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는 20세기 미술사에서 살아 생전 초현실주의 작가로 화려한 조명을 받은 화가였다 그녀 사후 그녀의 미술은 미술계에서 크게 부각받지 못했으나 프랑스 파리에서 68혁명의 봉화가 올려졌고, 그 불씨의 여파는 여성운동으로 확산되었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페미니즘 운동은 71년 린다 노클린의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를 발간하면서 여성 미술가중 프리다 칼로를 페미니즘 미술가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프리다 칼로는 제3세계(멕시코) 여성이자 장애인으로 그림을 그렸을 뿐 아니라 그림을 통해 여성의 정체성을 극렬하게 보여준 화가로 페미니즘 미술의 핵심으로 떠오르게 된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화가는 아니었지만 세계 곳곳에서 그녀의 전시회가 열리고 그녀와 관련된 출판물과 2002년 미라맥스영화사는 헤이든 헤레라가 출간한 픽션을 바탕으로 그녀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자신의 삶의 기록이라 할수있는 그림은 충격적이고 섬찟하다. 프리다 미술의 뿌리가되는멕시코 아스텍 문화의 정서를 알지 못한 나로서는 그녀의 그림을 보는것은 고통이었다. 프리다의 일생을 따라다닌 소아마비와 교통사고 후유증은 그녀를 수술대에 32번이나 오르게 했으며 끝내 괴저병으로 다리를 잘라내야 했던 그녀의 일생은 유혈이 낭자하다.

작은사슴

The Little Deer 1946

Oil on Masonite 8 7/8 x 11 7/8 in

Collection of Mrs. Carolyn Farb, Houston

프리다 칼로는 1907년 7월 6일 멕시코의 코요아칸에서 아버지 기예르모 칼로와 어머니 마틸데 칼데른의 셋째딸로 태어났다.아버지 기예르모 칼로는 유태계독일인으로 멕시코에 이주한후 성공한 사진작가가 되었으며 어머니 마틸데 칼데른은 인디안 혈통으로 신앙심이 깊었다. 프리다가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것은 사진작가 였던 아버지 기예르모 칼로의 기질을 타고 났다고 볼수있다.

프리다는 사회적 혼란기인 멕시코혁명의 와중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타고난 성품은 장난기 많은 외향적 성격이었다. 그러나 7살에 찍은 그녀의 유년 시절 사진을 보면 가족과 떨어진 채 나무아래에 서서 어딘가 숨고싶은 모습으로 나온다. 이런 변화는 프리다가 6살에 척수성 소아마비에 걸려 9달 동안 병상에 누워있게 된다. 유년시절의 고독한 병상생활은 자신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작용했다. 얼마나 외로웠는지 상상의 친구와 놀았다고 한다. <두명의 프리다>(1939) 는 어린 시절의 고독한 모습이라고 한다. 프리다는 걸을 수 있게 되었으나 다리는 자라지 않았다. 아이들의 짓궂게 놀릴 때는 프리다는 욕을 퍼붓기도 했으나 자존심 강한 프리다에겐 상처가 되었다. 그녀는 다리를 감추기 위해 가는 종아리에 양말을 덧신었고 오른쪽 굽이 높은 신발을 신었다.

아버지 기예르모 칼로는 여섯아이 중에 유난히 프리다 칼로를 사랑했다고 한다. 그는 프리다에게 지적 탐구심을 자극했으며 그녀에게 카메라 사용법과 필름현상 같은 것을 가르쳤다. 아버지의 꼼꼼함과 섬세한 세부표현의 특징은 그녀의 그림에서도 나타난다. <돈 키에르모 칼로의 초상>(1952) 은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한다.

프리다칼로는 1922년 멕시코 최고의 명문 국립예비학교에 입학한다. 그녀는 의사가되길 희망했던대로 5년과정을 선택했다. 프리다는 자라면서 독창적인 남성을 좋아하게 되는데 이같은 그녀의 애정편력은 알레한드로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된다. 프리다는 교통사고 전후를 통해, 알레한드로 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냈다. 일생동안 프리다는 사람을 붙잡기위해 자신의 지성과 매력과 고통을 이용했다. 알레한드로 아리아스의 경우도 사랑을 되찾기위해 그에게 선물한 첫번째 <자화상>(1926) 이었다

자화상 자화상

Self-Portrait 1926

Oil on canvas 31 x 23 in

Private collection, Mexico City >

Self-Portrait

1930

Oil on canvas

1925년 9월 17일 버스와 열차의 충돌 사고는 그녀의 일생을 바꿔버린 사건이다 전차에받힌 버스는 산산조각이 났으며 프리다는 버스에서 튕겨져 나와 페인트통을 뒤집어쓴채 몸에는 쇠막대기가 박혀있었다. 사고의 현장에서 누군가 철근을 뽑아냈을때 프리다의 비명소리는 적십자병원 사이렌 소리보다 더크게 들렸다. 프리다의 상태는 대단히 심각했으며 수술을 받게되는데 이것이 프리다의 첫번째 수술이었다. 강철난관은 그녀의 복부를 관통하여 왼쪽 옆구리로 들어가 질로 나왔다.

