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비가 쏟아지는데도 나에게는 잽싼 애마(愛馬)가 있어서 목욕탕엘 다녀왔다. 비오는 날, 꿉꿉한 날이면 물 속에서 첨벙거리는 일이 더 상쾌하고 즐겁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이어지는 7시쯤이면 원래 사람이 적지만 오늘은 비가 와서 더욱더 한적하다.

나는 월풀탕에 몸을 띄우고 금붕어 운동을 한참 한 후에 탕 밖으로 나와서 스트레칭을 한참동안 한다. 공연히 온몸에 힘을 빡, 주고 허리와 어깨와 목을 좌우로 비틀다보면 묘한 쾌감이 생겨나서 운동에 중독된다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만해진다.

거기에 비하면 때 미는 시간은 별 재미가 없지만, 그래도 한 며칠, 고양이 세수로만 버틸 걸 생각해서 열심히 때를 문지른다. 그게 끝나면 한 번 더 욕탕에 들어가 개구리처럼 다리를 힘껏 당겼다가 풀었다가를 거듭한다. 그나마 하체 운동이 되고 아랫배도 날씬해진다.

마지막엔 냉탕에 도전하는 시간이다. 냉탕은 드넓은 목욕탕의 제일 뒤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벌거벗은 몸으로 목발까지 짚고 기어이 거기까지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수없이 망설이게 했던 난관의 마지막 고지였다.

그러나 한 번 크게 용기를 내고 난 다음부터는 늘 이 노선까지 정복한다. 나는 먼저 차가운 물로 몇 번 끼얹고는 덜덜 떨면서 온탕에 다시 들어간다. 그렇게 몸을 준비시킨 다음에 이번에는 용감하게 냉탕 속으로 쑥 들어간다. 평소에도 찬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냉탕 온도가 18도 정도 되면 좋지만 거의 대부분 15도 정도일 때가 많다. 그럴 때는 정말로 용기가 필요하다. 얼른 찬물로 복부와 허리와 부실한 다리 쪽을 북북 문질러서 그나마 체온이 살아나게 해보지만 그러고는 그만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그래도 정작 몸의 상쾌함은 그 다음에 오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나는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탕 속을 통통통 뛰어다닌다. 엉거주춤한 자세이기 하지만 목발 없이 발을 뗄 수 있는 것은 이 순간 뿐이다. 처음 한 바퀴를 돌 때는 (우리 동네의 찜질방은 너무 좋아서 냉탕의 길이가 거의 20미터를 육박한다) 아직도 냉기로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지만 두 바퀴, 세 바퀴를 돌 때쯤이면 추위도 사라지고 아주 쾌적해진다. 몸이 움직일 때마다 출렁출렁 넘실대는 물이 이젠 고맙다 못해 아름답게까지 보이고 내 몸과 나누는 부드러운 교감이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

이렇게 흡족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아파트 현관에서 계단 청소를 하시는 할머니를 만났다. 이 할머니는 내만 보면 너무 좋아하신다.

연세에 비해서 몸이 잽싸고 부지런하신 분이라 청소도 아주 깔끔하게 잘 하시는데, 입도 역시 잽싸셔서 보통 선 자리에서 숨도 쉬지 않고 이 삼십분 이야기를 늘어놓으신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붙잡히지 않으려고 할머니가 저 만치 보일라치면 얼른 몸을 숨기거나, 나왔다가도 도로 집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런데도 오늘처럼 딱 붙잡히는 때가 있다. 할머니는 방글방글한 눈을 더 크게 뜨시고(원래 미인이신 분이다)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르신다.

"하이고, 오랜만이네요. 이게 얼마만인가요? 몸이 그래서 밖엘 잘 나오지를 못하시니까 생전 만나지를 못하네요. 젊은 사람의 몸이 그 지경이 되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요. 어이구, 얼마나 가슴이 아플꼬…."

할머니의 반가움은 장애에 대한 동정심과 섞여서 끝없이 이어진다.

"괜찮아요. 할머니."

내가 아무리 행복하게 웃음을 짓고 괜찮다고 하여도 할머니의 한숨은 그치질 않는다.

"할머니 비도 오는데 오늘 청소는 대강 대강 끝내세요~~~."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하면 이 자리를 빨리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 눈치만 본다.

가끔 가다가 새벽에 약수터에 갈 때가 있다. 요즘은 운동도 신종 유행이어서 약수터도 시장터처럼 붐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이른 시간이거나 아니면 낮에 한가할 때 슬슬 걸어가본다. 여름이면 내내 피어있는 망초꽃, 노란 애기똥풀,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작은 꽃들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도 그들의 우주가 한가득 펼쳐져 있다.

나무 사이로 어슴푸레하게 깔려 있는 새벽안개 속이거나, 한낮의 쨍쨍한 햇빛을 온몸에 담고 걸어나올 때쯤이면 나는 그만 저절로 충만해져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냥 아름다운 자연을 향해 내 몸은 열려 있고, 마음도 끝간데 없어 열려져버린다.

이때쯤이다. 역시 운동하러 나오신 할머니들. 그 중에 한 분은 꼭 나를 향해 혀를 끌끌 차신다.

"어이구, 젊은 사람이 몸이 저래서 어쩌누…."

"저런 몸으로도 여기꺼정 나오는구만…. 쯧쯧쯧."

그 분들의 표정은 나를 동정하느라고 저절로 찡그려진다. 쯥, 남의 속도 모르구서, 나는 이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행복하기만 한데, 그들의 안타까움은 땅이 깊은 줄도 모르고 깊기만 하다. ^0^*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바느질을 배워 혼자서 살 궁리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울며 불면서 억지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국어 선생님이었고 다음에 되고 싶은 것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교사임용 순위고사에서는 신체상의 결격으로 불합격되어 그나마 일년 남짓 거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임시교사를 한 적이 있고, 다음에 정립회관에서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다가 2급 지체장애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87년에는 친구처럼 듬직한 아들을 낳았고 94년에 동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을 했다. 김미선씨의 글은 한국DPI 홈페이지(www.dpikorea.org)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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