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 만난 이일세씨.

확신을 만드는 비법. 사람을 성장하게는 마법.

꿈을 실현하는 최고의 에너지.

그것을 바로..

열정이라고 말한다.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청소년부터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노인에게까지. 아니 어쩌면 이제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들에게도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열정이 아닐까 싶다.

오늘을 행복하게 만드는 비법..

내 열정 안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싶다.

이런 열정을 어느 누구 못지 않게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 소개하고 싶다. 하버드대학 정문을 자동문으로 고치게 만든 일화를 남긴 유명한 척수장애인 이일세씨.

사람들은 '하버드 대학 정문을 자동문으로 바꿨다?'

아마 막연하게 어떤 사연이라고 짐작을 하실거다.

먼저 이분에 대한 소개를 해드리자면….

이일세씨는 황해도 시골출신으로 육군 중장이셨던 3대독자인 아버지와 KBS 아나운서로 기성 시인으로 활동 중인 어머니 사이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서울에서 출생했다.

학창시절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만 하는 범생으로 늘 공부에만 전념을 해 법관이나 정치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서 2학년을 다니던 중 휴학을 하고 군에 입대, 제대 한달 만에 가족들과 함께 용평으로 스키를 타러 갔다가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 때가 1984년1월 29일.

지금 이일세씨가 40을 조금 넘긴 1961년 생이니까 그때 나이는 한창 꿈을 펼쳐갈 혈기 왕성한 24살 때의 일인 것이다. 갑작스런 일로 남들이 말하는 생각지도 못한 불의의 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되어 장애인이 된 이일세씨.

경추 5번 6번 골절로 손가락을 쓸 수도 없고, 가슴 아래로는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처음 사고시 99.9% 모두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그러나 지금 20년이 넘게 살고 있는 이일세씨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혼자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

그때의 사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10M 정도를 하늘 높이 붕 떴다가 턱부터 눈 바닥으로 떨어져 고개가 완전히 뒤로 젖혀져 꺽였다고 한다.

가족들은 이런 아들들 위해 안 해본 것이 없다.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굿도 하고, 좋다는 약과 침도 맞아보고, 안 해본 것이 없다고 말한다.

다른 장애인들이 만약 해본 것들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다해보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일세씨는 하지만 집을 말아먹을 정도는 빠지지 말라고 꼭 말하고 싶다고 말한다. 누구나 한번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그런다는 것은 똑같으니까…

이일세씨는 이렇게 3년 5개월의 오랜 병실생활을 끝에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재활이라던가 물리치료등의 전문적인 것이 부족했기에 지인의 소개로 치료 차 미국에 가면 지금 보다 좋아진다고 해서 갔다.

그곳에서 담당의사가 “여기서는 장애를 가지고도 의사를 할 수 있는 데..의사를 하면 어떻겠냐.”며 의대공부를 권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 이일세씨는 공부고 뭐고 다 싫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 왔지만, 한국에서 장애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당시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지 않았다. 친구들은 고시에 합격하고 의사가 되고 유학을 가며 미래를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반면에 어느 곳에서도 장애인 이일세를 받아주는 곳은 한군데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그렇게 허송 세월을 보내던 중 몸은 비록 다치고 사지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지만 다행이 머리는 다치지 않았으니 할 수 있는 것이 공부였다. 해서 1992년 미국유학을 결심했다.

하버드를 다닐 때 학생과 교직원을 모두 합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이일세씨 하나밖에 없었다.

학교의 중앙 대형 출입문을 드나드는데 그의 힘으로는 도저히 열리지 않아 학교측에 자동문으로 바꿔줄 것을 요구하였고, 그 요구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첫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자동문으로 바뀌었다.

그 이외에도 장애인인 그를 위해 많은 부분의 개인 사물함이나 우편함 등 변화가 있었는데, 이 사건이 이일세씨에겐 큰 용기를 줬을 듯.

이러한 사실들이 한국의 언론에 대서특필되며 하루 아침에 '하버드의 정문을 고친사람'으로 유명해져 버렸다.

이일세씨는 미국의 생활을 접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바쁜 생활들을 보내게 되었는데, 라디오의 고정 칼럼도 맡았고 대학에서 강의도 하며 의미있는 시간들을 보냈다.

“열린 세상 국민 운동 본부”의 캐치 프레이드.

턱없는 세상...

차별없는 세상...

아픔없는 세상...

이것이 열린세상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말하는 이일세씨는 이 모임을 2003년 뜻이 맞는 주위의 많은 비장애인들과 함께 장애인 단체인 “열린세상 운동 본부”를 창단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회저변에 만연되어 있는 소외계층의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개선하고자 뜻을 함께 모아 단체를 구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캐치 프레이드대로 지금 열린 세상은 말 그대로 열악한 환경의 장애인분들의 집 앞 계단이나 턱들을 제거하고 있다.

얼마 전 17대 총선 출마로 근무했던 환경관리공단 감사를 그만 두고 현재는 현재 사단법인 열린세상 국민문화운동본부 대표와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계간 <열린지평> '이일세 칼럼' 집필 (1998~현재),서울시 생활체육협의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물론 그 이일세씨의 긴 삶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지 못해서 어렵고 힘든 시간에 대해선 막연하게 상상해볼 뿐이지만 사고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너무도 이뤄놓은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를 극복했다는 그것이 가장 큰일을 해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는 이일세씨를 보면서 "참 긍정적으로 세상을 사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일세씨의 미소가 전염병이 되어 많은 장애인들에게 활력소가 되었으면 한다.

요즘 이일세씨가 가장 애정을 같고 사는 일은 장애인의 입장에서.. 갖는 장애인들의 대한 애정. 그래서 올 9월 여의도에서 장애인 비장인 함께하는 연극, 노래 등의 행사를 대규모로 준비중이다. 그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턱없는 세상을 만들어 주기 위해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일세씨의 열린세상 국민문화운동본부(www.openworld.or.kr)이다.

“턱 없는 세상..”

우리도 함께 만들어 가요….

사람 만나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칼럼리스트 김진희씨는 지난 97년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사고를 당하기전 280명의 원생을 둔 미술학원 원장이기도 했던 필자는 이제 영세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에게 재활보조기구나 의료기를 무료로 보급하고 있으며 장애인생활시설에 자원봉사로 또 '지구촌나눔운동'의 홍보이사로 훨씬 더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필자는 현재 방송작가로 또 KBS 제3라디오에 패널로 직접 출연해 장애인계에는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음식을 아주 재미있고 맛있게 요리를 할 줄 아는 방년 36살 처녀인 그녀는 장애인 재활보조기구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이트 deco를 운영하고 있다. ■ deco 홈페이지 http://www.uk-ort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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