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편견은 프리섹스주의자라고 하면, 굉장히 많은 섹스파트너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거나 대단한(?) 성생활을 할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본 필자는 진정한 프리섹스주의자는 파트너의 수라든가 성체위의 문제로 국한지어 생각하거나 무책임한, 혹은 방종한 사람을 일컫는 말은 아니라고 본다.

사람들이 가진 성적환타지는 다양하고, 개별적인 부분이 있다. 그런 내용들은 굉장히 사적인 영역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한 맥락에서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주는 것이 진정한 프리섹스주의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부터 만나려고 하는 여성장애인은 우리가 봐왔던 주변의 한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특별한 코드가 있다고 감지되어지는 것은 그녀의 자유로운 관념. 그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 때문일 거라고 생각이 되었다.

처음 만난 건 성적코드를 가진 만화책을 한권 만들고 싶어서였다. 까무잡잡한 피부, 야구모자를 쓰고 그녀는 술집에 앉아있었다.

아~ 그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매일 섹스를 부르짖는 섹시코드라곤 쥐뿔없는 필자와는 사뭇 달랐다. 섹시하다, 아니다 그걸로는 뭔가 약했다. 이제 그녀와 만나 얘기하려고 한다. 그녀와의 세상 속으로 한번 따라들어 오시라~

최근 어떻게 지내시나요?

“저는 일 중독인거 같아요. 집에 있는 것이 고통스러워요. 애들이 개학해서 학교문제가 있고 그래서 방학 때처럼 제가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거기에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도 있긴 하지만 내가 하고싶은 일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니깐 미치겠어요.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 느낌. 다 하고 싶지만 선택해야하는 느낌.. 전에도 일에 대해서 중독에 빠져있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요즘 더 그래요.

자립지원센터를 하면서 같이 보조를 맞춰야하고 커뮤니케이션도 해야하고 이런 부분이 있어요. 혼자 만화그리는것과 달리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서 일을 진행하는 느낌이 달라요. 그런걸 잘 풀어가려고 노력하다보니 생각도 많아지고 그래요.”

섹스 얘기를 좀 진행하도록 할께요. 중도장애인이신데 어려서 성적흥분을 느꼈다던가 계기가 있으셨을거 같은데요? 욕구가 생겼다던가..

“16살 정도 였던거 같은데요. 그때는 파릇파릇한 나이잖아요. 그 또래 친구들이 많았어요. 같이 몰려다니면서도 이성을 느끼는거에요. 친구고 오빠고 표면적으로 그랬지만, 혼자 그런 상황들을 생각했었어요. 이 사람이랑 둘이 같이 있으면 어쩔까? 손 한번 잡아보면 어떨까? 이럴 때 키스를 하면 어떨까하는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거죠. 아마 그때부터였던거 같아요. 그전에는 성이라는 느낌보다는 호감만 가지고 있었어요.

17살에 첫키스를 했어요. 하하.. (조숙하셨네요) 친구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이뤄졌어요. 어쩌다보니 둘만 얘기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다른데 얘기를 집중하고 있었어요. 그 친구는 저보다 두 살이 더 많았어요. 예전에는 늦으면 택시 타고 가야한다는걸 생각 못하고, 그러다 기대가 되더라구요. 저만 여자였어요. 그때도 저는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둘만 딱 붙어서 얘기를 집중하다보니 스킨쉽이 이뤄졌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다른 친구들이 둘만 있을 기회를 주려고 했던거같기도 하네요.

어깨를 부딪히고, 그러다 생각해보니 키스를 하면 잘해야 할거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첫키스인데도 그랬어요. 그때 제가 AFKN을 엄청 봤거든요. 그대로 한거죠. 영화에서 키스할 때 보면 키스 전에 이마를 어루만져준다던가,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키스한다던가 그런 장면을 연상하면서 진행했어요. 하하.. 그게 정석인줄 알았죠.. 그래서 상대편 남자가 당황했던거 같아요. 저도 이게 아니구나 했죠.

처음하는 애가 능숙하게 했으니까요. 얌전하고 조용조용한 애인줄 알았는데 그랬으니..

그 이후에는 굉장히 어색해졌고 헤어졌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너무 창피한거에요. 내가 왜 그랬을까하고 말이죠.”

섹스에 대한 방식이 그렇다는건 어떻게 아셨어요?

“AFKN 프로를 보고 알게된거죠. 삽입하는 건 프로그램에 안나왔어요. 또 상상을 하기도 했고요.

