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을 읽어주려고 책을 펴면 벌써부터 책을 읽는 엄마를 방해하려고 툭툭 발로 차고 책을 빼앗아 저만치 집어던지기도 하며 승혁이는 미리 훼방부터 놓는다. 하지만 내가 권하지 않아도 저 스스로 책꽂이에 다가가 보게 되는 책이 있다. 바로 미운 오리새끼이다.

종이로 된 책이 아닌 비닐로 된 그림책이라서 질감이 다른 탓에 더 관심을 갖게 되기도 했지만 첫 장을 넘길 때부터 하얀 다른 오리들과는 달리 유난히 크고 못생기게(내 눈에는 오히려 더 귀엽게 보이지만) 그려진 보라색의 미운 오리새끼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깔깔대고 웃는다.

요즘 별로 웃기지도 않은 일에 과장된 듯한 소리로 크게 웃는 버릇이 생긴 승혁이는 가뜩이나 웃을 일도 없는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발견한 '특이한 오리새끼'가 모처럼 웃음거리라고 생각되었는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따돌림을 받고 잔뜩 풀이 죽은 표정을 한 미운 오리새끼의 모습을 보고 여섯 장으로 이루어진 동화책을 읽어주는 내내 계속해서 웃어댄다.

원래는 유아 영어교재용으로 나온 책이라서 간단한 영어문장으로 쓰여진 내용 대신 "넌 왜 이렇게 크고 못 생겼니? 저리 가." 하는 식으로 나름대로 승혁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짧은 문장으로 다듬어 읽어주었다.

그런데 처음엔 오리 형제와 엄마에게, 암탉과 강아지에게도, 눈보라가 내리는 추운 겨울날 숲 속에서 유일하게 만난 토끼에게까지 못생겼다고 놀림과 따돌림을 받은 불쌍한 미운 오리새끼가 맨 마지막 장에서 백조를 만나 사실은 아름다운 백조임을 알게 되는 장면에서 지금까지 내 이야기를 듣는둥 마는둥하며 딴전을 피우며 깔깔대고 웃기만 하던 승혁이는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한동안 제법 진지한 표정이 되어 내 얼굴을 보며 '백조?'하고 되묻는다.

나도 일부러 승혁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미운 오리새끼가 비로소 자신이 아름다운 백조임을 알게 되는 마지막 장면에선 그때까지 서글픈 어조로 읽어주던 목소리를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제가 정말 아름다운 백조라구요?"하고 연출하며 나름대로 미운 오리새끼의 마음을 전해주려 애써본다.

처음엔 아무리 읽어주어도 뭐가 우스운지 계속 소리내어 웃기만 하던 승혁이도 요즘은 미운 오리새끼의 감격적인 자아의 발견에 뭔가 감화가 되는지 한참동안 마지막 페이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내가 어린시절 미운 오리새끼란 동화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너무 슬픈 동화라고 생각했고 모두에게 따돌림받는 미운 오리새끼의 모습을 보고 너무 불쌍하기도 하고 화가 나서 나는 절대로 미운 오리새끼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동화가 세상에 나온지 수 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자기와 비슷하지 않다고 아무 죄 없는 누군가를 따돌리고 상처를 주는 잔혹하고 이상한 문화가 어른에게도, 심지어는 가장 순수한 감성을 지녔어야 할 어린 아이들의 세계에도 존재하고 있다.

사실 <미운 오리새끼>에는 이 동화의 작가 안데르센이 어린 시절 힘들게 고학했을 당시 그를 몹시 괴롭혔다던 교장 선생님에 대한 악몽이 투영되었을 수 도 있을 것이다. 스물 다섯 살에 첫사랑에 빠졌지만 실연당한 이후 그 뒤에도 계속 사랑했던 사람에게 번번히 실연당해야만 했던 짝사랑의 아픔을 누군가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미운 오리새끼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동화책 속에서 내내 눈물 짓고 있는 미운 오리새끼를 보면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누군가에게 늘 다가가고 싶어하지만 번번히 돌아오는 아이들의 냉정한 뿌리침에 멋적게 미소지으며 뒤로 물러나는 승혁이의 얼굴과, 예술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 높았지만 누군가의 미움으로 상처받고 평생동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단 한번도 사랑받지 못했던 고독한 안데르센의 모습이.

하지만 왕자와의 결혼에 성공하지 못한 인어공주가 왕자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품고 아름다운 물거품이 되었듯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따돌림 받았지만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게 된 미운 오리새끼처럼 안데르센은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세계 아이들에게 꿈과 사랑을 심어주는 위대한 동화작가로 기억되고 있지 않은가.

승혁이가 마지막 장면에서 숨죽이고 미운 오리를 들여다 볼 때 미운 오리새끼가 앞에서 흘렸던 서러움의 눈물 대신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흘리는 기쁨의 눈물의 차이를 조금은 알아주었으면 싶다. 그래서 난 승혁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승혁아 미운 오리새끼 참 행복하겠지?"

미운 오리새끼는 백조가 되지 않아도 아름답다. 백조가 되기 위한 시련의 시간을 훌륭히 견디어 낸 모습만으로도 눈부시게 아름답기에.

올해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고 현재 언어발달 및 발달지체를 겪고 있는, 여섯 살된 아들(백승혁)을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아들의 장애를 알기전에는 무조건 장애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싶었는데 막상 아들의 장애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슬픔보다는 앞으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가 더 막막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자료도 체계화되어있지 못한 현실 속에서 장애아동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연구는 너무나 부족한 실정입니다. 아들과 제가 겪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칼럼 <달팽이>를 통해 실으면서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고 살고계신 장애아를 둔 부모님들에게 실질적인 임상경험담이 되었으면 합니다. 장애아동의 부모가 되기엔 특수교육에 대한 지식도 턱없이 부족하고 준비되지 못한 부모이지만 일년여간의 심리 및 언어치료와 통합유치원 생활을 통해 이제 겨우 두 음절의 단어와 짧은 동사를 말하기 시작하는 승혁이를 보면서 아주 작은 희망을 엿봅니다. 지금 시작되는 이 작은 희망이 언젠간 지금의 힘겨움을 이겨내고 나중에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으로 발전되길 바라면서 승혁이와 저는 조금씩 하지만 쉬지않고 나아가는 달팽이처럼 꾸준히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그리고 승혁이와 같은 장애를 가진 장애아동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힘내시라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