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혁이와 나의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가끔은 기다려진다

이제 겨우 6월 초인데 날씨는 벌써 무르익은 여름에 접어든 듯 하다.

아직은 7월도 되지 않았으니 여름을 맞을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무더위도 엄청난 폭우도 언제나 우리가 준비할 틈도 없이 닥쳐오는 것만 같다.

가끔 승혁이에게 시도때도 없이 이유 없는(제 딴엔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꼬집힘과 공격을 받고 한순간도 자신에 대한 무관심을 참지 못해 과잉행동을 하기도 해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냐고 원망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러한 승혁이를 받아주기에 늘 준비하는 부모였던가 반성해 본다.

그래도 내가 한가지 아이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하루에 적어도 한번 30분 이상 늘 놀이터에서 함께 놀아주는 엄마였다는 점이다.

한 친구는 매일 그렇게 놀이터에서만 놀면 공부는 언제 가르쳐 주냐고, 노는 것도 좋지만 가뜩이나 늦는 아이에게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 읽고 연필을 잡는 훈련도 좀 시키라고 핀잔을 준 적이 있다.

나도 물론 아이와 책상에 앉아 이것저것 공부도 하고 쓰는 것도 가르쳐 주고 싶지만 사물인지도가 많이 부족한 아이에게 쓰기를 강요할 수도 없다. 더구나 뭔가 쓰는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연필을 쥐어주면 멀리 집어던지기만 하는 승혁이에겐 오히려 놀이터에서 배우고 싶은 것이 더 많은 모양이다.

한낮 더위에 놀이터가 이글이글 달아오르건 말건 승혁이의 놀이터행은 하루도 빠짐이 없다. 혼자서 나갈 줄 모르기에 나도 매일 놀이터로 출근이다. 일단 놀이터에 가서는 신발 모두 벗고 맨발의 '원시'상태에서 놀이터의 모래를 마구 밟으며 뛰어다닌 후 두 손으로 모래를 한 움큼 잡아서는 위에서 자기 몸을 향해 한없이 뿌려댄다. 비가 오지 않아 마를 대로 마른 모래에선 한 움큼의 먼지도 함께 승혁이의 머리위로 떨어진다.

말리고 싶지만 그 순간 승혁이의 표정은 무아지경이다. 승혁이 동생이 미끄럼틀과 그네와 시소를 오가며 이것저것 다양한 놀이를 하는 동안 승혁이를 3년 내내 사로잡고 있는 모래뿌리기 놀이의 매력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눈 앞에서 스르르 떨어지는 모래의 모습이 마냥 자유롭게만 느껴지나 보다. 아마도 나의 추측엔.

바로 어제도 모처럼 시간이 난 아빠와 함께 어린이집을 마치고 집근처 한강시민공원까지 가서 한시간 동안 흙장난을 하고 왔는데도 성에 안 찼는지 기어코 저녁 내내 '놀이터, 놀이터'하고 울어댄다. 이번엔 동생까지 한편이 되어 거짓으로 울음소리까지 내며 더 큰소리로 '놀이터'를 합창한다.

하는 수 없이 늦은 저녁준비를 하다가 9시가 다 되어서야 '동네 놀이터 가자'고 현관문을 나서니 눈물까지 흘리며 울었던 승혁이는 평소에는 늘 반대로 신는 샌들도 제대로 재빠르게 신고 신이 난 듯 '깍깍' 소리를 지르며 저만큼 엘리베이터로 달려나갔다.

오랜만에 저녁에 나와보니 오히려 한낮보다 더 활기차 보일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고 가게불빛에 저녁손님을 위해 몰려든 노점상 불빛까지 환해 아이들은 벌써부터 들뜬 분위기였다. 차만 지나가면 배기구에 얼굴을 들이대는 특이한 버릇 탓에 놀이터로 향하는 동네골목에서 쉴 새 없이 차조심 하라고 주의를 주며 겨우 놀이터에 도착하니 무더위를 피해 나온 아이들이 벌써 여럿이서 놀고 있었다.

일단 신발부터 벗어 던지고 어느 틈에 노인정 마루에 앉아 계신 할머니에게 슬금슬금 다가가 손을 뻗는(승혁이는 사회성이 부족해 아직도 인사대신 다른 사람의 얼굴을 만지거나 툭툭 신체 부위를 치곤 한다) 승혁이에게 "그러면 안돼"하고 낮지만 꽤 크게 목소리를 높이니 오히려 할머니가 움찔 하시며 내 목소리에 더 놀란 눈치이다. 늘 겪는 일이지만 언제쯤 나도 아이에게 엄한 다그침보다는 밝게 웃어주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왠지 마음이 우울해진다.

