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경직을 줄여주는 주사약인 보톡스.

뇌성마비란 출생 전후의 뇌에 발생한 손상으로 인하여 근육이 경직(뻣뻣한 현상)되어 손발을 마음대로 사용하기 어렵고 똑 같은 거리를 걷더라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에너지 소모가 많아 힘이 더 든다. 또 근육이 굳어 있다 보니 걸핏하면 넘어지고 다쳐 여기저기 흉터가 많이 생기며 심지어 주변의 도움 없이는 혼자 걸어서 화장실 조차 가기 힘든 경우도 많다.

이런 근육경직현상이 오래 지속되면 근육의 길이가 짧아지고 그로 인해 뼈나 관절의 변형도 심해져 더욱 보행이 어려워지는 것이 뇌성마비의 자연적인 질병 경과다.

만약 이런 근육경직현상을 아이의 성장기 동안 만이라도 줄여줄 수 있다면 아이들이 걸음을 훨씬 수월하게 걸을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이차적인 근육의 구축이나 뼈, 관절의 변형을 예방할 수 있어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좋아지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뇌성마비의 근육경직을 줄여주는 방법 중 구미 선진국에서 널리 쓰이는 보톡스 주사는 우리나라에선 성형외과용 주름살 제거제로 더 알려져 있다. 보톡스란 원래 통조림이 부패하거나 고기가 썩을 때 생기는 박테리아인 ‘글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에서 추출하여 인체에 무해하게 처리한 신경독의 상품명이다.

1973년 미국 스미스-케틀웰 안과연구소에 근무하던 의사가 원숭이의 수축된 눈 주변 근육에 보툴리눔 톡신을 주입하자 근육이 이완되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 이후 1980년대 중반부터 보톡스는 눈 주변의 근육경련(안검경련), 목이 돌아가는 증상과 뇌성마비의 경직 완화를 위한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런 좋은 치료법을 보행 장애를 호소하는 뇌성마비아이들에게 사용하면 좋을 것 같은데 문제는 이러한 근육경직을 줄여주는 대표적인 약품이 의료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어 경제적으로 부담이 많이 된다는데 있다.

며칠 전 뇌성마비로 인해 다리가 뻣뻣하여 걷기가 힘들지만 수술을 할 정도는 아닌 아이의 부모님에게 보톡스가 아이의 상태를 좋게 하는데 도움이 됨을 설명하고 또한 이 약제가 아직 의료보험이 되지 않아 다소간 비싸다는 것(한번 주사에 약 50만원)도 설명드린 후 치료한 적이 있다.

시술 후 아이의 증세는 좋아졌으나 문제는 이런 경우 그와 연관된 각종 검사료 등도 같이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일반 수가로 모두 처리 되었다는 것이다. 주사 약값은 그렇다 치더라도 원 질병의 검사료는 의료보험으로 해주면 도움이 되겠구나 싶어 알아보니 만약 그리하면 허위 부당청구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아무리 도움이 되더라도 법을 어길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나라 헌법 제36조 제3항은 “모든 국민(國民)은 보건(保健)에 관하여 국가(國家)의 보호를 받는다” 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34조 제5항은 “신체장애자(身體障碍者) 및 질병(疾病), 노령(老齡)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生活能力)이 없는 국민(國民)은 법률(法律)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國家)의 보호를 받는다” 고 규정하고 있다.

뇌성마비 환아들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법이 하루빨리 의료보험적용이 되어 이제 우리 뇌성마비 아이들도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부산에서 태어난 박수성 교수는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에서 소아정형, 사지기형교정 및 뇌성마비 담당교수로 재직중이다. 장애 아동에 대한 배려가 선진국에 훨씬 못 미치는 현실에서 다리에 생긴 기형이나 뇌성마비로 인해 보행이 힘든 이들을 치료하여 장애의 정도를 최소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이 칼럼을 통하여 장애와 연관된 여러 질환들에 대한 유익한 의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장애인 또는 그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한다. ◆ 홈페이지 : www.hibo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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