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 뉴스에 칼럼을 올리겠다고 약속을 해놓고도 어떤 성격의 글이어야 할지 마음이 정해지지가 않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드나드는 공적인 자리이니 만큼 멋있는 칼럼을 올리고 싶은 욕심이 앞섰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저의 내면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제 화해하는 글. 자신의 부드러움에 도달하는 글. 멋지고 화려하고 유식한 글이 아니라 너무나 솔직하고 진실해서 서로의 가슴에 엷은 런닝 한 장도 없이 그야말로 맨살로 가 닿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글만 쓰겠다고 89년에 다니던 직장도 관두고 혼자의 공간 안으로 들어앉은 지 이제 꼭 15년이 되는군요. 거대했던 처음의 야망과는 달리 문재(文材)로서 큰 성공은 거두지는 못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___^)

글이나 말이란 것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된다는 것 정도는 경험으로 체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시를 한자에서는 말씀 언(言)과 절 사(寺)가 합해진 시(詩)라고 표현을 한 것도 '말의 성스러움' 혹은 '말의 절대성' 같은 의미를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요즘 베스트셀러인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라는 책에서는 컵에 담긴 물에다가 ‘사랑’ ‘미움’, ‘고맙습니다’ ‘망할 놈’ 등등의 글을 보여주고 나서 그대로 얼렸다가 그 결정체를 현미경으로 찍은 사진이 나오더군요. 사랑이나 고맙습니다, 등의 긍정적인 글씨를 본 물의 결정은 꽃이나 보석 등의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어냈습니다만, 미움이나 부정적인 글에서는 결정이 부서지고 흐트러진 모습이 찍히더군요.

이건 내면의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가 결국은 말로서 드러나고, 그 말은 다시 자기 현실을 창조해낸다는 것을 가시적인 현실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좀 길어졌습니다. 저의 특기는 말을 하다가 옆길로 새버린다는 것이지요.^o^ 처음에는 머리가 나빠서 그런 줄 알았는데요, 그러나 가만히 관찰해보니깐 말이 외부의 서술적인 논거를 따라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저의 내면의 흐름에 따라서 흐르는 관계로 이렇게 된 것임을 알고는 이 방법을 고수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이런 글 쓰기법을 일러서, ‘주절주절 글쓰기 권법’이라고 이름까지 붙였답니다.

주절주절 나오는 대로 쓰다가 보면, 미처 자신도 알지 못했던 것까지도 딸려서 나오고, 또 그 과정을 통해서 몸과 마음에 맺혀 있던 것이 풀어지는 카타르시스까지도 경험할 수 있답니다.

저는 얼마나 오랫동안 격식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 머리가 터지도록 골머리를 앓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요즘 주절주절 권법을 마구 휘두르게 되고 나서부터는 글쓰는 일이 무지 즐겁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방법을 가르쳐드리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이 글의 정작 요점은 무거운 톤의 칼럼이 아닌, 가능한 가볍고 즐거운 생활 에세이를 쓰겠다는 겁니다. 저도 쓰면서 즐겁고 읽는 분은 읽으면서 즐거운, 그러나 그건 그냥 즐거운 이야기가 될 수는 없더군요. 아직 장애인의 삶이 그냥, 저절로 즐겁고 행복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장애인이 겪을 수 있는 적나라한 삶과 일상을 통해서, 그것을 다시 한번 가벼움과 즐거움으로 되돌려내는 창조성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주절주절 권법은 처음부터 어떤 논리를 가지고 시작하는 일은 아니니까요. 그나마 장중한 논리가 있다면 그건 생활이라는 가장 현실적인 바닥이겠지요.

가끔 여성 인권 세미나나 모임에 나가면 비장애인으로서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이 나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장애인에게도 인권과 행복의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명제에 대해서는 당연히 의심할 여지가 없는 바이지만, 장애인 개개인이 느끼는 그 감성에 대해서는 세세히 알 바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부분도 적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정말로 핵심을 찌르는 말씀이죠? 이만큼 문제의 정곡을 찌를 수 있는 분들이 우리 사회에 많이 있게 된다면, 그야말로 배려의 선진국, 문화의 선진국, 행복의 선진국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그만 샛길로 빠진 것 같은데요, 저는 결국 장애인들의 (결국 저와 저의 주변 사람들에 한정되겠지만) 감성을 드러내는 일, 그 감성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장애와 연결된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까지 다룰 작정입니다.

많이 성원해주시고 의견과 느낌을 간단하게라도 적어주시면 저는 신이 나서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절주절 권법은 여~러분의 '공감'과 '공유'를 매개로 그때그때 즉석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이니까요. 감사합니다. 꾸벅.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바느질을 배워 혼자서 살 궁리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울며 불면서 억지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국어 선생님이었고 다음에 되고 싶은 것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교사임용 순위고사에서는 신체상의 결격으로 불합격되어 그나마 일년 남짓 거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임시교사를 한 적이 있고, 다음에 정립회관에서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다가 2급 지체장애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87년에는 친구처럼 듬직한 아들을 낳았고 94년에 동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을 했다. 김미선씨의 글은 한국DPI 홈페이지(www.dpikorea.org)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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