아랫집에 신혼부부가 살고 있었어요. 그 언니가 나중에 말해줬어요. “너도 나중에 알게돼.”

밤에 놀러 많이 다녔는데 신혼집에서 소리가 많이 나더라구요. 판잣집 구멍 속으로 한번은 엿봤어요. 너무 충격이었죠. 여자가 너무 즐거워하더라구요. 그래서 애들이랑 밤마다 들여다보고 그랬어요. 낮에 그 언니를 보니깐 굉장히 민망하더라구요.”

마스터베이션은 언제부터 하시게 되었나요?

“지금 제가 마흔 살인데 최근에 한달 전부터 시작했어요.

(방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시게 되었어요?) 제 주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알았고, 방식을 알 수 있는 통로는 많았어요. (그동안은 왜 마스터베이션을 해보실 생각을 안 했는지 모르겠네요?) 그때까지는 제가 항상 섹스파트너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해볼 생각해본적이 없었던 점도 있었고요.

이번에 마스터베이션을 하게 된건 아주 우연한 계기가 있었어요.

제가 항상 새벽에 잠이 들게 되는데요. 애들은 다 잠이 든 상태였고 몸이 찌뿌둥하고 그래서 샤워하고 나오니까 컴퓨터뿐이 켜있는게 없었고, 바람이 싸하고 불고 몸이 그걸 요구하는거 같아요. 내가 내몸을 느끼면서, 나 스스로가 정말 성적흥분을 요구하고 있었던거죠.

내가 나를 보면서 내가 내몸을 느끼면서 오르가즘을 느꼈어요.”

마스터베이션이 섹스와 다른가요? 장애를 가진 이후에 섹스와 이전과 차이가 있는 것 같으신지?

“일단 마스터베이션은 파트너가 있어서 하는 것과 다르더라구요. 이런게 있어요. 우리들은 장애로 인해서 성적인 욕구가 거세될 수밖에 없는게 있었던 부분이 있었거든요.

장애를 가진 다음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요. 상대편이 내몸에 대해서 어떻게 느낄까. 혹은 이렇게 배려해야하지 않을까? 했던 부분들을 생각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마스터베이션이 새로운 감흥으로 다가왔던거 같아요.

장애를 갖기 전에는 내가 좋아서 했던거거고 내가 느끼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었는데 장애를 가진 이후에는 보여지는 나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아쉬움이 너무 많았어요. 거기에서 오는 욕구불만이 쌓여가고 있었어요. 보여지는 나를 생각해야하는 자체가 자괴감으로 이어지고 자신감도 없어지고 그랬어요.

하지만 전 늘 암시를 걸려고 해요. ‘나는 섹시하다…’ 내가 보는 나를 혼자 가꾸는 타입이에요. 그런 감정을 잊지않으려고 노력해요.

보여지는 나에 대한 것도 전 커요. 내가 나를 느끼는 것은 외모에서 보여지는 것이 이뻐보이고 매력적이어야 해요. 내 장애와 상관없이 “저 여자 섹시하다” 그렇게.

그런 부분이 만족이 되어야해요. 그래서 살찌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피부관리도 하고, 표정관리도 하고 그런 거죠. 꼭 1:1이 아니어도 그래요. 준비하는 거죠. 어느 날은 츄리닝을 입고 나돌아다니기도 하는데 그런 날은 나는 쭈구리에요.”

첫섹스는 어떠셨어요?

“17살 때 했었어요. 나이가 어렸어도 다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처음에는 통증이 좀 있었어요. 이게 왜 좋다는거야? 그랬었지만, 한 두번 쌓여가면서 ‘아, 이거구나 이게 오르가즘이구나’하고 느꼈어요.

전 오르가즘이 뭔지 알아요. 그걸 즐길 줄 알았던거죠. 섹스는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거 같아요. 상상이 아니에요. 현실이란 걸 알았어요. 첫 순간은 나름대로 고통이었지만, 나중에는 그 순간에 즐기기 위해서 뭔가를 찾았던거에요.”

결혼생활에서 부부관계는 어떠셨어요?

“첫 남편은 연하의 남자였지만, 코드가 잘 맞았어요. 물론 제가 내면적으로 사랑한게 아니어서 아쉬운 점이 있긴 했었어요. 그 친구와는 동거생활을 했었어요. 성적으로는 맞았지만 생활 면에서 좀 안 맞았지요. 그래서 아이를 갖고 아이를 낳았어요.