그때쯤 놀이터 한쪽이 술렁거렸다. 한 초등학생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비눗방울을 부니 여기저기 흩어져 놀고 있던 아이들이 "야 비눗방울이다"하고 몰려들었다. 이번엔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높은 곳에서 연신 비눗방울을 부니 마치 하늘에서 비눗방울이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다. 문득 영화 <가위손>에서 여자친구를 위해 주인공이 자신의 가위손으로 얼음을 부셔서 눈을 만드는 내용이 떠올랐는데 지금 비눗방울을 보는 아이들의 표정에도 영화 주인공의 여자친구처럼 황홀함이 가득한 것 같다.

순식간에 조용하던 놀이터는 미끄럼틀 위에서 쏟아지는 비눗방울과 비눗방울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아이들의 몸짓과 웃음소리로 시끌시끌해졌다. 놀이터는 온통 비눗방울 가득한 아이들의 세상이 되었다.

방금 전만해도 부족한 엄마로서 내 자신을 자책하느라 우울했던 나도 비눗방울 놀이에 신이 난 아이들을 보며 모처럼 웃어볼 수 있었다.

저마다 자기 앞에 떨어지는 비눗방울 잡기에 열중한 아이들처럼 승혁이도 벌써 몇 번이나 제 손으로 비눗방울을 터뜨리곤 깔깔대고 웃어댄다. 소리까지 내고 웃고 있다는 건 지금의 기분이 최고조라는 뜻이다. 놀이터만 가면 일단 친구에게 흙뿌리기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인사를 대신하는 승혁이로 늘 가슴 졸이며 긴장이 되곤 하는데 그 순간은 아무 걱정 없이 나도 보통 엄마들처럼 재미있게 노는 아이를 흐뭇한 미소로 마냥 바라보는 엄마의 행복을 느껴본다. 짧지만 아주 소중한 행복이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는 순간 승혁이도 나의 걱정과 초조함 없이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평등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승혁이와 내가 동시에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이 많지는 않겠지만 지금의 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

자기가 분 비눗방울을 밑에서 열심히 잡는, 동생뻘 되는 꼬마들을 보며 신이 났는지 열심히 비눗방울을 불어준 아이들의 모습도 너무 예뻐 보였다. 나누면 더 즐겁고 행복해지는 이치를 벌써부터 깨달은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만 있다면 장애아와 비장애아의 구분을 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 같다. 조금만 노력한다면 아이들 모두 함께 즐거워질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빨리 비눗방울을 불어달라는 동생들의 성화에 너무 열심히 비눗방울을 불었는지 30여분간의 비눗방울 놀이는 두 통의 비눗물이 다 떨어지자 아이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끝이 났다.

평소 밥상만 보면 고개부터 돌리던 승혁이는 그 날 실컷 뛰어 놀아 배가 고팠는지 집에 돌아와선 내 잔소리 없이도 제법 숟가락으로 밥도 푹푹 떠서 잘 먹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두부튀김도 냉큼 손으로 몇 번이나 집어먹었다. 잠이 워낙 없어 12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던 승혁이는 코까지 드르렁 골며 잔다. 입가엔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아마도 비눗방울 놀이 꿈을 꾸고 있나 보다.

올해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고 현재 언어발달 및 발달지체를 겪고 있는, 여섯 살된 아들(백승혁)을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아들의 장애를 알기전에는 무조건 장애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싶었는데 막상 아들의 장애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슬픔보다는 앞으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가 더 막막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자료도 체계화되어있지 못한 현실 속에서 장애아동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연구는 너무나 부족한 실정입니다. 아들과 제가 겪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칼럼 <달팽이>를 통해 실으면서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고 살고계신 장애아를 둔 부모님들에게 실질적인 임상경험담이 되었으면 합니다. 장애아동의 부모가 되기엔 특수교육에 대한 지식도 턱없이 부족하고 준비되지 못한 부모이지만 일년여간의 심리 및 언어치료와 통합유치원 생활을 통해 이제 겨우 두 음절의 단어와 짧은 동사를 말하기 시작하는 승혁이를 보면서 아주 작은 희망을 엿봅니다. 지금 시작되는 이 작은 희망이 언젠간 지금의 힘겨움을 이겨내고 나중에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으로 발전되길 바라면서 승혁이와 저는 조금씩 하지만 쉬지않고 나아가는 달팽이처럼 꾸준히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그리고 승혁이와 같은 장애를 가진 장애아동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힘내시라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