일년 동안의 병상 생활이 끔찍하게 지루해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는 그녀는 아버지의 물감과 어머니가 마련해준 특수이젤로 거울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 초기작품의 주제는 병상의 체험, 유년시절의 소아마비 후유증의 고독함이 배여 있다.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배운 꼼꼼함과 판화 공방의 체험은 인물의 특징을 세밀하게 표현할수 있었고 사실적인 기법을 시도했다. 그러나 색상은 어두웠으며 초기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어색했다는게 미술사들의 견해다.

나의 탄생

My Birth - 프리다

Oil on canvas 1932

327*272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의 결혼에 대한 기록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기록이 다르다 할지라도 디에고와의 만남은 그녀의 삶을 바꾸게 될뿐 아니라 그녀가 예술가로 성장하는데 디에고의 영향력은 실로 지대했다. 디에고 리베라는 1차대전 직후 파리 몽파르나스에서 모딜리아니, 피카소 등과 어울렸지만, 큐비즘과의 결별 뒤 독자적인 미술운동에 들어간다. 그는 거장으로서 세계가 인정했던 벽화 화가였으며 현대미술사에 기록되는 특출한 예술가였다.

프리다는 술회하기를 나는 20세에 디에고를 사랑했다. 부모님은 그가 공산주의자에다 뚱뚱해서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부모님은 코끼리와 비둘기가 결혼 하는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코요아칸에서 1929년 8월 21일 결혼식을 준비했다. 하녀에게 치마와 블라우스와 숄을 빌렸다. 또, 발에 달린 교정장치를 손보아 밖에서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한편 디에고 리베라는 그에게 제의해오는 벽화 작업을 아주 정열적으로 했던 그는, 공산당에서 그를 제명 시키는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미국 현대미술관 에서 전시를 하자는 제의와 록펠러재단의 벽화제작 등으로 프리다 칼로와 함께 5년간 미국에 머물게 된다. 프리다는 말많은 미국 사교계에 멕시코 민속의상을 입고 당찬 모습으로 등장 함으로서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 내는데 성공한다. 프리다의 화려한 의상은 언제나 사회적인 의사소통의 형식이었다.

헨리포드 병원

Henry Ford Hospital 1932

Oil on metal 12 1/4 x 15 1/2 in

Collection Dolores Olmedo Foundation, Mexico City

1932년 프리다는 임신 2개월만에 유산을 했다. 프리다는 구급차로 헨리포드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녀는 계속해서 피를 흘렸다. 그녀의 자궁에 자리잡지 못하고 분해 되어버린 태아에 대한 절망으로 울부짖었다. 그러나 유산한지 닷새가 지나자 그녀는 연필로 상반신 <자화상>을 그렸다. 프리다는 죽은 아기를 그리고 싶었다. 디에고가 구해준 관련 삽화가

들어있는 의학 서적을 통해 그녀는 신중하게 남자아기 연필화를 완성했다. 이때 그린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연필화 두점이 있는데 그 이전의 그림보다 더 초현실적이 었다. 그중 한 그림에서 프리다는 침대 커버 위에 누워있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침대 밖으로 흘러내려 마룻바닥을 기어가는 뿌리들의 그물망으로 변형되어 그녀를 표현했다.

<헨리 포드 병원> 그림은 프리다 칼로를 당대의 가장 독창적인 화가중 하나로 만들어준 끔찍한 자화상 연작중 첫번째 작품이다. 이 그림에 대해 리베라는 "프리다는 미술 사상 전례없는 걸작들을 연달아 제작하기 시작했다. 고통에 찬 시를 화폭에 담았던 여성은 이제껏 아무도없었다". 프리다는 디에고 리베라에 의해 평가 받는 유일한 여성화가 였다.

디에고 리베라는 프리다가 그림을 그릴수 있게 용기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동지였다.

July 19th 2004

지전 김종순은 태어나 첫 번째 생일이 되기 바로 전 소아마비를 앓았다. 어릴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지전은 몇 번의 그룹전을 하고 난 후, 그냥 그림 그리는 일이 심심해져서 첫 번째 개인전을 시작으로 1000호의 화선지위에 올라타고 앉아 음악을 그리는 일(퍼포먼스)을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지전의 화두는 '청각적 시각, 촉각적 시각'이다. 그녀는 음악을 그리는 일은 새로운 방식의 일이어서 일상에서 거의 유배된 생활 같아 가끔은 마음이 저릴 때도 있지만 많은 예술가들의 삶을 쓰면서 위로 받게 되었다고. 최소한 평등한 인간의 모습을 성실하게 기록함으로써 이웃과 소통하며 그녀가 소망하는 평등한 세상이 비록 희망뿐이더라도 그 표현의 여러 기록중 하나이고 싶기 때문이다. 18회, 19회 미협에서(국전) 2번 입선. 이화여대 경영연구소 蘭谷書會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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