두 번째는 95년도 32살때였나봐요. 그때는 장애이후에 한 것이었어요. 장애는 29살에 척추후만증으로 인한 수술로 불완전마비가 온거예요. 그때 남편하고도 성적으로 만족했어요. 누나 동생하고 지내다 결혼한 케이스에요. 그 친구는 내가 거의 가르치면서 섹스 했어요.”

아이를 둘 키우고 계신데 아이양육권에 대해서는 전 남편들이 요구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나요?

“아이를 키우고 싶었겠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키울 수밖에 없었어요. 98년도 10월에 이혼했어요.”

자신의 섹스패턴이라면?

“이전에는 내가 자유로워서 항상 리드하고 하고싶은데로 했었고, 성적으로 문제가 없었어요. 그리고 저는 어두운 곳에서 섹스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요. 약간의 조명이 있어야해요. 표정이라든가 서로의 시선을 가리고 싶지않아요.

그리고 제 습관이라면 대화를 해야해요. 그래야 제가 흥분이 되거든요. “너 이렇게 해주니깐 너무 좋다. 너 이렇게 해봐. 내가 이렇게 해줄게”하면서 얘기를 진행하는거죠.

처음에는 상대가 너무 어색해했지만 나중에는 제약이 없어지고 표현에 자유로와졌어요. 나는 내숭을 떨 필요가 없었어요. 저는 이미 아이를 출산했고 표현에 제약을 할 필요가 없었던거죠. 말 한마디에 흥분되고 오르가즘을 느끼게 되는거죠. ‘아, 상대가 나랑 같이 흥분하고 있구나’하고 생각이 되고, 다른 패턴보다는 훨씬 더 흥분되요.”

섹스할 때마다 본인이 가진 환타지가 있나요?

“처음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언젠가부터인가 싫어졌어요. 신뢰감을 벗어나게 한 것이 있었거든요. 나와 열정적인 성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외도를 했었거든요.

나는 만나는 동안만은 한사람 뿐이었어요. 그런데 내 파트너는 그렇지 않았고, 그게 배신감을 느끼게 했어요. 나는 적나라한 내모습을 보여주고, 나의 벽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았어요. 인간적인 배신이라고 봐요.

그러다 보니깐 의래적으로 섹스를 하게 돼요. 사람은 싫은데 몸이 원하더라고요. 내몸이 원하는걸 어떻해요.

내 환타지는 다른 사람을 상상하는거에요. 섹스를 하면서도 다른 사람 이름을 불렀어요. 고의적으로 그런 적도 있어요. 그게 더 흥분이 될 때도 있었어요. 그땐 그 사람이 싫었던걸요. 그래서 그랬던거죠.

나는 이런 섹스를 꿈꾼다?

“저는 의도되지 않은 섹스를 꿈꿔요. 언제 어느때라도 자연스럽게 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의도된거는 나 스스로 제약을 받아요.”

좋아하는 체위는?

“저는 후배위가 좋아요. (성기가 남자한테 보여지잖아요?) 저는 좋아해요. 적나라할 때는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게 무조건적인건 아니고 어차피 섹스란건 상대랑 같이하는거잖아요. 상대의 성적 반응이 10이었다면 20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코드가 있다는거죠. 순간적인 감각을 케치할 수 있는거죠. 저 스스로 그 부분은 맘에 들어요.”

원나잇스탠드에 대한 경험? 정기적인 파트너와 다른 점이라면?

“장애를 가진 이후에도 있었어요. 말을 꺼내기에는 구체적이지 않지만, 삽입까지는 못 가고 스킨터치로만 갔었어요. 그때 속으로 외쳤죠. ‘제기랄’.

상대가 문제가 아니라 제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지금 몸속에 기구가 한 개 있잖아요. 카테타.. 몸은 완전히 원하고 있는데요. 이걸 보여야한다는데 상대방이 거부감이 느낄 수 있을거 같아서 망설여졌어요. 아직 그런걸 말할만한 시기가 아니라고 봤던거죠.”

섹스에 대한 나쁜 기억?

“대부분 좋은 기억이지만, 예전에 한 친구를 만났어요. 항상 의도된 섹스만하는거에요. 갑자기 전화를 해요. “나와” “만나” 그리고 섹스만 하고 끝나는거에요. 에널섹스나 합의되지 않은 체위를 원하고는 그뿐인거에요.

