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하게 낙엽 지는 길목마다 가을이 깊을 대로 깊었으니 또 한해가 갈 준비를 서둘러 한다. 곧 다음해의 가을을 기다리며 겨울을 맞이해야 한다. 한해의 양식을 버느라 분주했던 가을을 보내고 난 후 겨울이 한해의 끝자락에 자리한 것은 살아온 1년을 어떻게 살았으며, 내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게 하기 위함이다.

만물들도 겨울잠을 들고, 잎을 떨구면서 생장을 멈추는 이 계절이 우리에게 선한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은 남에게 소원했던 일들과 욕심들을 접고자 하는 반성을 하고, 늘 부족했던 사랑과 우정을 되새길 수 있는 날들이 되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사람마다 정서를 정화하고 회한으로 보내는 마지막 계절인 겨울의 초입에 서 있는 현실은 나라안팎도 어렵고 가정의 살림살이, 개인의 경제사정 등 어렵지 않았던 게 없다. 어렵고 엄청난 날들을 보내면서 누구의 탓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하는지 알 수 없다.

초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벌거숭이 임금님이란 동화 속에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하잘 것 없는 제 몸이 남에게 보일까봐 얼룩진 옷을 벗고 화려한 새 옷을 갈아 입고자 합니다. 아름다운 옷만을 찾는 벌거숭이 임금님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동화속의 여러 사람들처럼 또한 나는 안 그런데 왜 너만 그러냐고 억지를 부리고 서로를 속여가면서 1년을 보낸 모습들도 많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에겐 더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는 가운데 서로가 자잘못을 따지고 치유책을 내놓으리라고 언성을 높이면서 허둥거릴 것이다. 언론매체들은 인간성 회복, 도덕성 회복 , 경제 부양책,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한다는 프로그램 편성을 하고 캠페인을 펼칠 것이다.

다가오는 올 겨울에는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온갖 때가 묻어 감춰진 내 마음의 옷을 갈아입고 자신의 모습을 바로 찾는 일이다.

부끄러운 일도 있을 것이고 어려운 일도 있겠지만 스스로 털어 낼 것은 털어 내고, 터진 곳은 꿰매고, 그래도 부족하다면 자신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국민들에게, 기업 하는 사람이라면 고객들에게, 사회복지서비스를 전하는 사람들이라면 클라이언트에게, 가장이라면 자녀에게 내가 언제 이만한 실수를 했는데 용서를 구한다고, 내가 이만큼 부족한 사람인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런 사람과 함께라면 우리의 겨울은 따뜻할 것이다.

고인이 된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은 1994년에 미국 국민들에게

"나는 지금 노인성치매인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헣지만 나는 나의 아내와 함께 노력하고 있으며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주었던 국민들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스크램해두었던 빛바랜 신문 기사를 다시 읽으며 요즘사람들이 새겨보아도 좋은 내용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벗어 가는 나뭇가지들이 벌써부터 햇빛을 그리워하고 있다. 우리들도 몸을 하늘을 향하여 내놓아 보자. 차가운 한기가 피부에 닿는다 하여도 내 모습을 바로 보여주고 서로를 보듬는 사회라면 뿌리는 땅 밑으로 굳건히 내려 겨울을 견뎌낼 것이다.

최명숙씨는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홍보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시인으로 한국장애인문인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1995년에 곰두리문학상 소설 부문 입상, 2000년 솟대문학 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버리지 않아도 소유한 것은 절로 떠난다' 등 4권이 있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뇌성마비친구들, 언론사 기자들, 우연히 스치는 사람 등 무수한 사람들, 이들과 엮어 가는 삶은 지나가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남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아름답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속에 기쁜 희망의 햇살을 담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 홈페이지 http://www.ksc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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