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하늘은 나날이 더 푸르고 높아져만 간다.

어제는 우리 아들이 다녔던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운동장 가득 날리고 있는 만국기와 쩡쩡 울리는 마이크 소리, 그리고 아이들의 함성 소리로 떠나갈 듯 하다.

이렇게 생동하고 즐거운 소리가 나처럼 장애를 가진 엄마한테는 얼마나 무겁고 불안하고 미안한 것이었던지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의 축제인 운동회를 망치지 않으려고 며칠 전부터 배려하는 엄마들.

그러나 초등학교의 운동회는 몸으로 뛰고 몸으로 만나는 자리여서

장애를 가진 엄마들은 어쩔 수 없이 소외될 수밖에 없고,

그 소외가 바로 아이의 소외로 연결되어질까봐 수없이 마음을 졸였던 현장이 바로 운동회였다.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6년을 다니는 동안, 나는 가을을 맞이할 때마다 올해는 이 운동회를 이떻게 치루나, 그 걱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 심정을 담아서 썼던 단편소설이 '낙타 가족' 이었는데 여기에 다 옮길 수가 없어서 일부분만 옮겨본다.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에, 초등학생을 둔 장애엄마가 이웃에 있다면 운동회 날에는 사정없이 우르르 달려가 한 패로 움직여 축제를 벌여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낙타가족

..........중략

마지막 시간이 다 닳아빠지도록 여유를 부리고 있던 그녀는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마음이 한없이 바빠졌다.

아침 일찍 싸놓았던 김밥 도시락과 포크 댄스용의 검은 바지와 물병이 든 가방을 들고 그녀는 혼자서 허둥거렸다. 아이와의 약속 시간이 불과 얼마 남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파트 앞에 늘 진을 치고서 기다리고 있던 택시도 오늘따라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나타난 택시조차도 학교 쪽으로는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어떤 기사는 노골적으로, 운동회요? 하고는 그냥 달아나 버렸다.

사차선 도로는 학교가 채 보이기도 전에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양쪽 길가에 빽빽이 들어서 있는 승용차들은 서로의 몸을 묶어놓은 체인처럼 연결되어 거대한 방어 벽처럼 보였다. 통행하는 차들은 그 사이를 비집고 겨우 조금씩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 운동회에 온 차들인가요?"

경애는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새삼스럽게 택시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복잡한 데로 들어오자고 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예"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투로 간결하게 대답했다.

"휘우, 대단하네요."

다시 한 번 더 미안함과 고마움이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그녀는 과장된 감탄사를 사용했다. 그는 웃는 표정을 보이기 위해서 입가의 근육을 잠깐 올렸다가 내렸다. 그 순간 그녀는 팁까지 합한 요금을 먼저 기사한테 주고 싶어진다. 그러나 크지도 않은 생색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손을 움츠리고 말았다.

기사는 학교 운동장이 보이는 공터에 차를 세웠다. 학교 공사 때문에 임시로 담을 철거한 곳으로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 곳으로 몰려들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정식 교문은 이 백 미터쯤 더 위로 올라가야 했다.

"나는 저 위에 교문에서 내려야 하는데......"

그러나 택시는 복잡하게 엉켜 있는 차들의 홍수 속에서도 용케 왔던 길을 되돌아나갈 틈을 찾아서 세워져버렸다. 이미 돌아서기 어려운 자리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가 교문이에요. 사람들이 모두 이 곳으로 들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 사이에서 억지로 차문을 고정시켜놓고 먼저 목발을 내려서 몸을 추스른 다음에 짐을 내리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던 기사가 그랬다. 그래서 경애는 그를 향해 네, 하면서 수긍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구태여 복잡한 길을 뚫고 더 올라가야 할 이유가 있을 리 없었을 것이다.

거대한 냄비처럼 달아오른 운동장은 마이크 소리와 아이들의 함성과 떠드는 소리로 웅웅웅, 진동음을 쏟아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뒤섞여서 파도처럼 흐르고 은박풍선과 색색의 솜사탕을 양손에 든 장사꾼들이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헤쳐나가고 있었다.

입구 쪽의 간이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이제 막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경애를 쳐다보았다. 소음과 먼지에 지쳐 바깥으로 밀려난, 비교적 나이가 많은 그들은 무료하던 차에 문득 눈앞에 들어온 경애의 색다른 모습을 결코 놓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의 고개는 더 빳빳하게 위로 세워지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그녀 나름대로의 절도와 경쾌함을 나타낼 수 있도록 온 힘을 다 쏟아 부었다.

아이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까지는 이백미터 남아 있었다.

"엄마, 열 두시에 수돗가로 와. 내가 거기로 찾아갈 테니까."

아이가 씩씩하게 말한 수돗가는 교문 바로 옆에 있었다. 택시에서 내릴 엄마를 배려하여 가장 가까운 장소를 정해주었던 것이다.