첨 만났을 때는 좋았지만, 계속 섹스만 원한다는걸 알게된거죠. 나중에는 어떻게 생각했냐면 내가 골탕먹이고 끝나야지 하는 생각까지 가게 된거죠. 내가 이런 식으로 섹스하는건 미친거다. 이런 느낌 때문에 나쁜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어요.

자녀들 성교육은 어떻게 하시죠?

“따로 성교육을 하지는 않아요. 자연스럽게 알게되는거죠.

나의 적나라한 모습을 본게 아들이에요. 샤워하고 나올 땐 옷을 벗고 나오는거죠. 하다못해 넬라톤하는것까지 보여줄 수밖에 없으니깐. 남편과 결혼생활을 할 때도 숨기지 않았어요. 같이 안거나, 키스하고 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자연스럽게 생각했어요. 그런 과정을 십년넘게 본 셈이죠.

물론 제가 그런 자연스런 환경에서 자라온건 아니지만, 내 아이는 내 감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구속하거나 그렇지 않아요. 특별한 성교육은 하지 않아요.”

작업은 어떻게 하시나요?

“느낌으로 알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맵시를 봐요.

섹시하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시각적으로 뭔가 느끼잖아요. 그걸 먼저 시작해요. 나를 가꾸고. 컨셉을 잡는거에요.

내가 이 친구를 만나는데 호감이 생기면, 그럴 땐 다른 때와 다르게 이쁜모습을 보여주는거죠. 내가 눈짓을 하면 상대방도 알고 있어요. 상대방도 바보는 아니거든요. 통하지 않는다면 이미 작업을 하지 않겠죠. 서로 동기유발을 위해서 노력한거죠.”

장애인의 성적권리 부분이 계속 얘기가 되어지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먼저번에 모 언론을 보니깐 공창제를 가지고 왈가왈가 많이 했어요. 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이라고 생각해요. 전 몸을 사고 파는 것은 화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이미 현실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잖아요.

자기 자신을 돌아보란 얘기를 하고 싶고, 공창제에 대한 얘기보다는 다른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언젠가는 장애인의 성적권리들이 향상되리라고 생각해요. 그 날은 머지 않았다고 믿고 있지요. 문제들은 많지만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구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느끼는 나, 내가 하고 싶은 나. 만나고 싶은 사람들! 하고 싶은 섹스!

선택은 나에게 있다고 봐요. 선택되어지는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다는 거죠. 다른 장애인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욕구에 대해서 솔직하라는거죠.”

“오늘 인터뷰 감사했습니다.”

홍미경의 자기 목소리내기는 이땅을 살아가는 성적존재의 한사람으로서 부르짖음이 아닐까한다. 그녀와 같은 당사자들이 많이 나타나서 힘을 합해 목소리 내기에 좀더 애써본다면, 이제 우리가 요구하는 그런 사회들은 머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보기도 했다.

멋진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며, 또 다른 색깔을 가진 당신을 기대한다.

즐섹들 하시라~

최근들어 지난 이력을 자세히 소개해야할 필요를 느낌. 왜? 설명치 않아서, 혹은 설득력의 부재로 종종 인간관계에서 실패를 보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 혹시 아는가 프로필을 잘 설명해서 대성할지… -1971년 위생병원 출생: 칠삭동이, 어려서는 칠삭동이가 대단한 것인줄 알았음. 비숫한 인물이 한명회인가 뭔가 하는 인물이 있다고 들었음. 뜻은 크게 품었으나, 아직까지 대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음. 대신 몸은 부풀어 오르고 있음. -1994년 대학졸업: 숫처녀가, 불감증이 순결의 표시인줄 알고 대학에 입학/ 결국 남아있는 것은 무연애, 무빠굴의 경험으로 남의 연애사만 나오면 침을 흘리는 휴유증에 시달림. -2004년: 쓰리잡으로 삶을 연명. 온갖가지 빠굴담을 구라로 떠드는 여인네. 남들이 알면 무수한 남자를 연인으로 삼은적이 있은줄 알고 덤빔. 속빈강정....알고보면 무식의 극치. 여보세요..아...여보세요. 나는 당신이 무슨말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지구인은 나의 적인가 동지인가? -2007년 현재: 남들이 보기에는 몇가지 엽기적인 직업을 가진 이력을 가지고 있음. 현재도 역시 남보기에 멀쩡하다고 할 수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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