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섹스를 나누고 싶은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마음 아닐까요?

성에 관한 담론은 그 시대의 사회·정치·경제·문화에서 주류적 권력의 영향이 어떻게 미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거기다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과 주체성에 의해 그 성적 담론의 열린 구조는 국가와 지역에 따라 다른 개방성을 드러낸다.

여기 우리가 사는 한국을 둘러보자.

한국은 여전히 가부장제적 구조아래, 남성중심의 자본주의적 소비문화 속에서 성에 대하여 이분법적이 구조가 팽배해 있다. 어떤 사람이 말하듯 ‘성은 빨간색 아니면 검정색이야.!’ 가 극명한 사회이다.

성에 대해서 온갖 호기심과 관심들이 있고, 더 잘 해보고 누려보고 싶지만, 사회적 통제와 억압은 성에 대해서 입으로 올리는 것들을 터부시 한다. 부부관계에서 조차도 성적 대화를 나누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은밀한 음담패설로 친구끼리 농담하며 ‘끼덕’ 거리는 문화가 상존하며, 쉽게 ‘섹스’ 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 또한 쑥스러워 하는 사회이다.

성을 어둠의 자식처럼 골방에 가둬두고, 나는 그것과 상관없어 하면서도, 섹스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버리지 못하고, 누구 몰래 성매매가나, 각종 성인 사이트와 문화매체를 섭렵하면서 왜곡된 성지식을 형성하거나, 성적욕망을 억제하며 살아가고 있다.

일반적 성에 대한 담론들과 문화도 그러 하건데, 그 안에서 장애인의 섹스 이야기는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가? 장애인을 성교육의 대상으로 보면서, 치료와 재활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성을 향유하고 누릴 권리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억압하고 거세하는 대상으로 본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몸에 대한 사회적 권력이 작용하는 것이다. 사회기준에 미달되는 몸은(정상이란 사회적 잣대) 비장애인 중심으로 편성되어 인간이 누리는 자연적 삶의 방식에서 철저히 소외시키고, 혹여 욕구를 표현할 경우 비정상적인 것으로 은폐하거나, 낙인시켜 버린다.

장애인의 몸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욕구의 본질적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몸자체와 사회적 관계로써 고유의 인간적 가치도 외면하는 것이다.

인간의 성적욕망은 몸을 통해서 느끼고 해소한다. 몸은 정신과 육체를 담보하는 곳으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실존적 통로이기도 하다. 섹스는 나 또는 타인과 관계이고 교감이다. 섹스는 자위나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서로간의 성적 욕망 혹은 친밀감을 나누는 과정이며, 자신의 자아실현과 만족을 형성해가며 쾌락을 추구한다. 이를 통해서 또 다른 관계를 재정립해 간다.

그러한 몸의 신체적 자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사람의 사회적 가치를 재설정하는 통로이며,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정체성 부여 및 지위와 권력의 밑천이기도 하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비장애인 중심사회에서 몸에 부여된 사회적 낙인과 기회배제들로 성과 관련한 경험과 접근에서 소외되고, 차단되어 왔다. 그 결과 성적욕망을 지닌 존재로 자신을 인정하는데 두려워하고, 자기 자신도 성을 억압한다. 아예 시작도 해보기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장애인 개인 및 그 가족, 사회에서 비롯된 경우가 높다.) 성적지식과 성적관계기술도 부족해 섹스와 사랑을 나누는데도 어려움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성적 유린의 대상자로 성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거나, 성이 거세되기도 한다.

또한 장애유형과 정도에 따라 다양한 접근을 해야 하는 현실적 조건은 장애인의 성을 이야기하는데 많은 고민과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한계를 보이게도 한다.

사랑을 나누는 모습.

그렇다고 해서 인간으로써 살아가는데 필요한 삶의 기본적 욕구와 소중한 즐거움의 소통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회적 봉기를 통해 시위나 집회를 하며 성적권리를 주장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은밀하게 개인적 영역으로 내몰면서, 장애인의 성 관련한 조회수만 올릴 수는 없지 않은가!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섹스에 대해서 너무나 관심이 많고, 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한 것을 다양하게 열린 구조로 이야기해보고, 섹스 할 경우가 될 때에는 즐겁고 유쾌하게 즐겨보자는 것이다.

늘 숨겨둬서 자신 없어 하지 말고, B급 아류품처럼 취급해서, 행복한 섹스 자체를 우리 삶에 주변으로 돌리지 말자는 것이다. 장애와 사회적 권력으로 인해 성폭력에 노출되기 쉬워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짓도 하지말자는 것이다.

성에 관한 정숙한 용어라고 주장하는 말들만 쓰지 말고, 성기에 대한 여러 재밌는 은어들도 이야기해보고, 성적 환타지, 딸딸이, 사랑과 섹스에 따른 호르몬 분비의 변화, 내 성감대는 어딘지, 오르가즘이 뭔가, 여자의 가슴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고, 장애를 가지고도 어찌하면 관계를 잘해볼까?, 장애가 있는 사람의 섹스체위와 장애유형과 정도에 대한 연구도 해보고,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당당히 드러내어 자연스럽고 책임감 있게 향유해보자는 것이다. 또한 장애에 따라서 섹스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해보고 실생활에서 행복하게 즐겨보자는 것이다. 장애인에게 가면 성이 교육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성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폭력에 노출되지 않고, 재미나는 섹스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자유롭게 수다를 떨어보자는 것이다.

성에 대한 사회․도덕적 기준이란 것도, 그 시대와 지역의 문화 안에 갇혀있는 가치관일 뿐이다. 이제 섹스에 관한 우리들의 이야기는 자유롭게 표현되고 누려져야 한다. 과거 동성애와 오럴섹스, 자위등이 변태라고 치부되던 시대도 있었다. 그런 만큼 장애인의 성담론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앞으로 장애인의 성 이야기를 하면서 때로는 가벼우면서 노골적이게 또는 흥미로우면서 재미있게, 때때로는 솔직하면서 진지하게 우리의 성을 이야기해갈 것이다. 어떤 벽도 치지 않을 것이며, 오직하나 우리의 건널 수 없는 섬은 장애인이 성적존재라는 것을 거부하는 그 것 뿐일 것이다.

만화로 이야기 하는 장애인의 성.

칼럼니스트 박지주씨는 중 2때 척수염으로 인해 학교를 중퇴하고 재가장애인으로 5년간 집에서 지냈다. 22살 운전을 배워 세상과 어울리면서 24살에 중학교 검정고시에 도전했고, 늦은 28살에야 숭실대학교에 들어갔다. 그 후 비장애 중심의 사회와 싸우며 장애인 학습권 침해에 대한 소송으로 세상에 정면도전함으로써 많은 장애인에게 당당한 권리를 알게 했다. 그녀는 그렇다. 산다는 게 행복한 여자. 때때로 밀려드는 어려운 고통들도 삶의 재료라고 여기며, 노래로 풀어버리는 여자다. 가장 은밀하면서도 사적영역으로 치부되어, 자유롭게 섹스이야기를 못하는 사회에 사는 중증장애여성. 장애인의 성을 이야기 하면서, 인간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질 수 있는 편견과 차별을 되짚어보고, 억압된 성을 풀어헤쳐, 행복한 성을 누리기 위한 과감한 섹스이야기를 진하게 하려고 뎀비는 뜨거운 여자. “자! 장애인들이여! 우리 맘과 몸에 맞는 거 한 섹스 여러 판하고 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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