덩어리진 아이들에게 가려 보이지도 않는, 저쪽의 수도간에 가기 위해서는 운동장의 반이 넘는 거리를 통과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발이 빠지는 모래밭을 뚫고 지나가기에는 도시락과 가방이 너무 무거웠다. 간신히 한 발자국을 옮겨 목발을 들어올릴 때마다 양손에 매달린 찬합과 가방이 거대한 추처럼 그녀의 어깨를 아래로 끌어당겼다.

그녀는 아득해 보이는 길을 앞에 두고서 찬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눈으로 아이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자유롭고 분방한 아이들 틈에서 어디가 백군이고 청군인지, 학년 구분조차도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벌써부터 매스게임 때 입을 검은 바지와 일상복이 흰 운동복과 섞여 있어서 시야는 더욱 복잡해졌다.

그러나 다른 엄마들은 그 중에서도 용케 자기만의 아이를 찾아내고, 끊임없이 음료수와 간식을 갖다 먹이고 그리고 사진을 찍어댈 것이다. 경애는 지난 오 년동안 다섯 번의 운동회를 치르면서 그 엄마들의 발빠른 민첩함과 활동성에 대해 어쩔 수 없는 부러움과 절망을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경애는 운동회가 시작하는 아침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학교 건물 뒤의 한 자리에 내내 붙박이로 앉아 있었다. 몇 번이나 다른 엄마들처럼 음료수를 들었다, 놓았다 했지만 아이 앞에 차마 나갈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남다른 엄마의 모습을 의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해도, 어쨌거나 아이 친구들의 눈앞에까지 구태여 자신의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내야 할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는 엄마 못지 않게 아이들도 자주 엄마가 있는 곳으로 들락거렸다. 아이들은 엄마가 깔아놓은 돗자리에서 닭튀김이나 간식을 먹기도 하고 저학년 아이들은 엄마 무릎에 기대어 드러누워 있기도 했다. 그러나 경애의 아들 웅이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엄마가 응달 뒷자리에 고정되어 추위를 견디고 있는 것처럼 아이는 운동장의 쏟아지는 땡볕을 혼자서 감내 해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 틈으로 들어가 육학년의 자리를 알아보려고 해도 도시락을 놓아둘 곳이 없었다. 서 있는 곳은 온통 모래밭이었고 그나마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여서 잠시도 세워둘 곳이 되지 않았다. 경애는 다시 도시락을 들고 걷기 시작했다. 아이와 만나기로 한 열 두시까지는 십 오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어쩌면 아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경애는 몸을 똑바로 세우기 위해서 다리와 팔목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목발에 매달린 몸은 점점 더 아래로 쳐져내렸고 발은 땅바닥에서 질질 끌리려고 했다.

몇 발자국 걷다가 그녀는 다시 도시락을 내려놓았다. 그런 중에도 그녀는 결코 힘들어서 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만방에 널리 알리려는 듯이 호기롭게 허리를 쭉 폈다. 옛날 영화에 나오는 건달같이 두 손바닥을 펴서 청바지 뒷주머니에 찔러 넣기도 했다.

그때 경애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에 들러붙어 오는 시선을 느꼈다. 그것은 좀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이쪽에서 마주 보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은, 아주 방심한 눈이었다. 그래서 마음껏 자기 감정에 빠져버린 그 얼굴은 오버 액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극한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것 본 경애는 자동적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러나 일, 이 초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그쪽을 마주보았다. 의연하고 오만한 눈길이었다. 그때서야 경애와 눈이 마주친 것을 안 그 여자는 황급히 아래로 눈을 깔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옆눈으로 그녀를 살펴보았다. 경애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아는 척을 했다. 지극히 행복한 인간이나 지을 만한 환하디 환한 웃음이었다. 지하 슈퍼매장의 정육점 여자인 그녀는 의외라는 듯이 잠깐 머뭇거리다가 곧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의례적인 인사를 그럴 듯하게 치루어낸 경애는 찬합을 들고 그 자리에서 돌아섰다. 마음 같아서는 엉덩이라도 흔들며 빠르고 민첩하게 그 자리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나머지 생략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바느질을 배워 혼자서 살 궁리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울며 불면서 억지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가장 되고 싶었던 것은 국어 선생님이었고 다음에 되고 싶은 것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교사임용 순위고사에서는 신체상의 결격으로 불합격되어 그나마 일년 남짓 거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임시교사를 한 적이 있고, 다음에 정립회관에서 상담교사로 근무를 하다가 2급 지체장애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87년에는 친구처럼 듬직한 아들을 낳았고 94년에 동서문학 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등단을 했다. 김미선씨의 글은 한국DPI 홈페이지(www.dpikorea.org)에서도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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