 만다. 샬롯을 통해 진실한 사랑을 배운 윌에게 그녀와 함께 보낸 뉴욕의 가을은 짧기만 했다.

가을에 가장 어울리면서도 따뜻한 눈빛을 지닌 윌과 떨어지는 낙엽보다 더 여린 모습으로 솔직하고 투명한 살롯의 아주 특별한 만남은 무려 26살의 나이차이를 극복하며 아름다운 사랑으로 빛났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거듭 볼 때마다 스토리 진행은 물론 인물, 배경, 소품 등 영화 전체가 눈에 들어오곤 한다. 그것들은 윌과 살롯의 사랑을 표현하는 또 다른 영화 속의 언어가 되었는데 그 첫 번째가 순수하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살롯의 의상이었다. 파티에 모인 수백 명의 사람 사이에서 춤을 추는 살롯은 눈부신 존재였고 볼륨댄스를 추는 살롯, 하얀 실크드레스를 입고 불빛 아래서 더욱 반짝거리는 솔을 걸친 살롯의 모습은 천상의 매력을 지닌 아름다운 여인으로 보여지기에 충분하였다.

두 번째 언어가 되었던 것은 영화의 배경이 된 뉴욕과 그 주변 풍경이다. 동화 같은 사랑이 이루어지는 마법의 공간이 되고 윌과 살롯의 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처음 만난 윌과 샬롯이 걷던 길인 단풍이 든 센트럴공원에서부터 호수 위에 장식된 다리까지의 풍경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고운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샬롯은 윌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병이 악화되어 쓰러지는 '록펠러 플라자 스케이트장'은 두 사람의 시련이 시작되고 슬픔을 예고하였고, 윌이 샬롯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 희망인 최고의 암 전문의를 만나러 차를 타고 질주하던 '브루클린 다리'는 바로 그녀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을 갖게 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낡은 수공예품들이 고전적인 분위기와 조화를 이룬 윌의 아파트, 윌의 집과 비슷한 안락한 분위기를 가졌던 레스토랑, 빛의 향연을 벌이듯이 반짝이던 보트바신 79번 가 등이 기억에 남아있다.

헬리콥터에서 잡은 뉴욕의 전경과 윌의 아파트 발코니에서 내려다보이던 뉴욕의 가을은 이별의 아픔마저도 감싸안고 있다. 구속받기 싫어하는 윌과 불치병에 걸린 살롯의 슬픔과 좌절, 그리고 애절한 사랑과 이별, 외로움, 쓸쓸함, 고독함….

가을이면 떠오르는 감성적인 언어들과 뉴욕의 가을 풍경이 조화를 이루는 영화, 따뜻한 차 한 잔과 그리운 한 사람이 생각나는 따뜻한 영화로 간직될 것이다. 노란 단풍잎 깔린 거리를 서성이고 싶어질 만큼 가을이 깊어지는 내년 이맘때쯤 다시 보고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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